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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는 건들지 맙시다.
염파가왔다 | L:0/A:0 | LV7 | Ex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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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2019-07-06 18:43:51 | 62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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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白起)는 미(郿)지역 출신이다. 

용병에 능해 진소왕(秦昭王)을 모셨다. 

진소왕(秦昭王) 13년, 진(秦)나라의 좌서장(左庶長)이 된 백기(白起)는 군사를 이끌고 한(韓)나라의 신성(新城)을 공격했다. 

그 해에 양후(穰侯)가 진(秦)나라의 재상이 되어 임비(任鄙)를 선발하여 한중(漢中)의 태수(太守)로 삼았다. 

 

그 이듬해, 백기(白起)는 좌경(左更)에 올라, 한(韓)나라와 위(魏)나라 연합군을 이궐(伊闕)에서 격파하여 그 군사 24만의 목을 베었다. 

다시 위(魏)나라 장수 공손희(公孫喜)를 사로잡고, 다섯 개의 성을 함락시켰다. 

 

백기(白起)는 그 공(功)으로 작위가 국위로 올라, 황하(黃河)를 건너 한(韓)나라의 안읍(安邑)에서 동쪽으로 건하(乾河)에 이르는 땅을 점령하였다. 

 

이듬해, 다시 대양조(大良造)로 오른 백기(白起)는 위(魏)나라를 공격하여 크고 작은 61개 성을 함락시켰다. 

다음 해 객경(客卿) 사마조(司馬錯)와 함께 위(魏)나라의 원성(垣城)을 공격하여 함락했다. 

 

다시 5년 후에 조(趙)나라를 공격하여 광랑성(光狼城)을 함락시켰다. 

7년 뒤에 백기(白起)는 초(楚)나라를 공격하여 언()과 등(鄧)의 다섯개 성을 점령하였다. 

 

그 이듬해 초(楚)나라를 공격해 도읍 영()을 함락시키고 초(楚)나라 역대왕들의 분묘가 있는 이릉(夷陵)을 불태웠다. 

다시 초(楚)나라의 동쪽으로 진격하여 경릉(竟陵)에 이르자, 초왕(楚王)은 영()을 버리고 도망쳐 동쪽의 진(陳)으로 도읍을 옮겼다. 

 ​

진(秦)나라는 이로써 초(楚)나라의 도읍지였던 영()에 남군(南郡)을 설치했다. 

진(秦)나라는 백기(白起)를 무안군(武安君)에 봉했다. 

무안군(武安君)은 초(楚)나라를 점령하고 무군(巫郡)과 검중군(黔中郡)도 평정하였다. 

 

진소왕(秦昭王) 34년, 백기(白起)가 위(魏)나라를 공격하여 화양(華陽)을 함락시키자, 위(魏)나라 장수 망묘(芒卯)는 달아나 버렸다. 

백기(白起)는 삼진(三晉: 조, 한, 위)의 장수들을 사로잡고 병사 13만 명의 목을 베었다.  

 

조(趙)나라 장수 가언(賈偃)과 싸워 그 군사 2만 명을 황하(黃河)에 빠뜨려 익사시켰다. 

진소왕(秦昭王) 43년, 백기(白起)는 한(韓)나라의 형성(陘城)을 공격하여 주위의 다섯개 성을 함락시키고 군사 5만 명의 목을 베었다.

 

진소왕(秦昭王) 44년, 백기(白起)는 남양(南陽)을 공격하여 태항산(太行山)으로 통하는 길을 끊어 버렸다. 

 

진소왕(秦昭王) 45년, 한(韓)나라의 야왕성(野王城)을 공격하자 야왕(野王)의 태수(太守)는 진(秦)나라에 항복하였다. 

이에 한(韓)나라는 상당군(上黨郡)으로 통하는 길이 끊겼다. 

