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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없다며님 홍범도 관련해서 답변 가져 왔습니다
유이 | L:48/A:669 | LV170 | Exp.18%
634/3,410
| 1-1 | 2023-09-09 22:53:33 | 4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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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의 글을 썼는데

지워져서 처음 다시 쓰느라 늦어졌습니다.

미안합니다

 

 

 

https://www.chuing.net/zboard/zboard.php?id=comm_p&no=24844&cpage=1#commentHidden48372

 

기존에 있던 댓글마다 제가 댓글 달면에는 보기 불편하니까 한꺼번에

이어서 댓글 달겠습니다

 

 

순서대로 답변 해드릴게요

"조선유격운동에 대한 보고서제출한것에 대해 자꾸 질문하시는데

 

 

이것에 대해 오히려 제가 역으로 질문하고 싶네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단순히 쑈 한거라고 밖에 안봅니다

 

 

1-1

님 말대로 격분한 홍범도가 이르쿠츠크파가 자신들의 명의 도용해서 거짓말 했다면서 보고서까지 써서 러시아공화국 군사혁명위원회 참모총장과 국제공산당 집행위원회에다가 제출하고 레닌까지 만났는데 그 후에 상황이 어떻게 되었나요 ?

 

 

잃어버린 명예가 돌아왔나요 ??

아니면 이름 도용 당한걸로 끝나서 독립군 죽였다는 누명 씌인게 풀렸나요 ??

결과적으로 아무 일도 안일어났죠 ??

 

 

레닌 만나서 단독 회담하고 금화 100루블군복 한 벌홍범도의 이름이 새겨진 모젤 권총을 받고 사진 찍고 끝났는데요 ???

 

본인 스스로가 누명이 씌인채로 살아가는데 계속 레닌쪽에 항의나 명예회복을 위해 아무것도 안하고,

또 레닌쪽에서는 지속적으로 문제 해줄려는 노력도 없었죠??

 

 

반평생 독립운동하다가 이름 도용 당해서 독립군 때려잡았다고 누명 씌인 분이

같은 독립군한테 암살 당할뻔하기까지 했는데 단순하게 레닌 만나서 돈이랑 군복 받고나서 같이 사진 찍고

그냥공산당에 가입한다?

 

 

그리 분노하신 분이 공산당과 레닌 연관되고 싶어 하는게 말이 되나요 ?

 

 

 

이게 말이 되나요 ??

님이 홍범도라면 가만히 있을까요??

상식적으로 생각보시죠?

 

 

 

홍범도가 뭔가 독립운동 했다독립군으로써 그 명예보다 더 이득된걸 받았으니까

혹은 받을 예정이니까

죽을때까지 난리치지 않았겠죠?

 

 

그러니까 보고서 쓰고 난리쳤지만 결국에 입을 다물었다는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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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부대는 3연대로 됐는데그렇게 따지면 연대를 섞어서 사용했다는 것이 됩니다.

홍범도 부대는 따로 분리됐고소속원을 옮긴 적이 없습니다홍범도 부대는 440명이 고려혁명군 제3연대로서 따로 존재하고 있었죠그리고 홍범도 부대는 홍범도 소속인데일단 홍범도 부대원들이 참가했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는데 "안 했다는 것도 없잖아."라고 하시는 거면 곤란합니다.

 

 


또 홍범도 부대는 자유시 참변 이후 실망해서 떠나버렸는지 수가 줄어들지만 소련군 편입때도 23년에 홍범도가 군복을 벗게 될 때까지 홍범도 아래에 뭉쳐있었습니다.

그리고 홍범도 부대가 고려혁명군에 가담한 것은 6월 초였고자유시 참변은 6월 말이었죠여러모로 준비도 안 된 상황인데다가 홍범도도 자리에 없고이 때 홍범도 부대를 홍범도 없이 지휘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당시 자유시참변 직전에 독립군들의 통합에 문제점이 자신의 기존 장교 외의 다른 장교들의 명령을 거부하고 있어서 통제가 안 되는 문제점이 골칫거리였습니다홍범도 없이 홍범도 부대를 통솔하고심지어 부대를 멋대로 쪼개서 활용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면 놀라운 것이 됩니다아마 사학계가 발칵 뒤집어지겠죠.

 

 

 

 

김홍일은 제가 글 쓰면서 착각했네요

김홍일은 안간거 맞습니다

 

 

2-1

그리고 님 말대로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다는건 맞죠

여러 가지 이유 중에 말이 안통한것도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상대군과 무장 차이 때문에 항복 했을 가능성이 크죠

갑자기 총질해서 선빵 맞으면서 싸우고 있는데

 

 

화력 차이에서 일방적으로 밀리니까 항복했다고 보는게 제대로 보는거라고 생각합니다

선빵 맞았는데 내가 이기고 있다면 당연히 항복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고려혁명군이 준비된 상태에서 기습해서 상해파가 일방적으로 당한거고 화력 차이로 이길 가능성이 낮으니까 항복해서 이르쿠츠쿠파가 피해가 없던겁니다

 

 

 

 

 

 

2-2

서로 말이 안통하기 때문에 러시아군이 고려혁명군을 직접 통제하는데 제한이 됩니다

따라서 높은 부대장급들만 작전간에 소통을 위해 러시아어든 조선어를 쓸줄 아는 통역가를 데리고 다녔을꺼고

 

실질적으로 조선독립군(고려혁명군)은 같이 전투하는 조선인이 병력을 직접 통제 했을겁니다

 

 

 

 

 

 

2-3

그리고 고려혁명군 3연대 홍범도부대원 440명 배속 되었지만자유시 참변때 고려혁명군은 300명이 참가했기 때문에 홍범도 부대가 아니다?

 

이런 빈약한 주장이 어디있나요 ??

 

 

저도 홍범도 부대가 100% 다 참가했을거라고 생각은 안합니다

고려혁명군 연대가 몇 개인지 모르겟지만 홍범도 부대가 끝이라고 생각하고

1개 연대 440x3연대 하면 1320명인데 대략 1300명이라 잡고 그중에 300명 투입된 겁니다

 

 

상식적으로 홍범도가 자리를 비웠기에 고려혁명군에 자유시 참변에 동참 안하는 사람도 있었을꺼고어제까지 같은 독립군으로 싸웠던 사람한테 총구 돌리는건데 적극적으로 참가할려고 하는 사람이 이상한거겠죠

 

 

 

그리고 400명 무장 해제해도 다시 무기주고 탄약 불출하는데 1시간도 안걸립니다

무장해제를 근거로 참가 안했다고 말하기에는 주장이 빈약하네요

 

 

 

2-4

그리고 왜 부대를 갈라서 운영하는게 말이 안되죠 ??

봉오동청산리에서도 섞여서 같이 싸웠는데

 

 

군대 특성상 없으면 없는대로필요한 곳에 병력을 주고 받고 막 집어넣고 돌렸을꺼라 생각하는데요 ???

 

 

이게 특별한 기술을 가진 사람을 필요로 하는것도 아니고

밥 먹고 전투만 하던 사람이 단순히 전투 부대가 지휘관이 다르다고 왜 섞여 싸울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 ??

 

 

 

홍범도 부대는 정확하게 언제 창설했는지 모르겠지만

봉오동청산리때 기준으로 해도 최소 4-5년은 밥 먹고 총만 쏘으면 전장에서 구른 군인들인데 홍범도가 없다고 다른 사람이 부대 지휘를 못한다는게 말이 됩니까?

