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우는 삼국시대부터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매우 귀한 소로 인정을 받고 우수한 품종으로 기록된 여러 역사적 자료들이 존재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 영조 8년(1732년) ‘제향에 쓰이는 흑우는 더없이 중요한 제사에 바치는 물건이다.(祭享黑牛係是莫重薦獻之需)’ / 영조 43년(1767년) ‘친경 때에 흑우를 사용하라.(親耕時用黑牛)’ / 《세종실록》 ‘제주흑우는 고기 맛이 우수하여 고려시대 이래 삼명일(임금 생일, 동지, 정월 초하루)에 진상품 및 나라의 제사를 지내는 제향품으로 공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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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및 각종 통계 자료에는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살아있는 한우 약 150만 마리 이상이 일본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로까지 반출되었고, 죽어서 가죽으로 반출된 한우가 약 600만 마리로 추정된다.’라고 나와 있다. 소의 가죽은 대부분 일본 군인들의 피복, 군화, 배낭, 혁대 등의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공장의 기계 동력 전달용 벨트로도 이용되었다고 전한다. 당시 소는 쌀, 콩 다음으로 중요한 일제의 식민지 수탈 대상이었다고 한다. (일본 제국주의·천황제 하의 조선우 통제·관리, 조창연 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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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권업모범장사업보고서를 보면 한우모색은 적갈색 77.8%, 황갈색 10,3%, 흑우 8.8%, 칡소 2.6%, 갈색백반우 0.4%, 흑색백반우 0.1%로 다양한 털색을 가진 토종 한우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
일본은 1938년 한우에 대한 새로운 표준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일본 흑일매(黑一枚), 한국 적일매(赤一枚)’ 즉, 일본의 소는 흑색을 표준으로 하고, 한국의 소는 적갈색을 표준으로 한다는 모색통일 심사표준법을 발표한다(동아일보 1938년 12월 21일). 다시 말하자면, ‘적갈색 소’만을 조선우(朝鮮牛)로 인정하기로 하는 한편 일본은 ‘흑색’을 기본으로 ‘와규(和牛)’를 장려한다는 모색 일체화 정책을 편 것
근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