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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
마비노기 | L:42/A:449 | LV30 | Ex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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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 | 2015-07-04 18:50:46 | 5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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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부터 시작될 이야기는 내가 체험한 일이다. 이미 30년도 더 전에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무렵. 할아버지 집에 놀러갔을 때 이야기다. 추워서 얼어붙을 것 같은 이런 계절이 되면 어제 일처럼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학교가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이 되면 나는 할아버지 댁에 매년 오랫동안 머물렀다. 여름과 겨울을 반드시 할아버지가 같이 보내는 것이다. 그 해 겨울도 할아버지는 여전히 해님처럼 애정으로 가득 찬 따스한 미소로 나를 맞아주었다. 

 

"잘 왔다. K(내 이름). 조금 쯤은 자랐니?"

 

나 는 참지 못하고 할아버지에게 안겨서 늘 그렇듯이 목욕도 잠잘 때 같이 보냈다. 할머니는 꽤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나서 할아버지는 홀로 자그만 집에서 살고 계신다. 할아버지도 분명히 내가 방문하는 걸 매일마다 기대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할 아버지 댁은 도호쿠 지방 산간에 위치한 마을에 있다. 나는 매년 할아버지 댁을 방문할 때마다 모험하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당시, 나는 도시에서 자랐기에 할아버지가 사는 지방 전부가 신선했다. 청명하게 흐르는 강이나, 광대한 산이나, 상쾌한 나무들, 신성할 정도로 근사한 대자연이 나는 무척 좋았다. 특히 겨울이 되면 눈이 내려서 주위가 반짝반짝 빛나는 은빛 세계가 되어 도심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 펼쳐졌다.

 

그 중에서도 나는 할아버지가 가장 좋았다. 언제나 따스하게 자상하게 대해주고 결코 혼내는 법이 없었다. 그 온화한 성격과 질리지 않는 미소로 할아버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 꽃이 활짝 피는 것처럼 할아버지 주위에서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또한 할아버지는 농업 이외에 사냥도 해서 산에 정통했다. 대자연과 같이 살아가고 살아있는 것의 목숨을 빼앗는 사냥을 하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생명이 존귀하다는 걸 잘 알고 자연이 소중히 여기며 조화가 가장 중요시하는 분이었다.

 

할아버지 댁에 머물러서 1주일 정도 지난 어느 날 아침, 나는 마을에 있는 친구 A, B 2명과 비밀기지를 만들러 나갔다.

 

"할아버지 갔다올게! 주먹밥 고마워!"

 

"오, 조심하려무나. 강에 빠지지 않도록 하고. 너무 멀리 가선 안 된다. 아, 잠깐 기다려라, K."

 

"뭔데?"

 

"알겠냐, K. 몇 번이고 말하지만 '안쪽에 있는 숲'에는 절대로 가서는 안 되다. 거기는 할아버지도 가까이 가지 않는 곳이니 말이다. 알겠니?"

 

"응. 알고 있어."

 

" 게다가... 왠지 오늘 아침부터 산이 심상치 않구나. 새가 시끄러운데다가 그에 비해 정작 산은 묘하게 조용하니, 묘하게 불안해서 견딜 수 없어. 너에게 그다지 잔소리를 하고 싶지 않지만 이런 날은 가능한 산속으로 가서는 안 된다."

 

"응, 알았어."

 

그 날은 이 시기에는 드물게 눈이 내리지 않았고 활짝 갠 날이었다. 그 이외에는 별로 특이할 것 없는 평범한 아침이었다. 그러나, 이때 나는 아직, 할아버지가 한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모르고 있었다.