 

 

무슨 독립군들이 아무리 허접했다고 해도

홍범도 부재시 지휘체계통 같은게 없었을까요??

 

 

 

 

그리고 당연히 평상시에는 통합이 안되죠왜 말을 듣나요 ???

자기 부대 지휘관 외에 명령을 안듣는건 평상시비전투시 이야기고,

 

 

 

저긴 홍범도의 부재에 조만간 전투하러 가는 급박한 상황인데

홍범도 외에는 다른 지휘관의 말을 안듣는다는 사고는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요??

 

 

 

군대에서 필요하면 옆중대에서 협조 요청해서 타중대 사람 데리고 와서 일하고 하신적 없나요?

그렇게 생각하시면 편할꺼 같은데요

혹시 군대 안다녀오셨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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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부대가 참가했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고홍범도 부대는 440명이지 300명이 아니었으며홍범도 부대는 무장해제 받아들이고 합류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때였으며 홍범도와 홍범도 부대를 비롯해서 다른 사람들의 부대도 당시 수라젭카에 없었다는 기록은 있습니다.

정황상 증거조차 없습니다홍범도와 홍범도 부대만이 아니라 '다른 독립군 부대'들과 함께 있었다보니 명확한 알리바이가 있기 때문이죠.

당시 홍범도 부대가 440명인 것과 고려혁명군 300명 맞지도 않고홍범도 없이 명령 따른다는 것도 맞지 않습니다.

자유시 참변이라 하지만 실제로 사건은 자유시가 아닌 3킬로 이상 떨어진 소도시인 수라젭카에서 벌어졌죠사망자가 적었다는 부분에서 또 자유시참변 도중 29연대 병력 이끌고 있는 깔란다리쉬빌리가 "왜 기관총 사격을 안했냐?"라고 묻자말없이 기관총 열쇠 4개를 내놓은 사할린부대원 사례도 있습니다.

홍범도 부대가 학살 참가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님이 보여주신 기사 링크에도 없을 정도입니다그런 정황증거가 있다고 말하는 말조차 찾아도 안 보이는데 링크라도 대주세요하다못해 사학게 교수 논문(해외라도 좋습니다)이라도요.

다른 독립군 부대들과 함께 자유시 내부에 있었지 수라젭카에 없었다는 것이 다른 독립군 부대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교차 검증이 되는 것이죠또 사할린부대들도 홍범도 부대가 참가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홍범도 부대가 고려혁명군쪽에 무장해제 받아들이고 속하기로 하면서 440명이나 빠져나가서 균형이 무너져서 상해파 세력이 약소세력이 된 것이 자유시참변을 일으킨거라는 견해도 있다보니배신자로 여길 수는 있겠죠.

 

 

3-1

우선 제가 말한 정황은 자유시 참변 당시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 있던 기록이나 정황 같은걸 말한게 아니라,

그 일 이후에 죽을때까지의 홍범도 행적에 대한 의문점이 생겼고,

홍범도의 행적에 대한 의문점들을 조각 맞추보니까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해가 갔고 그 행적을 정황이라고 이야기한 겁니다

 

 

 

3-2

홍범도 부대가 직접적으로 학살에 참여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학살에 참가한 기록 있었다면 이미 기사라든가 교과서논문 같은데 들어가서

독립군 학살자라고 교과서에 실려 있었겠죠 ?

 

 

말씀 하시는게 대부분이 글이나 문서로 안남아 있으니까

제 말을 인정할수 없다고 말씀하시거잖아요

그죠??

 

 

애시당초 글이나 문서로 남아있었으면

지금 저랑 긴 이야기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위에 문서글 기록으로 남은게 없다는 이유로 단순히 무시 하는거라면

대한민국 건국 이래 일어났던 4.3, 5.18 등등 지금 정부가 하는 과거사 진상조사 다 부정하는거랑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3-3

그리고 홍범도가 무장해제 했다고 자유시 참변이 일어나는데 1%도 관련이 없다고는 말 못해도 적어도 제가 볼때는 큰상관이 없었고이건 순수한 정치적 세력 다툼으로 인한 싸움이 일어났다고 생각하구요

당시 사람들이 권력 싸움인거 몰랐을까요 ???

 

 

 

 

 

 

홍범도가 배신자로 낙인 찍혔다고 생각하는 이유는요

균형이 무너졌기 때문에 라는 이유도 어느정도 이해는 가는데요

 

 

그것보단 살아남은 인원들이 중에 같이 독립운동 하면서 봤던 홍범도 부대원들 알아본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홍범도가 독립군 때려잡았다배신자로 이야기가 나왔다고 보는게 더 신빙성 있어 보이지 않을까요?

 

 

 

 

22년 2월에 제출한 보고서건과 1921년 11월에 레닌이 상해파를 편들어서 이르쿠츠크파와 코민테른 극동지부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체포된 상태였던 상해파들을 풀어준 후에 위축됐던 상해파에게 권력을 몰아준 11월 결정서건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정황증거라는 것은 어떤 정황증거인지 출처 제시해주시고요해당 기사에도 님의 주장처럼 홍범도 군대가 참전했다 이런 것은 어디에도 없고그런 뉘앙스 말하는 사람도 없으며 부대 쪼개지지도 않았고참전한 300명 병력은 고려혁명군정의회 소속으로 고려혁명군의 제3연대(홍범도부대)가 아니고 홍범도부대는 다른 독립운동가들(공산주의 성향 아니지만 자유시에 있던증언으로 참가하지 않았다고 나옴.

그래서 22년 2월에 공산주의 성향이 아님에도 자유시에 있던 독립군들도 홍범도랑 같이 모스크바에서 자유시참변 벌인 이르쿠츠크파 비난하는데 동조해줌이 때 홍범도랑 함께 이르쿠츠크파가 자신들의 이름 도용해서 자유시 참변 찬성한 거 마냥 왜곡했다고 비난했던 자유시에 있던 독립군 중 한 명인 최진동은 레닌 만나서 권총을 선물로 받기는 하지만 공산주의 속하지 않고자유시 참변건으로 공산주의를 싫어하게 되면서 장남이 공산주의에 빠지니 당장 그만두라고 사상갈등을 겪기도 함.

참고로 최진동은 이후 따로 독립운동 계속하다가 일제에게 귀순해서 자기 관할 한인들 보호를 거래하는데일제의 공작 협력에 응하지 않았고 그래서 감시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귀순한 것은 사실이라 친일파로 변절한거 아니냐는 논쟁이 나오기도 함.

홍범도만이 아니라 여러 독립군들도 얽혀있는 문제고이들 중에선 공산주의에 적대감혐오감까지 느끼는 사람들도 있음이 사람들도 홍범도랑 함께 이르쿠츠크파의 자유시 참변을 22년 2월에 공개폭로를 같이 함.

자유시참변 벌어질 때 홍범도와 홍범도 부대랑 같이 있던 사람들로 이렇게 교차검증이 됨.