 

상당(上黨)의 태수(太守) 풍정(馮亭)이 백성들과 계책을 의논하며 말하기를, "한(韓)나라의 도읍인 신정(新鄭)으로 통하는 길이 끊겼으니, 한(韓)나라는 틀림없이 우리를 그들의 백성들로 여기지 않을 것이오. 

 

진(秦)나라 군사가 며칠이면 이곳으로 진군해 오는데 그때 한(韓)나라는 구원군을 보낼 수 없을 것이오. 

따라서 이곳 상당(上黨)의 땅을 조(趙)나라에 바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오. 

 

조(趙)나라가 만약 이곳 상당(上黨)의 땅을 받아들인다면, 진(秦)나라는 화가 나서 틀림없이 조(趙)나라를 공격할 것이오. 

진(秦)나라의 공격을 받게 되는 조(趙)나라는 반드시 한(韓)나라와 친선을 맺어 같이 대항하려고 할 것이며, 한(韓)나라와 조(趙)나라가 한 마음이 되어 진(秦)나라에 대항한다면, 진(秦)나라의 군사를 막아낼 수 있을 것이오." 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서 풍정(馮亭)은 사신을 조(趙)나라에 보내 상당군(上黨郡)의 사정을 알리고 그 땅을 바치겠다고 하였다. 

조(趙)나라 효성왕(孝成王)은 평양군(平陽君)과 평원군(平原君)을 불러 계책을 의논하였다. 

 

평양군(平陽君)이 말하기를, "받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상당군(上黨郡)의 땅을 받게 되면 얻는 이익보다 더 큰 화를 입게 될 것입니다." 라고 하자, 

 

평원군(平原君)이 말하기를, "아무런 수고를 하지 않고도 한 개의 군에 해당하는 땅을 얻게 되었으니 받아 들이는 편이 좋습니다." 라고 하였다. 

그래서 조왕(趙王)은 평원군(平原君)의 말을 받아들여 한(韓)나라의 상당군(上黨郡)을 접수하고 풍정(馮亭)을 화양군(華陽君)에 봉하고 상당군(上黨郡)을 계속 다스리도록 하였다. 

 

진소왕(秦昭王) 46년, 진(秦)나라는 한(韓)나라의 구지(緱氏)와 인읍(藺邑)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진소왕(秦昭王) 47년, 진(秦)나라는 좌서장(左庶長) 왕흘(王齕)을 시켜 한(韓)나라를 공격하여 상당(上黨)을 점령하도록 하자, 상당(上黨)의 백성들이 조(趙)나라로 달아났다.  

 

조(趙)나라는 군사를 장평(長平)에 주둔시켜 상당(上黨)의 백성들이 의지할 수 있게 보살펴 주었다.

4월 왕흘(王齕)이 조(趙)나라 군대를 공격하자 조(趙)나라는 염파(廉頗)를 대장으로 삼아 장평(長平)으로 보냈다. 

조(趙)나라 병사들이 진(秦)나라의 척후병을 공격하자, 진군(秦軍)의 척후병들이 반격하여 조군(趙軍)의 부장 가(茄)를 베었다. 

 

6월, 진군(秦軍)이 조군(趙軍)의 보루를 공격하여 두 곳의 보루를 점령하고 도위 4명을 사로 잡았다.

7월, 조군(趙軍)이 높은 보루를 쌓아 굳게 지켰다. 

진(秦)나라가 다시 조군(趙軍)의 보루를 공격하여 도위(都尉) 두 명을 사로잡고 그들이 지키던 보루의 서쪽 진지를 점령했다. 

 

염파(廉頗)가 여전히 보루에 의지해서 굳게 지키자 진(秦)나라가 수차에 걸쳐 도전했으나 조군(趙軍)은 응전하지 않았다. 

조왕(趙王)이 듣고 여러 번 사신을 보내 진군(秦軍)과 싸움을 피한 염파(廉頗)를 비난하였다. 