 

할 아버지가 말하신 '안쪽에 있는 숲'이란 이 산 안에 있는 어느 숲으로 "거기에는 절대로 가서는 안 된다."라고 할아버지가 몇 번이고 말했던 곳이었다. 가까이 가서는 안 되는 이유는 '안쪽에 있는 숲'이 산에 사는 신인 '산신'을 섬기는 신성한 숲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코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혹시 산신과 마주치면 목숨을 잃는다거나 생명력을 얻어서 평생 건강하게 살 수 있다거나 여러 이야기가 들린다. "목숨을 빼앗기도하지만 주기도 하는 이 산 그 자체인 신'이라고 할아버지가 말했다. 애당초 나는 이 지방 사람이 아니라서 '안쪽에 있는 숲이 어떤 곳이며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기에 할아버지가 하는 말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과 합류해서 산에 도착한 후 비밀기지를 만들 곳을 찾았다.

 

"자, 그럼 어디서 만들까?"

 

"우리들 비밀 기지니 조금 안쪽으로 가자."

 

"어른들이 발견하면 숨기는 의미가 없으니까."

 

우리는 좀 더 안쪽으로 나아갔다. 30분 정도 들어가니 잡목림 속에 마침 탁 트인 곳이 있어 거기에 비밀기지를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낮이 지나, 점심을 먹으면서 기지 만드는데 몰두했다. 

 

해가 저물어 저녁이 될 무렵, A는 불안한 얼굴로 숲 안을 바라보았다. 

 

"왜 그래?"

 

"...왠지 산이 이상해. 평소하고 달라."

 

나는 A가 하는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내 눈에 비친 숲은 평소와 다름 없는 산 속 풍경이었다. 다만 확실한 건 A가 말하는 것과 할아버지가 말하는 거랑 겹쳤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니?"

 

"나도 잘 모르지만 뭔가 좀... 산이 흔들리는 것 같아. 불어오는 바람이 뭔가 이상해. 춥지도 않고 따뜻하지 않고... 저걸 봐!"

 

A가 가리키는 숲 속에 사슴 대여섯 마리가 떼를 지어 달려갔다. 그리고 이어서 새떼도 무언가에게 쫓기듯이 부산을 떨면서 우리 위를 날아올랐다.

 

"이 시기, 사슴은 좀 더 안쪽에 있을 텐데 어째서지? 곰에게 쫓긴 건가? 그렇다면 위험해."

 

"아니, 이 주위에는 사냥꾼이 작업하고 있으니까 곰은 절대로 오지 않아. 역시 뭔가 이상해. 오늘은 그만 돌아가자."

 

"그렇네. 오늘은 돌아가는 게 낫겠어. 이미 늦었고."

 

A하고 B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아직 더 놀고 싶지만 우리는 빨리 돌아가기로 했다. 이때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귀로를 따라 20분 정도 걸어가니 아무래도 주위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B가 말을 꺼냈다.

 

"이봐, 이런 곳 지나갔어? 올 때 이런 커다란 바위 없었잖아."

 

A가 맞장구 쳤다.

 

"응, 오른쪽으로 가볼까. 저쪽이었던 건지도 몰라."

 

그러나 오른쪽으로 가도 모르는 길이었다. 우리는 완전히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나는 제쳐두고 A하고 B에게 있어서 여기는 오랫동안 살아왔던 산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서 마당 같은 곳으로 결코 길을 잃을 곳이 아니었다.

 

대 체 얼마나 걸었던 걸까. 시간도, 거리도, 지금 어디에 있는지조차도 우리는 알 수 없었다. 마치 똑같은 장소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어느샌가 깊은 숲에 들어가버렸고, 겨울이라서 일조시간이 짧은 탓인지 숲에 있는 나무들이 태양을 가려서인지 주위는 점점 어두워졌다. 어느샌가 눈도 내리기 시작하고 추워지기 시작해서 우리는 불안해졌다. 잠시 더 걸으니 해는 저물기 시작하여 면사무소 쪽에서 17시를 알리는 종이 울려퍼졌다. 나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이미 17시야. 여기는 어디야?"

 

A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나도 몰라. 그래도 이상해. 그런 얕은 곳에서 헤매다니."

 

"이렇게 늦어버리면 아버지에게 혼날 거야. 빨리 돌아가자."