 

 

 

4-1

레닌의 이르쿠츠크파와 상해파에게 했던 행동에 대한 견해는 대부분 님 의견이랑 대부분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위에서 레닌이 이르쿠츠크파를 밀어줬다 그 말 때문에 지금 이야기 꺼내시거라면요

제가 말했던 의미는 레닌이 필요할 때 이르쿠츠크파를 처벌하지 않아서 밀어줬다는 의미로

글을 썻던겁니다

 

 

저는 레닌은 계파 상관없이 이쪽저쪽 균형 유지하면서 자기 필요한 곳에 이용해 먹은거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4-2

위에도 썼지만

 

홍범도라는 사람의 행적을 보면서 이해 안가는 행동을 보고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니까 말이 되서 정황증거라고 말한거고요

 

 

기록 같은게 있으면요

이미 박제되서 님이랑 저랑 다 보고 이미 교과서에도 나올겁니다

 

기록에 왜 없는지 진짜 몰라서 이야기 하시는 겁니까?

독립운동가를 증거 없이 비하하면 몰려와서 마녀사냥 하니까 못한다고 보는게 맞지 않을까요?

 

 

 

신문언론사방송사 같은 시민단체방통위한테 털리기 때문에 팩트 체크한 내용이 아니면 함부로 방송에 송출 못한다

 

 

학교대학논문 등재 마찬가지로 정말 확실한 아니면 단정지어 말 못한다

다만 이렇게 추정 할수 있다 라고 쓸수는 있어도 독립운동가 같은 언터쳐블 같은 것은 극성단체 때문에 함부로 말 못함

 

 

3. 다만 사람들이 이렇게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성 글만 유족한테 고소당할수 있다.

 

 

이런식으로 하니까

명확한 증거 없이으니까 대부분 추측성 기록으로 끝나는겁니다

 

애시당초 증거 있으면 이렇게까지 길게 이야기 안했습니다

 

 

4-3

 

 

최진동 이야기는 지금 주제랑 의미 없다고 생각하니

따로 답변 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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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에 대해 제가 할수 있는 최대한 성실하게 다 답변 해드렸으니까

이번엔 제가 질문 할테니

위에 나온 이야기랑 중복된 이야기가 있어도

참고해서 쓰시던 편하신대로 님이 제 의문점에 출처와 근거에 답변해주세요

 

 

 

5-1

 

1. 참변 후홍범도가 들어간지 얼마 안되었는데 실적도 없었고 전투로 인해 전투편제를 다시 짜야되는 상황도 아닌데 갑자기 의문의 승진한 이유

 

 

 

2. 반평생 독립운동 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독립군 학살했다고 오해를 사서 명예에 타격 입고 암살까지 당할뻔 했는데 레닌 만나고 나서 자신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에 대해 죽을때까지 이르쿠츠크파에 대한 항의하거나 처벌 탄원서 등 적극적인 처벌에 대한 요구하지 않은 이유

 

 

 

 

 

3. 극동민족대회에 참가해서 연관된 피해자들이 여러명 있음에도 레닌과 단독회담 할수 있었던 이유와 단독회담한 이유

 

 

 

 

4. 1927년 공산당 가입 후, 1930년에 당원증 발급 받았는데 당원증에는 홍범도가 19199월부터 192210월까지 참전군인으로서 협동농장에 대한 혜택의 수혜대상임을 확인한다고

적혀있는데 봉오동청산리는 공산당이랑 관계도 없고, 1923년부터 연해주 지역 지도자로 활동했는데

이건 어떻게 설명할래요 ??

 

 

공산당의 기록 착오인가요 ?

아니면 공산당이 홍범도의 봉오동청산리 인정해줘서 공산당 당원증 준거가요??

(당시 공산당 당원증은 정말 받기 어려웠던거 아시죠?)

 

 

 

 

 

 

 

 

 

 

 

 

 

끝으로 위에서도 이야기 했는데

 

님 말대로 홍범도가 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있었으면 학계에서 연구하고 교과서에 올라 갔을테니까요

 

다만 홍범도의 당시 의구심이 드는 행동과 그 후에 일어난 일들 보면

충분히 의심가는 상황이고 했을 가능성도 농후합니다

 

 

증거도 없는데 홍범도 까는 이야기하니까 비하한다고 생각 하시는거 같은데

 

 

제가 여러번 말했는데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후 큰사건이였던 최순실 사건이나 4.3,  5.18.처럼

모든 일은 의구심으로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기록이 남기 힘든 과거사에 대해 증거가 없다고

의구심을 가지고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것에 솔직히 이해가 안갑니다

 

 

그리고 홍범도와 자유시 참변에 연관에 대해서는 더 추적해도 더 나올지 안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의구심 드는건 어쩔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증거가 없어서 믿을수 없다?

좋습니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의구심이 가질만한 행동을 했으니까 의심하는 겁니다

 

 

 

 

 

 

 

 

 

 

 

chrome-extension://efaidnbmnnnibpcajpcglclefindmkaj/https://www.arirang.ru/archive/kore-ilbo/2019/KI.22.02.2019.pdf

 

▲ 이 서류는 소련 정부가 홍범도에게 발급한 일종의 복지혜택 인증서다. 인증서는 "1930년 1월13일 소련 인민위원평의회 중앙집행위원회(소련의 최고 의사 결정기구)의 칙령에 의한 것"임을 확인하고 있다. 서류 우측 증명사진 하단부에는 이 서류가 1930년 3월25일부터 적용되는 '前 붉은 군대와 빨치산 및 가족이 수혜를 받을 권리에 관한 인증서 발급절차'라는 법령의 의거, 발급됐음이 기록돼 있다. 즉 서류는 홍범도가 1919년9월부터 1922년10월까지 참전군인으로서 협동농장에 대한 혜택의 수혜대상임을 확인하는 인증서로 해석된다.ⓒ사진은 2019년 2월22일자 고려일보에서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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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斗의拳 2023-09-09 23:20:04
앞으로 한국전쟁의 영웅들은 육사에
독립운동가들은 독립기념관에 모시면 될 일인듯
애초에 육사 홍범도 흉상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이전 정부에서 정치적인 의도에서
설치한 급조된 정치선전물인데
육사에서 정치를 배격하는 일이
이렇게 큰 뉴스가 될 일인가 싶음.
그쪽분들은 말장난을 자꾸 하지만
이승만이고 박정희고 내가 알 바가 아니고,
홍범도 장군이 항일투쟁의 과정에서
무슨일을 했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은 1948년 8월 15일이고
육사는 엄연히 대한민국 국군의
초급 장교를 양성하는 곳이니까
누군가를 기리겠다면
응당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대한민국 국군에서 큰 족적을 남기신 분들로 한정하는게 맞다고 봄.
유이 [L:48/A:669] 2023-09-09 23:25:27
@北斗의拳
민주당이나 민주당 빠는 사람들이
이런걸 정치적으로 이용해 처먹으니까
존나 큰문제로 비화되는거 ㅋㅋㅋ

후쿠시마도 마찬가지고
北斗의拳 2023-09-09 23:28:31
@유이
정치적인 의도로 흉상을 세우고
또다시 정치적인 의도로 철거에 반대하고
나쁜쪽으로는 진짜 외길인생 그 자체인 더불어 찢는당
ㅋㅋㅋㅋㅋ
유이 [L:48/A:669] 2023-09-09 23:32:36
@北斗의拳
그러면 안되는건데 너무 저런걸 이용해먹습니다
일본 역사 문제 같은걸로 죽창가 외치면서 선동하고
후쿠시마 선동하고

여기서도 그거 따라 하는 사람도 있고 ㅋㅋㅋ
관심없다여 [L:48/A:486] 2023-09-09 23:44:52
홍범도 흉상은 놓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치우든 말든 알 바 아니고 그거 갖고 싸울 시간에 육사 시설들이나 보강하라 생각하나 자유시참변 건은 중요한 것을 답변 안하셨네요.