 

또 진(秦)나라 재상 응후(應侯) 범수(范睡)는 사람을 조(趙)나라에 보내 천금의 돈으로 반간계(反間計)를 펼치며 말하기를, "진(秦)나라가 두려워하는 일은 오로지 마복군(馬服君: 조사) 장군의 아들 조괄(趙括)을 조군(趙軍)의 대장으로 임명하는 것이다. 

염파(廉頗)는 싸우기 쉬운 상대라 조만간에 그는 싸움에 지고 우리 진(秦)나라에 항복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염파(廉頗)의 작전에 분노한 조효성왕(趙孝成王)은 진(秦)나라의 반간계(反間計)에 현혹되어 염파(廉頗)가 진군(秦軍)과의 싸움에서 여러 번에 걸쳐 지고 많은 군사를 잃었을뿐만 아니라, 반격을 하지 않고 보루에만 굳게 의지한 채 싸움에 응하지 않는다고 염파(廉頗)를 파면하고 조괄(趙括)을 대장으로 임명하여 진군(秦軍)을 공격하도록 했다. 

 

진(秦)나라는 마복군(馬服君)의 아들이 조군(趙軍)의 대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비밀리에 무안군(武安君) 백기(白起)를 상장군(上將軍)에 임명하고, 왕흘(王齕)을 그의 부장으로 삼은 후에 만일 군중에 무안군(武安君)이 대장이 된 사실을 발설하는 자가 있으면 참수형에 처하겠다는 군령을 내렸다. 

 

조괄(趙括)이 조(趙)나라 군영에 당도하자 즉시 군사를 이끌고 보루를 나가 진군(秦軍)을 공격하였다. 

진(秦)나라 군사들은 거짓으로 싸움에 패하는 척하며 달아나면서 별도의 기병 두 부대를 매복시켜 조(趙)나라 진영을 기습하기로 작전을 세웠다. 

 

조군(趙軍)은 승세를 타고 진군(秦軍)을 추격하여 진군(秦軍)이 건설한 보루에 당도하였으나 진군(秦軍)의 보루도 역시 견고해서 도저히 무너뜨리고 들어 갈 수가 없었다. 

 

그때 진(秦)나라가 매복시킨 2만 5천에 달하는 두 부대의 기병이 일어나 조(趙)나라 군사의 퇴로를 차단하고, 다시 5천의 기마병으로 구성된 부대는 조군(趙軍)의 본진영과 후속 부대 사이에 있는 통로를 봉쇄하였다. 

 

조(趙)나라 군대는 두개의 부대로 분리되어 양도(兩道)가 끊기게 되었고, 기회를 이용한 진군(秦軍)의 경보병 부대는 조(趙)나라 진지를 공격하였다. 

조군(趙軍)은 싸움에 불리하게 되자 보루를 쌓아 굳게 지키며 본영으로부터 지원군이 오기를 기다렸다. 

 

진왕(秦王)은 조군(趙軍)의 양도를 끊었다는 소식을 듣자, 진왕(秦王) 자신이 직접 하내(河內)의 백성들에게 각기 한 급씩 작위를 올리고 15세 이상의 장정들을 모두 징발하여 장평(長平)으로 보내, 조(趙)나라가 조군(趙軍)에게 보내는 식량의 보급을 끊어 버렸다. 

 

9월이 되자, 조(趙)나라 군사들은 식량을 보급 받지 못한지가 이미 46일이 지나 군영 내의 병사들은 서로 죽여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윽고 진(秦)나라의 보루를 공격하여 포위망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조군(趙軍)을 모두 네개의 부대로 나주어 네번 다섯번 반복해서 시도했으나 결코 포위망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자 조군(趙軍) 대장 조괄(趙括)이 다시 정예병을 차출하여 스스로 선두에 서서 싸움을 독려했다. 