 

B가 재촉했다. 하지만 우리는 지쳐서 적당한 곳에서 주저앉았다. 할아버지 마을에서는 아이들에게 반드시 손전등을 쥐어주는 관습이 있었기에 다행히도 3명 다 손전등을 가지고 있었다.

 

"지쳤어. 추워. 배도 고파."

 

B가 불평할 때 내가 말했다.

 

"이봐, 저기 한 번 가보자."

 

내 가 손전등으로 비치는 곳에 색이 벗겨진 커다란 토리이가 있었다. 우리는 조심스레 가까이 가서 토리이를 지나니 제멋대로 배열된 돌계단을 지나가니 그 너머에 자그만 사당 같은 것이 있었다. 사당 앞에는 쌀이나 병에 들어간 물, 혹은 술이 공양되어 있었다. 그 양쪽에 솔도파 같이 한자가 잔뜩 적힌 것이 있었다. 그걸 어떻게 읽는지 우리는 알 수 없었다. 그걸 본 순간 A하고 B는 깜짝 놀란 듯 얼굴을 마주보았다.

 

"설마... 여기가 '안쪽에 있는 숲'은 아니겠지?"

 

"아니... 나도 '안쪽에 있는 숲'에 들어간 적 없고 장소도 잘 모르겠지만... 이 산에 신사가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 없다고."

 

그 말을 듣고 내가 물었다.

 

"'안쪽에 있는 숲'이 그렇게 위험한 곳이야?"

 

그 질문에 B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넌 부외자니까 모르는 구나. 이런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들은 적이 있어."

 

"뭔데?"

 

"간단히 말해서 '안쪽에 있는 숲에는 산신이라는 산에 사는 신이 거주하는 곳으로 마을 사람들도 절대로 들어가면 안 된다는 곳이야."

 

"그건 알고 있어."

 

"그 산신이라는 것이 성미가 까다로운 신으로 사람이 '안쪽에 있는 숲'에 들어왔다는 걸 알면 산신이 화를 내며 손발을 끌고 어디론가 데리고 가버린대. 이걸 어른들이 '카미카쿠시[神隠し]'라거나 '재앙'이라고 불러."

 

"어디론가라니... 어디로 끌고 가는 건데?"

 

"그건 몰라. 어쨌든 '카미카쿠시'를 만나면 어른들이라도 찾을 수 없어. 어른들도 모르는 어디론가로 끌려가는 거야..."

 

고고고고고....

 

B가 그렇게 말헀을 때,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굉음이 울려퍼졌다.

 

"으악! 뭐야?"

 

"산이 울리고 있어!"

 

산 전체가 울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견디지 못하고 돌아서서 영문도 모른 채로 눈 위를 구르거나 필사적으로 나무에 매달렸다. 산이 흔들리고 2, 3분 정도 지났을까. 흔들림이 겨우 멈추고 땅울림도 멈춰서 주위는 다시 정적이 감돌았다. 우리는 얼이 빠진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A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지금... 뭐였던 거야."

 

"나도 몰라... 지진인가..."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였다.

 

...나가라, 나가라, 나가라.

 

나가라.

 

갑 자기 귓가에서 누군가가 속삭였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 아니, 귓가라기보다는 직접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끔찍하게 차가운 목소리였다. 이 순간, 지금도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아서 한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지금 거 들렸어?"

 

A가 물었다. 아무래도 들린 건 나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우리 3명은 얼굴을 마주 보고는 죽을 힘을 다해서 달렸다.

 

"안 돼! 여기 역시 '안쪽에 있는 숲'이다! 아까 땅울림도 산신이 내린 재앙이야! 우리가 '안쪽에 있는 숲'에 들어와서 화난 거야! 빨리 도망치지 않으면 산신에게 목숨을 빼앗길 거야!"

 

"빨리! 빨리 가야해!"