최진동은 대답 안하셨는데, 최진동 등의 존재로 다른 독립운동가들이 '홍범도와 함께' 명의 도용을 22년 2월에 공개항의했고, 조선유격운동에 대한 보고서는 홍범도 혼자서 낸게 아니라 최진동과 함께 낸 것입니다.

자유시에 있던 다른 독립군들도 성향을 떠나서 홍범도와 함께 이름을 도용당했습니다. 최진동 외에도 허근, 안무, 지청천이 대표적이죠.

그리고 고려혁명군은 당시 1972명이고 상해파 쪽은 다 합쳐서 1770명 정도인데 홍범도부대 440명이 상해파에서 고려혁명군쪽으로 넘어가면서 균형이 무너져버린 것입니다. 상해파 4분의 1 가까이 차지하는 규모였고, 사실 홍범도부대만이 아니라 다른 독립군들도 일단 통합 위해서 고려혁명군 편 들어주자고 최진동 같이 현장에 있던 다른 독립군들도 일단 무장해제에 응하며 따랐었습니다.

홍범도나 부대원들이 참변에 함께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말했듯이 '교차검증' 되는 부분입니다. 현장에 있던 최진동 등 그리고 현 군대와 달리 독립군은 다른 지휘관 따르지 않아서 골칫거리였다고 명백하게 기록됐고요. 현재 군대와 다릅니다. 특히 사할린부대는 극동공화국의 민간인 약탈까지 심하게 벌여서 극동공화국 주민들이 얘네 지원하는 레닌을 원망하고 항의할 정도였습니다.

근데 자유시에서 떨어진 수라젭카에서 참변이 벌어졌고, 이 때 자유시에 모인 홍범도부대를 비롯한 여러 독립군들은 '무장해제'를 받아들여서 '비무장대기' 상태였습니다. 사할린부대는 고려혁명군정의회 명령대로 수라젭카에 주둔은 했지만, '무장해제'를 거부해서 자유시 참변이 벌어진 것입니다.

홍범도, 최진동, 허근, 지청천 및 간도독립군 장교 28명이 21년 12월에 상해파에게 협상 전권을 위임하고 '조선유격운동에 대한 보고서' 이거 쑈라고 하셨는데 이거 홍범도와 최진동의 공동명의에 상해파 대표인 김동한의 이름이 올라가 있습니다.

저거 쇼라고 하시는데 당장 상해파에서도 홍범도랑 같이 도용 항의하는데 이름 올렸습니다. 공산당을 싫어했던 최진동도 해당건만 처리하고 연 끊자는 생각인지 자유시참변 건 따지기 위해서 홍범도와 같이 움직였고요.

상해파에서도 이미 홍범도랑 함께 움직이며 이르쿠츠크파를 공격했습니다. 사할린부대원 2명의 독단은 비무장이던 부대원 문제가 아니라 명의도용건 믿지 않아서 + 균형 무너지게 한 것에 대한 분노로 봐야지 비무장이던 홍범도부대가 움직였다는 것은...거기다가 현재 군대랑 당시 통제 안 되는 문제 많은 독립군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정규군과 비정규군 비교이기도 하고요.
유이 [L:48/A:669] 2023-09-10 00:04:07
@관심없다여
최진동 몰라서 이야기 안꺼낸거 아니고, 홍범도 이야기만 하자고 이야기 안한겁니다
중요한건 보고서 내용과 행적이 중요한거 아닙니까 ?

상해파가 현지에서 약탈하고 비난 받았던건 알고 있습니다
무장해제는 님이 무장해제 해서 공격할수가 없었다는 식으로 이야기 해서 답변한거고요

독립군이 명령 안따른건 거듭 말하는데 단순 명령을 듣기 싫은거지
명령을 들어야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들을수 밖에 없다니까요

세계대전 중에 부대장이 없어져도 남은 인원으로 싸움기록이 있는데 자꾸 현재랑 다르다고 합니까
전쟁이라는 기본 틀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를수 있어도 계급제가 있는 이상 명령체계는 바뀌지 않습니다

독립군이 아무리 콩가루 막장이라고 해도 지휘체계는 남아 있고 부대 운영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차라리 다른 이유를 말하시는게 더 신빙성 있을듯합니다


홍범도가 정치적으로 쑈 했다고 본다는 이야기는 홍범도 인생 전체를 보고 판단한겁니다

그리고 제 이 댓글 단거에 대댓글 달지말고 그냥 새로 댓글로 쓰세요
글이 길어지 니까 보기 불편합니다
관심없다여 [L:48/A:486] 2023-09-10 00:54:02
@유이
근데 무장해제 당한 홍범도 부대원들 일부가 따로 참가했을 것이다.

이것은 어느 사람도 주장한 적이 없는 것인데다가, 최진동 이야기는 홍범도 이야기랑 빠질 수 없이 중요한 것입니다.

최진동이 이르쿠츠크파에게 이름을 도용당해서 해당 보고서를 홍범도랑 같이 제출한 사람이고, 마찬가지로 레닌에게 권총까지 받음. (그러나 공산주의를 이 때 이후 싫어하게 되면서 공산주의에 빠진 큰아들을 체벌로 죽일 정도)

또한 최진동과 홍범도 바롯한 간도 독립군 장교 28명이 상해파에게 자유시참변 관련 협상을 위임하는데, 28명 중 아무도 홍범도 탓을 하지 않았습니다.

상해파조차도 홍범도 탓을 하지 않고, 오히려 함께 활동했습니다.

피해자인 상해파도 하지 않은 말이고, 홍범도도 레닌에게 이르쿠츠크파와 관련자들 이름 일일이 대면서 모두 처벌을 공식적으로 요구했고요.
유이 [L:48/A:669] 2023-09-10 01:28:02
@관심없다여
홍범도 부대가 참가 했을수도 있다 << 했다 라는게 아니라 가능성을 제시하는 글을 본게 몇번되는데
저만 봤는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최진동 이야기를 안적은건 같이 보고서 제출한 이야기 말하는거 같아서 따로 안적은거구요


간도 독립군 28명 재판 당시에 홍범도 비난 안한 이유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제 뇌피셜은 홍범도 이야기가 독립군들한테 안퍼지 않았냐 )


상해파 입장에서는 홍범도가 관련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객관적으로 재판 당시에 많은 인원들이 재판을 놔두고 있는데 어떻게 비난 하겠습니까
그리고 나중에는 자유시 참변으로 세력이 많이 약해져서 그런 말 못하는 상황였다고 생각하고요?

홍범도가 재판에 참가에서 회유한 것도 기록에 남아 있는거 보면 순수한 목적으로 재판 참가했다고 보기는 힘든거 같은데요


계속 같은말은 하지만
홍범도가 레닌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결과적으로 처벌 받은사람은 없고 계속 처벌 해달라는 이야기가 없으니까 의문이라는겁니다.
관심없다여 [L:48/A:486] 2023-09-10 01:35:51
@유이
그 간도 독립군들은 자유시에 홍범도, 홍범도 부대랑 같이 있던 사람들입니다. 재판만이 아니라 재판 이후에도 비난하지 않고, 함께 활동하면서 상해파에 힘 실어주면서 자유시 참변 문제 해결할 수 있게 협력했습니다.