 

진군(秦軍)이 선두에 선 조괄(趙括)을 활을 쏘아 사살하자, 조괄(趙括)의 부대는 싸움에서 패하여 이미 사기를 잃은 40만에 달하는 군사들은 싸우지도 못하고 모두 무안군(武安君)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무안군(武安君)은 항복한 조(趙)나라 군사들의 처리에 대해 말하기를, "예전에 진(秦)나라가 상당군(上黨郡)을 함락시켰을때 상당(上黨)의 백성들은 진(秦)나라를 싫어하여 조(趙)나라로 돌아갔다. 

그들을 살려 돌려보내주게 되면 다시 조(趙)나라의 군사가 될 것이고, 모두 죽이지 않는다면 후에 난을 일으켜 우리를 위협할 것이다." 라고 하면서 백기(白起)는 조(趙)나라의 항복한 군사들을 무사히 돌려 보내 주는것 처럼 속여 모두 구덩이에 파묻어 죽이고, 어린 아이 240명 만을 살려서 조(趙)나라에 돌려보냈다. 

참수를 당하거나 포로로 사로잡힌 자가 이때를 전후로 45만에 달하였다. 

이 소식을 듣게 된 조(趙)나라의 백성들은 모두 두려워 벌벌 떨었다. 

 

진소왕(秦昭王) 48년 시월, 진(秦)나라는 다시 상당군(上黨郡)을 평정하고, 진군(秦軍)은 부대를 둘로 나누어 조(趙)나라로 진군시켰다. 

왕흘(王齕)의 부대는 피뢰(皮牢)를 공격하여 점령했으며, 사마경(司馬梗)의 부대는 태원(太原)을 평정하였다. 

진(秦)나라의 공격을 두려워한 한(韓)나라와 조(趙)나라는 소대(蘇代)에게 후한 폐물을 주어 진(秦)나라 재상 응후(應侯) 범수(范睡)에게 유세하도록 하였다. 

 

범수(范睡)를 찾아간 소대(蘇代)가 말하기를, "무안군(武安君) 백기(白起)가 조(趙)나라의 대장으로 임명된 마복군(馬服君)의 아들을 싸움에서 죽인 사실을 아시고 계십니까?" 라고 하자, 

범수(范睡)가 말하기를, "알고 있소." 라고 하였다. 

 

또 묻기를, "조(趙)나라의 도읍 한단(邯鄲)을 포위할 것입니까?" 라고 하자, 범수(范睡)가 말하기를, "그렇소." 라고 하였다. 

소대(蘇代)가 말하기를, "조(趙)나라가 망하면 진왕(秦王)은 다른 왕들 위에 군림하는 천자가 될 것이고 무안군(武安君)은 삼공(三公: 태사, 태부, 태보) 중의 한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무안군(武安君)은 진(秦)나라를 위한 싸움에서 승리하여 70여 개의 성을 점령했으며 남쪽으로는 또한 언(), 영() 및 한중(漢中)의 땅을 평정했으며, 북쪽으로는 조괄(趙括)이 이끌던 조(趙)나라 군사 45만 명을 잡아 죽였습니다. 

 

비록 주(周)나라를 창업하여 삼공(三公)에 임명된 주공(周公) 단(旦), 소공(召公) 석(奭) 및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의 공(功)도 여기에는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조(趙)나라가 망하면 진왕(秦王)은 천하의 왕이 되고 무안군(武安君)은 삼공(三公)에 임명될 것인데 대감께서는 그 보다 낮은 자리를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비록 재상께서 무안군(武安君)의 밑으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해도 그렇게 되겠습니까? 

 

옛날 진(秦)나라가 한(韓)나라를 공격하여 형구(邢丘)를 포위했을때 상당(上黨)이 위태롭게 되자 상당(上黨)의 백성들은 모두 진(秦)나라를 배반하고 조(趙)나라로 귀의했습니다. 