 

이 때는 정말로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어서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일단 어둠 속에서 우리는 계속 달렸다. 몇 번이고 넘어지고 나뭇가지에 얼굴을 수없이 긁히면서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달리는 방향도 돌아가는 길도 아무래도 좋았다. 일단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 리고 나는 발을 멈추고 헉헉 숨을 몰아쉬면서 있는 힘껏 공기를 들이마셨다. 체력에 한계가 찾아왔다. 이제 달릴 수 없다. 달리는 걸 멈추니 A하고 B가 보이지 않았다. 아까 전 소동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덧붙여 손전등도 어딘가 떨어뜨려 버려서 나는 불안한 얼굴로 눈물을 뚝뚝 흘렸다. 

 

"헉헉... 둘 다 어디야?"

 

너 무 지쳐버린 나는 서있을 기력조차 없어져서 나무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어느샌가 눈이 거세게 내리기 시작하고 눈보라로 바뀌었다. 불어오는 눈이 내 몸에 달라붙어서 자비없이 체온을 빼앗았다. 손발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고 내 자그만 몸은 완전히 탈력해버렸다. 갑자기 졸음이 몰려왔다. 이제 틀린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뽀드득, 뽀드득.

 

내 뒤에서 눈을 밟는 발소리가 들린다. 천천히, 천천히. 불어오는 바람 소리 속에 왠지 분명하게 들리는 것이다. 발소리 주인은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으나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조용히 걸어오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아까까지 몸이 둔했지만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진 듯 알 수 있었다. 갑자기 의식이 또렷해졌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이런 밤에, 이런 곳에 누가 오는 걸까? 산신이 자취를 더듬어 쫓아온 게 틀림없다. 그런 생각을 하니 몸이 덜덜 떨렸다. 도망치려고 해도 몸이 주박에 걸린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 심장이 발작이라도 일으키는 듯 쿵쾅쿵쾅 울렸다. 내 심장소리 때문에 들키는 게 아닐까 필사적으로 가슴과 입을 억눌렀다.

 

뽀드득, 뽀드득.

 

점 점 다가오는 발소리에 나는 덜덜 떨면서 옷자락을 꾹 쥐었다. 이제 발소리는 내가 기댄 나무 바로 뒤에서 들린다. 그때 뚝하고 발소리가 그쳤다. 나는 숨조차 멈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등골을 뻣뻣하게 세워 굳어 있었다. 몇 분, 몇 십 분 지났을까. 신변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껴서 긴장이 풀어지며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이제 괜찮을까. 나는 결심을 굳히고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여전히 윙윙 눈보라가 신음을 흘릴 뿐이었다. 그건 대체 뭐였을까. 어쨌든 다행이다. 나는 안도하고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나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할말을 잃었다. 새하얀 기모노를 입은 여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1미터도 채 떨어져 있지 않았다. 기억이 모호하지만 신장은 2미터 가까이 되었을 것이다. 손발이 비정상적으로 길었다.

 

나 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부들부들 떨었다. 달빛에 비친 무기질 같은 표정과 모습은 마치 설녀 같이 불길했다. 여자는 나와 눈이 마주치니 내 얼굴 바로 앞까지 몸을 내밀어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여자는 내 얼굴을 보면서 씨익 웃었다. 바로 눈을 감거가 고개를 돌리려고 해도 왠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치 뱀 앞에 선 개구리처럼 나는 그저 덜덜 떨리는 몸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흘끗 보고만 그 얼굴은 무시무시했다. 어깨에 쌓이는 긴 흑발. 긴 머리 사이로 보이는 핏발 선 눈, 씩 일그러지는 핏기 없는 입술. 화를 내는 건지 기뻐하는 건지 그게 아니라면 슬퍼하는 건지 그 표정에서 읽어낼 수 없었다. 느닷없이 여자는 내 오른 손목을 콱 잡았다. 너무나 무서워서 비명이 작게 흘러나왔다. 엄청나게 세게 쥐어서 팔이 아플 정도였다.

 

"아, 아파."