그리고 상해파가 홍범도랑 함께 한 것은 재판 다 끝난 후입니다. 홍범도가 재판위원으로 참가한 후고, 심지어 11월 결정서로 이미 레닌이 상해파들 다 풀어주라 해서 다 풀어준 후입니다. 협상 위임한게 12월이고, 보고서 같이 제출한게 다음해 2월입니다. 상해파 입장에선 걸릴 문제가 하나도 없었고, 오히려 힘을 쥐고 있는 입장이었습니다.

레닌이 11월에 상해파에게 힘 실어줘서 상해파를 다 풀어주면서 상해파가 주도하게 했지만, 대신 이르쿠츠크파의 잘못은 명백하긴 해도 더 이상 분쟁 생기면 안 되니 상해파더러 이르쿠츠크파를 처벌하지 말라고 했는데 다음해 2월에 홍범도가 레닌이 뜻을 밝힌 후에도 처벌 요구한 것이었죠.

재판을 놔두고 있다는 것은 잘못 알고 있으신걸로, '재판 다 끝나고, 레닌이 직접 힘 행사해서 극동지부와 이르쿠츠크파를 비난하면서 상해파를 다 풀어주고 상해파에게 권력 몰아준 후'입니다.
흑설공주 [L:45/A:739] 2023-09-10 00:42:22
갠적으로 길게 얘기할 필요가 없는 문제라 생각함

좌좀들보면 평생 독립운동하거나 독립운동 지원하다가 말년에 1-2년 친일로 전향한 사람도
친일파로 극혐을 하는데....

자유시 참변 전까지 열성적으로 독립운동하다가
자유시 참변 이후부터 독립운동을 포기하고 공산당의 녹을 받아먹고 산 사람이
정말 순수한 독립투사인지 의문임

우리나라가 1923년 해방된건 아니자나요?
관심없다여 [L:48/A:486] 2023-09-10 00:44:57
@흑설공주
저건 홍범도가 공산당인가 아닌가 문제가 아니라 자유시참변에 참가했나 안했나 역사적 문제임. 친일파라고 해서 저지른 적 없는 학살죄 뒤집어씌울 수 없는 것과 같은 문제입니다.

홍범도가 1927년 생계비 위해서 공산당 가입하고, 이후 독립운동 그만두고 지낸 것을 문제라 하는 것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근데 자유시 참변의 역사 사실 문제를 두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유이 [L:48/A:669] 2023-09-10 00:46:40
@흑설공주
저분은 홍범도가 공산주의자인건 인정하는데
자유시 참변때 연관성 없고 독립군 때려 잡지는 않았다고 계속 이야기함
흑설공주 [L:45/A:739] 2023-09-10 00:49:08
@관심없다여
글쎄 그게 쓸데없는 논의의 확장같은데
홍범도가 공산당이니 육사앞 흉상은 맞지 않다

이정도로 끝낼 이야기

어차피 역사적 사료가 부정확한 상황에서 근거없는 이야기 백날해봐야 뭐함?
이게 정답이다 라고 증명해줄 사람 있음?

없음
관심없다여 [L:48/A:486] 2023-09-10 00:59:06
@흑설공주
자유시 참변건은 공산주의가 아닌 다른 독립군들 증언과 행보로도, 심지어 피해자인 상해파 공산당들과 공식 활동으로도 증명됩니다.

그리고 유이님은 홍범도가 책임자들 처벌 요구한 적 없다고 했지만, 홍범도는 모스크바에서 공개비난하면서 책임자들 이름 하나하나 부르면서 모두 처벌할 것을 요구하며 조선 4천년 역사에서 전례없는 살인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잘못된 역사 사실들을 바로 알리는 것입니다.

설령 홍범도가 아니라 이완용이라 할지라도 이완용이 서울에서 400명 죽였다라는 루머가 돌았으면 그거 사실 아니라고 바로 잡으려고 햇을 겁니다.
관심없다여 [L:48/A:486] 2023-09-10 00:58:44
@흑설공주
홍범도 육사 앞 흉상은 애초 설치한 것이 잘못인데 이제 와서 철수하는 것도 모양 빠지는게 사실이긴 함. 육사가 정권 따라서 마구 바뀐다는 거니. 그러나 홍범도상만 철수였으면 크게 논쟁이 되지 않았을텐데 이범석 등 흉상까지 같이 철수한다고 해서 논란이 커진거였는데 어느사이 홍범도만 남아버림.

정작 그럴 시간에 육사 시설이나 보강하지; 육사 시설이 엉망진창인데 홍범도상으로 시끄럽게 떠들어도 육사 시설 고치겠다는 육사 출신 정치인은 한 명도 없는 듯.
흑설공주 [L:45/A:739] 2023-09-10 01:09:22
@관심없다여
원래 군대 별은 정권바뀔때마다 휙휙 바뀜. 자기 정권 별들 달게하려고 위에 장성들 졸업시킨게 하루이틀도 아니고
정치적시각으로 설치한거니 정치적으로 철수하는것도 맞는것임

그리고 군대가 병신인건 군대가 알아서 할일이지 정치인이 어떻게 할수 있는게 아님
걍 군연금부터 퇴역장성예우, 예비군등... 오만군데 다 뜯어고쳐야 하겠지만
이권가진이들이 다 엮여있어서 할수가 없는부분인거고

자유시 참변에 홍범도는 나도 제 3자라고 보고는 있음
다만 그러한 사건에서 러시아까지 아우르는 일본의 강함과 아군끼리 싸우는 독립군에 대한 실망? 등등
노환?.. 등등 여러가지 이후로 독립운동을 포기하고 공산당원으로 남은 여생을 산 모습이

몇십년 독립운동을 하거나 독립운동을 지원하다가... 태평양 전쟁까지 일으키는 일본을 보면서
"자주독립은 더이상 힘들겠구나.." 하면서 포기하고 전향한 친일파들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음

그뿐임
관심없다여 [L:48/A:486] 2023-09-10 01:18:42
@흑설공주
최진동은 공산주의에 빠진 친아들을 체벌하다가 죽이는 등 공산주의 싫어했지만, 독립운동 포기하고 일본과 타협해서 친일파 논란이 났죠.

사실 일본 선전행동에 가담하진 않았지만, 저항하는 거 포기하고 얌전히 한인사회 대표로만 살아가겠다로 끝나버린....

이쪽도 독립운동 포기하고 자포자기한 듯.

홍범도나 최진동이나 독립운동 포기하고 여생 문제에 빠져든 것을 보면 의기는 죽고, 자포자기해서 악질 친일파 수준은 아니더라도 그냥 현실에 타협하는 등 모습이 최소 독립운동을 '포기'한 것은 맞을 듯.
관심없다여 [L:48/A:486] 2023-09-10 00:43:02
5-1 1. 참변 후, 홍범도가 들어간지 얼마 안되었는데 실적도 없었고 전투로 인해 전투편제를 다시 짜야되는 상황도 아닌데 갑자기 의문의 승진한 이유

잠시 우대해주는 척 하면서 띄워주는 명목상 편재였습니다. 일본이 원동공화국(극동공화국)과 소비에트러시아 등에 항의를 하니까 정규군에 포함시켰는데, 정작 1년만에 해산당하고 물러나야했죠.