천하의 백성들은 진(秦)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을 싫어하게 된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지금 조(趙)나라가 망하면 북쪽의 땅은 연(燕)나라가, 동쪽의 땅은 제(齊)나라가, 남쪽의 땅은 한(韓)나라, 위(魏)나라가 차지하게 되니 재상께서 얻을 수 있는 백성의 수효는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그리하여 지금의 기회를 이용하여 조(趙)나라로부터 그들의 땅을 할양받아 강화를 맺고, 무안군(武安君)이 공을 세우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라고 하였다. 

 

이에 응후(應侯) 범수(范睡)는 그 말을 듣고 진소왕(秦昭王)에게 말하기를, "우리 진(秦)나라 군사들은 오랜 시간에 걸친 전쟁으로 인해 지쳐있음으로 차라리 한(韓)나라와 조(趙)나라에게 땅을 요청하고 강화를 맺어 군사들을 쉬게 하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라고 하였다. 

 

진소왕(秦昭王)은 범수(范睡)의 말에 따라 한(韓)나라에게는 원옹(垣雍)의 땅을, 조(趙)나라부터는 6개의 성을 할양받고 강화를 맺었다. 

다음 해 정월, 진(秦)나라는 군사를 철수시켰다. 

백기(白起)는 조(趙)나라를 멸할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강화를 맺은 것은 범수(范睡)의 계략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듣고 나서 그때부터 두 사람 사이가 벌어졌다. 

 

그해 9월, 진(秦)나라가 다시 군사를 일으켜 오대부(五大夫) 왕릉(王陵)을 대장으로 삼아 조(趙)나라의 한단(邯鄲)을 공격하도록 했다. 

그때 무안군(武安君) 백기(白起)는 몸에 병이 들었음으로 출전할 수 없었다. 

 

진소왕(秦昭王) 49년 정월, 왕릉(王陵)이 한단성(邯鄲城)을 공격했으나 성과는 별로 없었다. 

진(秦)나라가 지원군을 더 보내 왕릉(王陵)을 돕도록 했으나, 왕릉(王陵)은 오히려 많은 군사와 교위(校尉) 5명을 잃었다. 

그때 무안군(武安君)의 병이 완쾌되자, 진소왕(秦昭王)은 왕릉(王陵) 대신 무안군(武安君)을 대장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무안군(武安君)이 진소왕(秦昭王)에게 말하기를, "한단성(邯鄲城)은 사실 공략하기 쉽지 않습니다. 

또한 진(秦)나라에 오랫동안 원한을 품어온 제후들이 한단성(邯鄲城)을 구하기 위해 원군을 보낼 것입니다. 

 

지금 진(秦)나라가 비록 장평(長平)에서 조군(趙軍)을 격파했지만 진(秦)나라의 군사들도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잃어 지금 진(秦)나라 국내도 텅텅 빈 상태입니다. 

진(秦)나라는 하천과 산으로 끊긴 먼 길을 행군하여 다른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 반면에, 조(趙)나라는 안에서 내응하고, 제후들은 밖에서 우리 진군(秦軍)을 공격하니 진(秦)나라 군사는 싸움에서 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조(趙)나라를 공격하는 일은 절대 불가합니다." 라고 하였다. 

 

그러나 진왕(秦王)이 듣지 않고 왕명으로 백기(白起)의 출전을 명했으나 백기(白起)는 받들지 않았다. 

다시 진소왕(秦昭王)은 재상의 신분인 응후(應侯) 범수(范睡)에게 출전을 부탁하였으나 무안군(武安君)은 병을 핑계로 끝까지 사양하며 명을 받들지 않았다. 

진소왕(秦昭王)은 할 수 없이 왕릉(王陵)을 파면하고 대신하여 왕흘(王齕)을 대장으로 삼았다. 

 

왕흘(王齕)은 8월, 9월 두달에 걸쳐 한단(邯鄲)을 포위하고 공격을 감행하였으나 결코 함락시킬 수 없었다. 

초(楚)나라의 춘신군(春申君) 황헐(黃歇)과 위(魏)나라 공자(公子) 신릉군(信陵君) 무기(無忌)가 수십 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진군(秦軍)의 배후를 공격하자, 진(秦)나라는 많은 군사를 잃었다. 