 

나 는 참을 수 없어서 소리를 지르고 그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 하지만 추위 탓인지 공포 탓인지 몸은 잘 움직이지 않았고 힘조차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목에 무언가가 틀어박힌 듯 비명조차 제대로 낼 수 없었다. 나는 그대로 질질 끌려갔다. 여자는 무정하게도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가려고 했다. 끌려가면서 내가 여자 얼굴을 보니, 달빛과 눈에 반사되어 무시무시하고 불쾌한 얼굴이 보였다. 여전히 히죽거리면서 나와 눈이 마주치니 또 씨익 웃는다.

 

나는 지금 산신에게 끌려가는 것이다.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 희미한 기억 속에서 어디선가 그리운 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내 가 눈을 떴을 대는 그로부터 이틀이나 지난 후였다. 눈을 뜨니 익숙한 천장이 보인다. 나는 할아버지 댁 이불 속에 있었다. 몸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꿈인가? 멍하니 있으니 "눈을 떴다!", "무사해!" 같은 소리가 들리면서 쿵쾅쿵쾅 복도를 달려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흘끗 옆을 보니, 마을 어른들이 방에 있었다.

 

"K!"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할아버지가 주름투성이인 얼굴을 더욱더 주름지게 하면서 나를 껴안았다.

 

"다행이다! 정말로 다행이야... 살아줘서 정말로... 다행이야."

 

할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면서 새빨간 눈으로 내 이마를 어루만졌다. 나는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할아버지 체온을 느끼면서 무척 안도했다. 문득, 나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오른쪽 손 감각이 없는 것이다. 조심스레 오른손을 이불에서 꺼내보니 충격적이게도 오른쪽 손목부터 잘려나갔다. 붕대로 감겨져 있지만 내 '손'은 없었다. 그 여자에게 붙잡힌 부분이 없어진 것이다. 다시 그 날 밤 겪었던 공포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는 착란해서 울음을 터뜨리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할아버지나 다른 어른들은 나를 달래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에게 차례대로 천천히 설명해주었다.

 

그 날, 이틀 전 저녁, 할아버지나 다른 어른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는 우리가 산에서 조난당했다는 걸 깨달았다. 어른들이 황급히 탐색하러 가려고 할 때, 갑자기 수상한 땅울림이 일어나서 이어서 지진이 일어났다. 마을에 있는 전봇대는 쓰러지고 근처 도로는 갈라져서 마을은 큰 소동이 일어났다. 거기에 쐐기를 박듯이 우리가 있는 산에서 대규모 눈사태가 일어나서 산 근처에 있던 집 세 척이 반쯤 허물어지고 몇 명이 죽거나 부상을 당했다. 잠시 후 청년대도 달려가서 구조에 나섰으나 눈보라가 맹렬하게 몰아쳐서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탐색은 다음날 아침에 하기로 했다. 

 

당연한 소리지만 그 지진과 눈사태로 이미 우리 생존 가능성은 희박해졌고, 친구 A, B도 같은 곳에서 동사된 채 발견되었다. 나는 거의 죽을 지경이었지만 '안쪽에 있는 숲'에 산신을 모시는 사당에 기대다시피해서 기 절해 있었다고 한다. 또 이상하게도 '안쪽에 있는 숲'에서는 눈사태 피해가 미치지 않았다고 한다. 어쨌든 그 대참사 속에서도 아이가 살아남은 건 기적이었다. 다만 발견했을 때 내 오른손은 심각한 동상으로 괴사되어서 손목을 절단할 수밖에 없었다.

 

길 을 잃어서 모르는 사이에 '안쪽에 있는 숲'에 들어간 건, 그리고 갑자기 지진이 일어난 것, 이상한 소리가 들린 것, 여자가 내 오른손을 잡고 질질 끌고 간 것... 나는 할아버지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기억나는대로 이야기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띄엄띄엄 말했다.

