"…… 나의 이름 말인가? 그 질문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여인의 동공이 놀란 듯 잠깐 커졌다.
"나도 몰라 그냥 궁금하네."
"… 이 상황에 이름을 묻다니… 알 수 없는 사내로군."
여인은 고민하듯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직후 여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무런 의미 따위는 담기지 않은듯한 형식적인 음색이었다.
마치 정을 털어내듯 말이다.
"이리스펠론. 아리에가의 이리스펠론이다."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예쁜 이름이네."
"…… 시험이 시작한 이상 더는 그런 말에 당황하지 않는다.
약속을 지켜라."
구분 짓는 것이 칼 같은 여인이다.
다가가면 그 날카로움에 베일 것 같다.
"그러네 약속. 분명히 내가 두 가지 질문을 마치면 다음은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준다는 약속이었지?"
"이해하고 있다면 더는 시간 끌지 말고 숨기고 있는 무기를 꺼내든 신수로 내 심장을 겨누든 진지해져라."
"…… 진지해지라는 건… 사람을 죽이는 일에?"
여인은 내게 장식품 같은 검을 겨누었다.
"죽인다는 건 단지 방식일 뿐. 그것이 아닌 시험에 그리고 나의 상대로서 진지해지라는 거다."
만나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처음과는 달리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그만큼 시험에 진지하다는 건가.
…… 이런 시험인데도….
역시 모르겠다.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
기억을 찾고 이곳보다 위로 올라간다면 저런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 약속은 약속이니까."
아리에 이리스펠론이라는 여인의 바람대로, 처음에 약속한 대로 나는
내게 검을 겨누고 있는 여인을 적으로 인식하려 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나의 시야에 여인의 등 방향에서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거무스름하고 날카로운 물체가 보였다.
그걸 포착하자 생각할 틈은 없었다.
자연스럽게 몸이 먼저 움직였다.
내게 검을 겨누는 여인을 향해 나는 뛰어갔다.
여인은 내 뜀박질을 전투의 개시 신호로 봤는지
내가 가까워지자 품위 있지만 빠르게, 검으로 내 몸을 관통시켰다.
미치도록 아팠다. 하지만 운 좋게도 여전히 몸은 움직인다.
검이 몸에 꽂혀있는 상태로 여인의 바로 앞까지 도달한 나는 여인을 안아 넘어트렸다.
그리고 그 직후-
숭-
하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창이 나와 여인을 스쳐가 갈대밭에 꽂혔다.
다행이다. 저런 거에 맞았다면 그대로 즉사했을지도 모르겠다.
땅바닥에 손을 짚은 채로 몸을 일으켰다. 여인의 놀란 얼굴이 보였다.
일단 미소 지었다.
"…… 괜찮…."
"어째서냐!"
분한 듯 구겨진 여인의 얼굴이 보였다.
구해줬는데 어째서지?
"뭐가? …… 윽…!"
관통당한 부위에서 피가 떨어졌다.
아프다. 아 진짜 아프다. 아니 장난이 아니라 진짜 아프다.
사고가 정지될 것 같다. 뭐야 이건. 그냥 쇠붙이가 몸을 뚫고 지나간 것뿐인데 뭐가 이렇게 아픈 거야?
머리가 빙빙 돈다. 여인이 뭐라 소리치는 것 같은데 잘 들리지도 않는다.
독이라도 발라놓은 건가? 그렇다면 치사한 여인이다.
아니, 수단과 방식은 자유라고 했으니까 치사한 건 아닌가?
아니 그것보다 이 상황에서 이런 생각은 왜 드는 거야?
일단 배를 관통한 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 것 좀……."
문득 머릿속을 스쳐갔던 목소리가 생각났다.
그 무엇도 너를 해하지 못하고-
배에 구멍이 났는데 해하지 못하긴….
일단 너무 졸리다. 한숨 자고 싶다.
너무 졸리니까 그냥 자야겠다.
나는-
뭐라고 계속 소리치는 여인을 뒤로하고 눈을 감았다.
밤레기처럼 보이는 능력은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