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덜미 잡힌 거야 어쩔 수 없다만, 일단 선조는 임진왜란으로 왕권이 땅에 떨어진 상황이라 명나라 똥꼬 빠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을 거임(신하들이 대놓고 광해군한테 선위하라고 할 정도). 경우는 상당히 다르지만 이전에 그 정철이 광해군 세자 책봉 건의 했다가 아예 쫓겨났는데 이번엔 신하들이 대놓고 선위하라고 압력 넣어도 아무 것도 못한 점에서 선조 왕권이 얼마나 실추되었는지 알 수 있음.
근데 그렇다고 선조가 전쟁 준비를 아예 안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당시 조선정부가 예상한 범위 내에서는 충실하게 준비를 함. 다만 그때까지 조선의 겪은 제일 큰 왜란이 을묘왜변(왜구 5천 이상이 침입)인 관계로 그걸 기준으로 약간 높게 맞춰서 대비했는데 일본군이 예상보다 10배는 더 많고 무장도 강력해서 문제였지. 오히려 지방 유생들이 자꾸 성곽 공사같은 데 동원한다고 선조가 파견한 관리들 탄핵하는 일들도 있었음. 애초에 이순신을 전라 좌수사에 임명한 것도 그 전쟁 준비의 일환.
전쟁 중의 선조야 까일 거리가 한두 개가 아니지만 일단 넘어가고, 전쟁 이전의 선조 치세는 목릉성세라 불릴 정도로 문화적인 면에서 발전한 때였음. 북방 여진족은 신립을 중심으로 무리없이 잘 막아냈었고 조선 건국 때부터 2백년간 조선 속썩인 종계변무 문제 해결한 것도 선조 때임. 사람들이 임진왜란 때문에 선조 묘호 받은 줄 아는데 사실 종계변무 때문에 받은 거임. 전후복구도 나름 신경써서 했고 중립외교도 광해군 인조에 비하면 훨씬 나은 편. 여진족이 선조 때부터 다시 발호했는데 선조가 무력으로 노토부락 개박살내서 한동안 찍소리도 못함. 물론 누르하치가 여진족 통합한 뒤에는 선조라고 방법이 있었을까 싶지만 최소한 광해군 때처럼 정예군 1만3천을 그딴 식으로 날려먹지는 않았겠지. 애초에 대동법 논의도 따지고 보면 선조 때 유성룡이 먼저 제시한 거고. 이건 이런 식으로 따지면 한참 더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만. 애초에 성격이 찌질해서 문제지 선조가 정치를 못한 왕은 아님. 후대인 광해군, 인조에 비하면 더더욱. 뭐 조선의 이후 역사에 선조가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냐면 그건 또 아니겠다만.
최소한 인성 이외의 면에서 광해군 인조에 비교당하는게 선조에게는 굴욕이라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