 

" 그런가... 산신이 너를 구해주셨구나... 산신은 이 산에 생과 사를 관장하는 신이다. 산신은 변덕스러운 구석이 있어서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생명'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심하게 이를 드러내기도 한단다. 산신은 네 목숨을 구해주려고 눈사태가 미치지 않는 '안쪽에 있는 숲'으로 데리고 간 게야. 사실 그대로 죽을 것을 손 하나로 끝난 거지. A하고 B는... 유감이지만."

 

"어째서 나만 산 거야? A하고 B는 어째서 살지 못했던 거야?"

 

" 그게 할애비도 잘 모르겠단다. 산신은 변덕쟁이니까. 할애비도 A하고 B는 정말로 안 됐다고 생각해. 허나 K. 산신이 일부러 그 애들을 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마렴. 때로 인간도 자연 앞에서는 당해내지 못하는 법이다. 알겠니? 인간도 자연 속을 살아가는 한 생물이다. 사슴이나 곰, 벌레하고 다를바 없이 똑같이 생명을 가지고 있어. 산신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도 특별 취급하지 않아. ...하지만 미래가 있는 아이가 죽는 건... 정말로 슬프구나."

 

그렇게 말하면서 할아버지는 슬픈 얼굴로 내 오른손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이때 나는 할아버지가 한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리고 세월이 흘러서 그때 사고가 있은 후로 부모님과 할아버지 사이에 여러 마찰이 있었는지 할아버지와는 점점 멀어졌다. 내가 대학교에 입학한 초겨울에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향년 96세. 망르에 첫 눈이 내리던 날 아침, 마을 사람들이 보러 가니,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괴로워하는 기색 없이 잠자는 듯 평안히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 변한 할아버지를 보고 나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후, 10 여 년만에 할아버지가 있는 곳을 방문했다. 다만 마을은 시와 합쳐져서 아스팔트가 깔리고 편의점 같은 것도 생겨서 내 기억 속에 있는 할아버지 마을하고 상당히 달랐다. 산도 개발되어서 구멍투성이가 되고, 그 아름다웠던 강이나 울창한 숲이나 나무들도 사라졌다. 나는 왠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나 이를 먹은 지금, 당시 일을 때때로 돌이켜보았다. 그때는 어려서 이해하지 못했던 일들이 지금은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조난당했던 그 날, 할아버지는 산에서 무언가 일어날 거라고 예감했던 게 아니었을까. 오랫동안 살아왔던 그 산에서 살아온 할아버지가 갈고 닦은 오감이, 어떤 이변을 감지한 게 틀림없다. 그리고 '안쪽에 있는 숲'에 있는 산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들었던 '나가라'라는 말은 "눈사태가 일어나니까 빨리 나가라."라는 경고가 아니었을까.

 

 또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산신이라는 것은 산의 화신이며 정령이며, 산에 있는 생명 그 자체라고 한다. 사람 앞에 잘 나타나지 않지만 소문에 따르면 여성이나 흰 뱀, 때로는 흰 여우로 나타난다고 들었다. 산신을 믿으며 경의를 가지는 인간은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가 산신과 하나가 되고, 그렇게 산에 있는 생명은 자라서 대자연 속에서 돌고 돌아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살던 지역에서는 고대에서부터 숭상 받아와서 지금도 매년 일정한 시기가 되면 산신을 기리는 축제가 열린다. 또한, 산이나 강에서 얻을 수 있는 은혜로운 식재료에 대해 감사하고, 산신(대자연)에게 경의를 가지는 것이다. 

 

나는 그때, 우연히 산신이 구해준 걸 결코 꿈이나 착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도 그 산에 깃든 생명으로서 어 디선가 무언가를 보고 있을 게 틀림없다. 봄에 솟아오르는 양기처럼 다정할 때도 있는가 하면 겨울에 부는 한파철머 엄격할 때도 있다. 할아버지도 그 산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왠지 신묘한 기분이 든다. '안쪽에 있는 숲'은 개발당하고, 산신을 모시는 사당은 다른 신사로 옮겨졌다는 걸 들었다. 산신은 그렇게 변해버린 산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뭉뚝한 오른손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참고 : http://nazolog.com/blog-entry-531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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