 

무안군(武安君)이 듣고 말하기를, "진왕(秦王)이 나의 계책을 듣지 않은 결과, 지금 어찌 되었는가!" 라고 하였다. 

진소왕(秦昭王)이 듣고 대노하여 강제로 무안군(武安君)으로 하여금 왕명을 받들도록 했으나 무안군(武安君)은 계속 병세가 심하다고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응후(應侯) 범수(范睡)가 몸소 찾아가 청했지만 역시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진소왕(秦昭王)은 무안군(武安君)의 작호를 박탈하고 병졸로 강등시킨 후에 음밀(陰密)로 옮겨가 살도록 하였다. 

그러나 무안군(武安君)은 병으로 인해 그 명령 조차도 따를 수가 없었다. 

 

3개월쯤 머물렀을때 제후들의 군사들이 진군(秦軍)을 매우 세차게 공격하자 진(秦)나라 군사들은 여러 차례 퇴각을 거듭하며 사신을 매일 보내왔다. 

왕이 다시 사람을 보내 백기(白起)를 음밀(陰密)로 떠나라고 재촉하자, 백기(白起)는 결국 함양(咸陽)에 더 이상 머물 수가 없었다. 

 

백기(白起)는 아픈 몸을 이끌고 유배지로 떠나기 위해 함양(咸陽)의 서문을 나와 십리 거리에 있는 두우(杜郵)라는 곳에 이르렀다. 

진소왕(秦昭王)은 응후(應侯) 범수(范睡)와 다른 신하들과 의논한 끝에 말하기를, "백기(白起)는 유배지로 가면서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원망과 불만을 토로하고 있소." 라고 하면서, 진소왕(秦昭王)은 사신에게 검을 주면서 백기(白起)로 하여금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고 명했다. 

 

무안군(武安君)은 그 검을 받아들어 목에 대고 말하기를, "내가 하늘에 무슨 죄를 지어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라고 하였다. 

 

오랫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말하기를, "나는 마땅히 죽어야 하는 몸이다. 

장평(長平)의 싸움에서 조(趙)나라의 항복한 군사 40여 만 명을 속여 모두 구덩이에 파묻어 죽였으니 이것만으로도 족히 죽어 마땅하지 않겠는가!" 라고 하면서 스스로 칼로 목을 찔러 죽었다. 

 

무안군(武安君)이 세상을 떠난것이 진소왕(秦昭王) 50년, 11월의 일이었다. 

백기(白起)가 억울하게 죽었다고 불쌍하게 여긴 진(秦)나라 사람들이 그의 고향에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냈다. 

개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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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기목띵 2019-07-06 19:03:56
사실상 저때 거의 통일각 나오고 진시황이 통일 확킬만찍은거라던데.....
염파가왔다 2019-07-06 21:02:27
@앙기목띵
그래서 백기 왕전 열전이 묶여 있죠. 다른 시대 활약했음에도 불구하고....

백기왕전열전 = 진나라 통일 전쟁사 라고 봐도 무방하죠
koo9210 [L:26/A:34] 2019-07-06 19:14:42
하도 목베고 생매장 하다가 한번은 황하에 수장까지 하더군요 ㄷㄷ
염파가왔다 2019-07-06 21:04:06
@koo9210
그랬죠....
free [L:2/A:35] 2019-07-06 19:49:40
이쯤되면 인간백정이 아니라
인간재해급인데
염파가왔다 2019-07-06 21:06:03
@free
십만명의 목을 벤 환기가 킹덤에서 묘사되는게 백정같이 묘사되고 있죠. 백기를 본격적으로 그렸다면 재해급으로 묘사할 수 밖에 없겠죠
후부키 [L:42/A:407] 2019-07-06 20:28:45
좋은 글 추천드려요
염파가왔다 2019-07-06 21:01:23
@후부키
감사합니다
마인대승정 2019-07-07 03:01:02
저때 장평에서 40만 죽인건 현재를 얻고 미래를 내준 선택 같습니다
진나라가 중화 통일할때까지는 이득을 봤겠지만,통일하고 나서는 저렇게 피튀기는 과정을 거쳐서 통일을 했으니 정복당한 나라 사람들이 저항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 같더라구요.