오히려 레닌이 11월 결정서로 이르쿠츠크파 비난하고 극동지부도 비난한 것을 보면 상해파랑 같이 활동하면서 이르쿠츠크파 비난 중인 홍범도를 기꺼워했겠죠. 다시 무력 충돌은 안 되겠지만, 대형사고 친 이르쿠츠크파를 억누르는데 큰 도움이 되니까요.

2. 반평생 독립운동 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독립군 학살했다고 오해를 사서 명예에 타격 입고 암살까지 당할뻔 했는데 레닌 만나고 나서 자신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에 대해 죽을때까지 이르쿠츠크파에 대한 항의하거나 처벌 탄원서 등 적극적인 처벌에 대한 요구하지 않은 이유

이르쿠츠크파에 대한 처벌 요구했습니다. 공개적으로 살인자들이라 하면서 처벌을 요구했는데 레닌이 더 이상 갈등은 안 된다면서 상해파에게 힘 실어주면서도 이르쿠츠크파 처벌 거부한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해파들이 홍범도의 이름 도용을 항의하는데 함께 해줄 정도로 이미 상해파들에게도 알려져있었습니다.

당장 조선유격에 대한 보고서 저거 홍범도와 최진동이 상해파와 함께 낸 것입니다. 간도 독립군 장교 28명이 상해파에게 힘 실어주면서 자유시 참변 문제해결을 상해파에게 처리를 맡긴다면서 함께 하기로 했고요. 오히려 이 때 상해파와 함께 활동하는 모습이 나왔었습니다.

사할린부대원 2명은 홍범도의 이름 도용건을 믿지 않았거나, 홍범도 때문에 균형이 무너진 것에 앙심을 품은 것이겠죠. 둘이서만 따로 움직이고 이후에 다른 언급이 없는 것도 상해파들에서 홍범도를 향해 보복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애초 자유시 참변건으로 이르쿠츠크파 맹비난 하면서 상해파에 힘 실어주고 있었으니.


3. 극동민족대회에 참가해서 연관된 피해자들이 여러명 있음에도 레닌과 단독회담 할수 있었던 이유와 단독회담한 이유

홍범도가 대표격이라 가장 우대를 받았었던 것이 있습니다. 홍범도만이 아니라 최진동도 단독회담은 아닌듯 해도 1월 21일에 레닌을 만나 회담하고 권총 받았습니다. 근데 최진동은 그 권총을 별로 내켜하지 않은 듯하고 아예 공산주의에 빠진 큰아들과 다투며 사상갈등을 하다가 체벌로 살해하는 막장 가정사까지 생겼습니다.

레닌 만나고, 받은 사람이 홍범도 혼자가 아닌데 최진동 등은 내켜하지 않아서 언급을 안해서 잘 알려지지 않았고 홍범도만 알려진 모양새. 최진동도 아예 당시에 기념사진 찍은 것이 있다는 것이 발굴됐습니다.
관심없다여 [L:48/A:486] 2023-09-10 00:46:09
4. 1927년 공산당 가입 후, 1930년에 당원증 발급 받았는데 당원증에는 홍범도가 1919년9월부터 1922년10월까지 참전군인으로서 협동농장에 대한 혜택의 수혜대상임을 확인한다고 적혀있는데 봉오동, 청산리는 공산당이랑 관계도 없고, 1923년부터 연해주 지역 지도자로 활동했는데 이건 어떻게 설명할래요 ?? 공산당의 기록 착오인가요 ? 아니면 공산당이 홍범도의 봉오동, 청산리 인정해줘서 공산당 당원증 준거가요?? (당시 공산당 당원증은 정말 받기 어려웠던거 아시죠?)

이게 자유시 참변과 무슨 관계인가 싶나 했는데, 님이 말씀하신 그거 홍범도 당원증이 아니라 사령관 신분증입니다.

시베리아 내전 당시에 다른 연합군들이 철수하는 것과 달리 일본군은 연해주에 진주해서 아예 연해주, 더 나아가 시베리아를 합병하려는 의도가 있어서 일본군 때문에 러시아 내전이 끝나도 시베리아 내전이 끝나지 못합니다.

이 때 독립군들은 적군측에 가담해서 연해주를 비롯해 시베리아를 점령하러 온 일본군과 싸웠는데 이 때문에 러시아군보다 더 열심히 싸운다고 기록이 있을 정도입니다.

홍범도의 1919년~1922년 저건 시베리아 내전에서 공로를 말하는 것입니다. 봉오동, 청산리 전투는 시베리아 내전과 관계없지 않습니다. 러시아 내전을 틈타서 일본군이 연해주와 시베리아를 먹으려는 의도로 올라오고 있을 때 독립군이 싸운 활동 중 하나입니다.

1919년 4월쯤에 일본 해군육전대가 블라디보스토크에 상륙하면서 일본의 시베리아 침공이 시작되고, 일본군은 만주와 연해주를 통해서 시베리아 깊숙한 곳까지 침공을 하려 했습니다.

홍범도는 봉오동 전투 이전에 소련 공산당이 되는 적군과 블라디보스토크에게 연결고리가 있었고, 연해주가 일본에게 공격당하는데다가 일본군은 연해주의 독립군을 몰살하려해서 홍범도는 간도까지 도망치고 1919년 10월에 자잘한 소규모 승리를 거두기도 하는데, 다음해인 1920년 6월에 봉오동 전투가 벌어집니다.

홍범도는 1930년에 당원증 발급 받은 것이 아닙니다. 1927년 가입해서 입당하고 당원 됐었습니다.

저건 적군과 연결 가진 상태로 당시 시베리아를 노리고 침략해온 일본군과 싸웠다며 1930년에 늦게 1919~1922년 싸운 공적으로 사령관 신분증 발급한 것입니다.

시베리아 내전과 일본의 시베리아 침공을 모르시는 것 같은데, 당시 훗날 소련이 되는 적군 소속은 일본군과 '전쟁 중'이었고, 독립군들은 그런 일본군들과 싸우는 아군이었습니다. 아예 연합을 하기도 했었고요.

홍범도는 봉오동 전투 이전부터 공산당과 연결고리가 있었고요.
유이 [L:48/A:669] 2023-09-10 01:02:57
@관심없다여
2번 답변 내용이 조금 부실한데
제가 물어보고 싶었던 중점 사항은
홍범도가 명예에도 실추되고 누명이 씌여서 항의 했는데 처벌이 안되면 왜 죽을때까지 본인 뜻을 관철하지 못했냐고
단기성으로 끝났냐 이겁니다

저는 이게 의문점이라서 그래서 위에 쑈라고 말한겁니다


4번 제가 질문은 잘못했는데 당원증이 아니라 복지 혜택증 말한겁니다
링크랑 사진 올려놨고 사진에 적혀있는거 그대로 썻고
내용 보시고 다시 답변 달아주시길..
관심없다여 [L:48/A:486] 2023-09-10 01:16:38
@유이
홍범도가 자유시 참변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간도 독립군 장교 나머지 27명과 상해파로도 확인된 사례입니다.