게다가 백기가 40만 넘게 죽였는데 백기 정적 범수마저 뭐라 태클 안거는거 보면 진나라 사람들 마인드가 굉장히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국민남침♡ 2019-07-07 06:39:30
백기 무덤에서 튀어나와서
부저,순수수,마정,카이네 다 쓸어버렸으면 좋겠다
koo9210 [L:26/A:34] 2019-07-07 09:55:59
@국민남침♡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본격 장평대전 시즌2 인가요
우리에이스 2019-07-07 10:34:30
40만명을 생매장한건 진짜... 여러 의미로 큰 사람 아니면 절대 못 할 일인거 같아요
뭐뭐뭐 [L:23/A:213] 2019-07-07 15:33:52
괜히 중국사 2탑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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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킹덤 607화를 읽고.... [3]
염파가왔다 | 2019-07-10 [ 3873 / 0 ]
[일반] 근데 왕전의 저 새로운 나라 발언은 좀 위험하지 않나요? [8]
레드호크 | 2019-07-10 [ 2146 / 0 ]
[일반] 왕전이 창평군한테 부탁한게 설마 [3]
피핀 | 2019-07-10 [ 2175 / 0 ]
[일반] 왕전이 뛰어난 장수인게 정치를 적극 활용하네요 [1]
7의명장벽 | 2019-07-10 [ 1641 / 0 ]
[일반] 거절당하지만 누구든 유능하면 캐스팅하려는 왕전 [4]
크리리릭 | 2019-07-10 [ 1671 / 0 ]
[일반] 왕전 매력터지네ㅋㅋㅋ [3]
ELAN | 2019-07-09 [ 1658 / 0 ]
[일반] 독자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킹전... [3]
검투사10 | 2019-07-09 [ 2121 / 0 ]
[일반] 다음주 휴재... [2]
로마니 | 2019-07-09 [ 1384 / 0 ]
[일반] 요번까지만 보고서 [2]
환산환위험 | 2019-07-09 [ 1176 / 0 ]
[일반] 킹덤 607화 번역본 링크 [5]
심포니아 | 2019-07-09 [ 50941 / 0 ]
[일반] 슬슬마음의준비들합시다.. [5]
호랑님 | 2019-07-09 [ 2754 / 0 ]
[일반] 이목 특기 나와야죠 이제 [5]
하늘소 | 2019-07-09 [ 1856 / 0 ]
[일반] 조나라 입장에서 왕전은 어느정도?? [8]
사티바 | 2019-07-09 [ 2000 / 0 ]
[일반] 607 스포 [4]
으르릉 | 2019-07-09 [ 3843 / 0 ]
[일반] 일본쪽 반응 보니 이런 것도 있더라고요 [4]
마인대승정 | 2019-07-09 [ 3142 / 0 ]
[일반] 왕기가 화살 안맞고 방난 죽이고 탈출했다면 상황 재밌었겠네요 [13]
카우다 | 2019-07-09 [ 2557 / 0 ]
[일반] 환기 약점 [4]
뭐뭐뭐 | 2019-07-09 [ 3394 / 0 ]
[일반] 나름 만화 이것저것 봤지만 [6]
뭐뭐뭐 | 2019-07-09 [ 2123 / 0 ]
[일반] 이번 주도 휴재 없이 정상 연재하네요 [9]
후부키 | 2019-07-08 [ 3993 / 0 ]
[일반] 근데 본능형이라는 설정이 좀 이상해진거 아닌가?? [14]
피핀 | 2019-07-07 [ 3419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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