명의도용건은 홍범도만 당한게 아니라 다 같이 당해서 딱히 홍범도만 크게 부각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홍범도가 자유시참변에 간접 책임은 무장해제를 받아들여서 440명이 무장해제를 하면서 졸지에 균형이 무너져버린 것이 있죠.

홍범도:상해파 주도 통합 지지한다. (그러다가 2달후) 주도권이 극동지부 지원 받는 고려혁명군쪽에 쏠렸으니 무장해제 받아들이고 이쪽에 통합되겠다.(그 후 얼마 안 지나서 사할린부대를 극동공화국의 군대 1000명과 고려혁명군 300명이 강제무장해제 시키려다가 자유시 참변 터짐)

사할린부대원 2명이 습격한거 외에 홍범도가 자유시 참변에 대해 비난 받은 것은 당시에 무장해제에 순순히 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유시 참변에 가담했다는 루머는 거의 돌지도 않았고, 배신으로 여겨진 것은 무장해제 받아들인 것 정도였죠. 그 외에 명의도용을 믿은 사람도 소수 있을 수 있지만, 이건 금세 반박이 된데다가 홍범도만이 아니라 간도독립군 명의 다 도용해서 홍범도는 그 중 한 명이었을뿐입니다.

애초 홍범도만 누명 쓴게 아니라 독립군 장교들이 다 같이 누명을 쓴 상황이라 단체로 상해파 지지하면서 이르쿠츠크파에 항의하고, 22년 2월에 홍범도와 최진동이 상해파랑 함께 보고서 제출하고 공개적으로 처벌 요구하면서 레닌이 상해파에 힘 실어주면서도 충돌을 막았습니다.

사실 홍범도가 자유시 참변 문제에서 무장해제 외엔 두고두고 욕 먹었다는 말도 없었고, 지금 나오는 주장들은 21세기에 생긴 말들이 대부분입니다.
유이 [L:48/A:669] 2023-09-10 01:37:01
@관심없다여
좋습니다
관심없다며님 선생님 말 다 맞다고 하구요

홍범도는 자유시 참변이랑 전혀 관련이 없다고 치고
이야기 해봅시다


1. 홍범도와 많은 사람들이 자유시 참변으로 명예에도 실추되고 누명이 씌여서 항의 했는데 레닌이 처벌을 안하면
아무리 지지자라도 보통 실망해서 떠나거나 뭔가 다른 행동을 보여야하는데 전혀 그런게 없죠?

그리고 항의하는게 단기성으로 끝났고, 공산당에 투신했냐 이겁니다


4번 복지 혜택증 올린거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사령관증이 아니라 복지증이고,

복지증에 1919년9월부터 1922년10월까지 참전군인으로서 협동농장에 대한 혜택의 수혜대상임을 확인한다고 적혀있는데
소련군이 홍범도가 독립운동한 연도 같은걸 착각하고 그냥 써주진 않을꺼 같고
왜 저렇게 적었을까요

님 말씀대로라면 연도가 더 빨리 써야 정상 아닌가요 ?
관심없다여 [L:48/A:486] 2023-09-10 02:00:46
@유이
1.홍범도의 누명건은 몇 번 말씀드리지만, 당대에 별로 퍼져있지도 않고 그냥 명의 도용인거 알 사람들은 다 아는 내용이었습니다. 상해파조차도요. 상해파도 "이걸로 배신자 취급 받으면 죽는 것이 낫겠다."라는 홍범도, 최진동 의견에 공동발제자 해줬습니다.

[이게 큰 문제처럼 여겨진 것은 21세기에서나 벌어진 일입니다.] 홍범도가 21세기 주장을 당시 알 리가 없죠. 그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은 주장이고, 들어도 "뭔 헛소리야?"하고 마는 이야기였으니까요.

거기다가 피해자인 상해파가 대신 혜택을 받은 상황이었습니다. 자유시 참변건에서 홍범도가 책임 없다고 간도독립군 27명, 상해파도 인증한 것입니다. 사실 간도 독립군 27명도 같이 명의도용당한 피해자들이라 같이 항의했지만 이후 홍범도는 독립운동을 포기한 모양새고 최진동의 경우는 1년 이상 좀 더 싸우다가 결국 자포자기하고 은퇴해버리죠.

시베리아 내전이 1919년 4월에 벌어졌지만, 홍범도가 처음으로 대대적 전과 보인 것이 1919년 10월입니다. 그 전에 연해주에서 일본군 피해서 간도로 도망쳤습니다. 전투 시작준비가 1919년 9월쯤이죠.

일단 자유시참변 이후 시간대 정리해드릴게요.

1921년 7월 30일 군사재판 시작

1921년 10월 허근 등이 자유시 참변 보고서를 모스크바에 보내면서 따지면서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을 요구함.

1921년 11월 초에 이르쿠츠크파가 돌연 홍범도, 최진동, 허근(위와 동일인 맞음), 안무, 지청천 등의 명의 도용해서 상해파에 대한 규탄 성명서 발표. 자유시참변은 정당했다는 내용.

1921년 11월 15일 레닌이 11월 결정서로 상해파 다 풀어주고, 상해파에게 권력 밀어주고, 자유시 참변은 이르쿠츠크파와 극동지부 책임이라고 명시하면서 비난함. 그러나 상해파더러 이르쿠츠크파와 더 이상 싸우지 말라고도 함.

1921년 12월 14일, 명의 도용당한 간도 독립군 28명(홍범도 포함)이 함께 상해파에게 자유시 참변건 협상 전권 위임함. 상해파 대표 김동한이 그래서 간도 독립군들로부터 전권을 위임 받음.

1921월 1월 말, 2월에 있는 극동민족대회 참가하려고 모스크바로 감. 2월 홍범도와 최진동이 조선유격부대에 대한 보고서 올리면서 자유시 참변건으로 이르쿠츠크파 맹비난하고 이 때 함께 제출한 사람이 상해파 대표인 김동한. 내용 목적을 "이르쿠츠크파와 러시아 정책담당자들의 범죄를 밝히기 위함."이라고 적었음. 자신들 포함한 28명 명의 도용했고 , 4000년 조선 역사상 전례가 없는 살인자들이라며 책임자들 처벌 요구하면서 그 이름들을 하나하나 폭로함. 슈미야츠키, 최고려, 김하석, 오하묵, 김철훈 등. 명의 도용당한 건으로 배신자 취급받는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도 언급.

상해파 대표가 공동발제자로서 홍범도가 명의도용 당해서 배신자 취급 받는다는 부분도 있음. 상해파도 이렇게 공식 보고서로도 홍범도는 자유시 참변과 관련 없다고 여기며 홍범도만 도용당한게 아닌 문제였음. 상해파에서도 이렇게 재판 후에도 홍범도는 자유시참변건으로 억울한 입장인거 공동발제자로서 인정해주고 함께 움직였었음.(사실 홍범도만이 아니라 28명 전원을 두고 한 것이지만. 홍범도만 특별하게 따로 분류한 것도 아니고.)

당장 저번달에 자유시 참변 비난하던 독립군 장교가 다음달 초에는 명의도용으로 레닌에게 직접 자유시 참변건 책임자들 처벌하라며 항의 보고서 보낸 허근이 자유시 참변 찬성으로 말 바꿨다는 누명을 쓰기도 했으니.

근데 28명의 문제였는데 21세기에는 어느사이 홍범도 한 명만 남게 된...
관심없다여 [L:48/A:486] 2023-09-10 02:11:38
@유이
년도건은 사실 위에 말한 [일본군은 연해주의 독립군을 몰살하려해서 홍범도는 간도까지 도망치고 1919년 10월에] 보시면 아시겠지만, 홍범도가 싸우기 시작한게 9월쯤이고, 첫 전과가 10월입니다.

그 전에 연해주에서 일본군 피해서 간도로 도망갔었습니다. 근데 도망치기 전부터 공산당과 가벼운 커넥션은 있던 상황이고, 적군 입장에선 백군 지원 명목으로 와놓고 시베리아 전체를 먹으려고 드는 일본군과 싸워주는 전력이었죠.

1922년이 끝인 이유는 1922년에 일본이 연해주에서 철수한다고 하면서 항일무장단체는 대신 모두 해산하라 하고 그걸 받아들이면서 해산됐기 때문.

근데 김창수와 김오남이 사할린부대 출신인데 참변 생존자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얘네가 홍범도를 죽이려고 한 이유는 수라젭카에서 극동공화국 군대에게 공격당할 때, 같이 싸워주지 않았다고 죽이려고 한 것이라는 증언이 있습니다.

3월까지 같은 편 - 근데 5월에 무장해제 받아들임 - 6월에 수라젭카에서 자유시 참변.

자유시 참변에 원인이 있다고 죽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편에서 싸워주지 않았다고 죽이려고 했다는 증언이 있습니다. 홍범도 일지에도 그렇게 기록됐듯이, 누명을 써서 죽이려고 했기보다는 자세히 보면 "사할린부대가 공격당할 때 넌 왜 사할린부대랑 함께 안 싸웠냐? 죽어!" 였던..

자유시참변에 가담했다는 누명이 널리 퍼졌다는 말 자체가 21세기에 생겨난 역사 창조급이라...
유이 [L:48/A:669] 2023-09-10 02:25:13
@관심없다여
네 답변 감사합니다
홍범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겠습니다
관심없다여 [L:48/A:486] 2023-09-10 03:46:18
@유이
네 수고하셨습니다.
후부키 [L:67/A:427] 2023-09-10 00:59:17
빨갱이들 내부총질 사정이야 어찌되었던 확실한 건 홍범도 본인이 자필로 쓴 일지에 조선군대 들어갔다가 일제강점기 훨씬 전인 1887년에 상관 죽이고 탈영한 기록이 있죠

자유시참변과는 별개로 이것만으로도 육사에 흉상 세울 인물이 아닌 건 확실하네요

군대에서 상관 죽이고 탈영한 사람의 흉상을 육사에 세운다고요?

나중에 독립운동한 공은 있으니 독립기념관에 세우는 건 맞죠. 다만 독립기념관에 흉상 옮기더라도 젊었을 때 연쇄살인한 기록과 자유시 참변에 관한 기록도 병기해야겠죠
관심없다여 [L:48/A:486] 2023-09-10 01:09:49
@후부키
자유시 참변건은 일단 홍범도 책임이 없다고 피해자인 상해파에서도 보았고(균형 무너뜨린 탓은 있지만.) 간도 독립군 장교 28명 모두 정치성향 떠나서 홍범도는 책임 없다고 여기며 홍범도랑 함께 자유시참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상해파에 손 들어줬습니다. 반공독립운동가들까지도요.

반공독립운동가인 최진동이 이르쿠츠크파가 명의 도용했다고 홍범도랑 같이 모스크바 가서 22년 2월 극동민족대회에 참가하고 항의했고요. 상해파에서도 이 때 홍범도, 최진동과 함께 보고서 제출했고요.

홍범도는 아예 자유시참변 일으킨 책임자들 이름 하나하나 부르며 4000년 역사에서 전레없는 살인자들이라며 이들 처벌 강력요구했고요.

이렇게 다른 독립군들 기록과 입장, 행보로도 [교차검증]이 됨.

일단 자유시참변 문제 아니더라도 다른 독립군들이 상해 임시정부로 가는데도 가지 않았다는 것에서부터 육사에 세우기는 영 아닌 것은 맞죠.

근데 장교 살해건은 자신을 괴롭힌 장교 살해라 잘못이라 할 순 없겠지만, 육사에 세울 인물은 아니죠.
후부키 [L:67/A:427] 2023-09-10 01:26:49
@관심없다여
자기 괴롭혀서 죽였다는 것이야 말로 교차검증안된 홍범도의 일방적인 주장이죠. 일반적인 군대 규율 따르게 한 것을 괴롭힌다고 생각해서 죽인 건지 진짜 괴롭혀서 죽인 건지는 모르죠.
아니 그 전에 괴롭힌다고 죽이는 게 말이 되나요? 그냥 군대 때려치거나, 막나간다 해도 두들겨 패고 나가는 게 보통이죠

자유시 참변 건은 뭐 빨갱이 내부총질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 관심도 없어서 자세한 건 모르겠는데 두 정황이 충돌하면 이런 정황도 있고 저런 정황도 있다고 둘다 기록하면 될 일이고요
관심없다여 [L:48/A:486] 2023-09-10 01:29:18
@후부키
군대 괴롭혀서 죽인거는 잘못이라 할 수 없지만, 육사에 세울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냥 안 죽이고 나가도 됐을텐데.

일 했는데 돈 안 주고 체불하는 사람 죽인 적도 있는 등 젊을 때 원한 품으면 살인으로 보복하는 거칠고 위험한 성향이었던 듯.

--

자유시 참변건 문제는 지금 현재 나오는 잘못된 주장은 당시 기록 어디에도 없는 것이고 21세기에 갑자기 온갖 내용들이 창작된 내용입니다.

당시 양측 기록으로도 이미 교차검증이 된 것이고, 그 외에 제 3자들의 입장으로도 교차검증이 되는지라 제가 괜히 교차검증 언급한 게 아닙니다.
후부키 [L:67/A:427] 2023-09-10 01:32:05
@관심없다여
괴롭힌다고 죽이는 건 잘못이 맞아요

당한만큼 갚아주는 정도면 몰라도요
관심없다여 [L:48/A:486] 2023-09-10 01:34:13
@후부키
ㅇㅇ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당시 기준 괴롭힘은 현재의 괴롭힘 수준이 아니었겠지만...
후부키 [L:67/A:427] 2023-09-10 01:38:18
@관심없다여
일제시대 때 강제 징용되었다가 일본인 상관이 괴롭힌다고 죽인 거면 잘못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조선시대때 머슴보단 군인이 낫겠다고 군 들어가서 같은 조선인 상관이 괴롭힌다고 죽인 거에요
유이 [L:48/A:669] 2023-09-10 01:48:12
@후부키
홍범도는 산에서 도적질 하면서 어린 비구니를 부인으로 얻는거부터
그냥 인성 ㄱㅎㅌㅊ임
후부키 [L:67/A:427] 2023-09-10 01:51:16
@유이
독립운동 시작한 계기도 뭐 민족정신 같은 거창한 게 아니라 엽총들고 사냥꾼 하고 있다가 일본이 총기 단속하니까 빡쳐서 시작했다고 알고 있어요
관심없다여 [L:48/A:486] 2023-09-10 01:59:15
@후부키
임금체불...살해...

이것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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