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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츠라의 삶 즈라쟈나이 카츠라다
초보주의보 | L:0/A:0 | LV10 | Ex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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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 2014-09-27 10:48:44 | 8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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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츠라의 삶—"카츠라다."


냉철한 현명함, 예측 불가한 상상력,

진지한 바보, 엉뚱한 4차원,

이상의 좌절을 마주하는 이상주의자,

항상성 안에서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남자다운 무사, 어머니 같은 다정함,

정이 많고 착한 사람,

and so on ......





카츠라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가 없다. 만약 그나마 가까운 문장이 있다면, "카츠라는 카츠라다" 이다.

이 뒤의 "카츠라"에는 온갖 양면적인 것들,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면들, 겉으로는 예상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는 면들이 다 포함되어 있는 듯하다.  



카츠라는 자신만의 언어인,  "...가 아니다. 카츠라다."라는 말을 하며, 항상 자신의 어떤 것을 늘 똑같이 고집하는 사람인 것 같지만, 실제로 그는 예상을 뛰어넘는 행동과 모습을 보이며, 여러 변화 안에서 등장할 때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릴 때부터 늘 책을 보며 공부를 성실하게 열심히 하고, 그만큼 다른 사람보다 많은 지식을 쌓아왔을 카츠라는 [은혼]에서 그 나름의 현명함과 판단력을 가진, 똑똑함을 보인다. 카츠라는 과거 긴토키와 타카스기와 전쟁을 할 때부터, 전쟁 전략을 짜는 그런 역할 역시 수행했을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여러 화에서, 긴토키가 궁금해 하는 것들을 거의 다 파악하고 알고 있고, 홍앵편에서 타카스기에게 큰 배신감을 느끼며 분노와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빠르게 인식하고 움직인다. 카츠라 인터뷰 편에서처럼 늘 앞일을 예상하여 필요한 것들을 미리미리 준비하여, 위험한 상황을 쉽게 극복하는 준비성과 예측성도 지녔다. 그리고 용궁편에서 모두와 함께 섬에 좌초되었을 때도, 우왕좌왕하는 어지러운 상황에서도, 누구보다도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적절한 계획을 빠르게 세우며,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실행에 옮기도록 한다.









카츠라가 가진 정적이면서도, 소박하고, 아름다운(?사심?) 겉모습과 함께, 카츠라의 이러한 냉철하면서도 준비성 있는 현명함은 카츠라의 매력이기도 하다. 그런데, 카츠라의 매력을 배로 증가시키는, 아니면 그 매력을 배로 감소시킬지도 모르는? 요소가 바로 카츠라의 진지한 바보스러움이다. 카츠라의 엉뚱함과 상상할 수 없는 4차원적인 언행, 행동들은 카츠라의 그러한 도도한 듯하면서도 냉철하고 현명한 듯한 겉모습과 함께 대조되며, 반전을 일으킨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카츠라는 그런 바보스러운 행동을 할 때도 매우 진지하다는 것이다. 즉,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카츠라의 엉뚱함과 4차원적인 행동들이 "바보" 같은 것으로 인식되어도, 카츠라에게 있어서 그 바보스러움은 바보스러움이 아니다. 즉, 바보스러운 카츠라의 행동은 그 만의 진지함이다. 그는 모든 순간에 늘 진지하다. 그의 시각에서는 바보스러움이 아니다. 카츠라는 그 상황에 대해 그 만의 진심과 진지함과 성실함을 담아 행동하는 것이다.












운전면허 편에서, 카츠라는 "...일지도 몰라"라는, 이 무한대로 열린 가능성의 말 안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그야 말로, 마음껏 뛰어논다. 이 말을 온갖 상황에 대입하며 운전하는 카츠라는, 긴토키와 운전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상상불가한, 골치아픈 바보이지만, 카츠라는 진지하다. 각 상황에 대해 자신만의 사고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판단하여, 카츠라의 진심을 담아 운전을 한다. 트래픽 콘(cone)을 들고 1인 3역을 하는 것에서도, 카츠라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연기 같은 것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카츠라는 정말로 그 상황에 빠져서, 그 만의 진지함과 성실함, 진심으로 행동한다. 카츠라의 눈에는 정말로 기차가 오는 것이며, 카츠라의 눈에는 정말로 그 아버님이 자살을 하기 위해 누워있는 것이며, 카츠라의 눈에는 정말로 그 며느리가 아버님을 붙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을 볼 때, 카츠라는 상상력이 풍부하다. 절대 현실적인 것들에만 묶여있거나, 눈으로 보이는 현실적인 것들만을 보지 않는다. 그의 사고는 그 만의 감각과 판단을 통해 자유롭게, 예측할 수 없게 이루어진다.



현명함을 가졌으면서도 때로는 의외로 현실 감각이 없고, 현실을 뛰어넘어 자신만의 상상력 안에서 살아가기도 하는 카츠라는 마치 어떤, 현실에 있으면서도 현실에 없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사는 그런 예술가적인 면을 가진 것 같기도 하다. 즉, 카츠라는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이나 말, 지시, 등을 자신의 것으로 승화?, 혹은 변화시킨다. 이러한, "카츠라만의 산물", "카츠라만의 무엇인가"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이해되지 않는 바보스러움, 엉뚱함, 4차원적 행동들로 보여지는 것이다.    



카츠라는 자신만의 어떤 것을 확고하게 고집하면서도, 또 다른 사람들에게 잘 맞춰주기도 한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절대 지나치치 않고, 그들에게 맞춰서, 따듯한 마음으로 그들을 곧잘 돕는 카츠라의 모습은 익히 잘 알 수 있다. 눈좀 편에서, 신파치가 카츠라에게 카츠라는 글러먹은 아저씨,라는 그런 말을 하자, 카츠라는 '어떤 점이 글러먹었는지, 다 말해라. 하나하나 다 고쳐주마!'라며(ㅋㅋㅋ), 신파치의 말에 자신을 맞추려고 하기도 한다.







카츠라의 삶과 현실의 중심, 긴토키



카츠라에게 있어서 긴토키는, 유일하게 카츠라가 잘 맞춰주지 않는 인물이기도 하다. 즉, 긴토키에게 카츠라는 자신의 징징거림과, 속상함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털어놓는다. 그리고 카츠라의 바보스러움은 자신의 이상이 이루기 힘든 것이라는 좌절감으로 인한 바보스러움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바보스러움이 숨겨져 있었는데 지금에 와서야 드러나는 것인지 명확히는 알 수 없지만, 카츠라는 어느 누구도 아닌 긴토키 앞에서 "가장 바보스러워진다".









카츠라가 자신의 이상을 도달하려는 버거움을 바보스러움으로 승화하려고 한다고 할 경우, 카츠라는 자신의 그러한 버거움에서 나온 바보스러움을 긴토키 앞에서 마음 놓고 드러낸다. 혹은, 카츠라의 무의식에 원래 그러한 상상력와 엉뚱함이 있었다고 할 경우, 이 역시 카츠라는 긴토키 앞에서만 그러한 자신의 무의식적인 행동을 한다. 긴토키는 이런 카츠라를 쥐어박으면서도 다 받아준다. 이 둘은, 긴츠라, 츠라긴 일 수밖에 없다.








[은혼]에서 카츠라 자신만의 이상, 그리고 카츠라만의 진지한 상황, 혹은 환영, 혹은 망상은 대부분 긴토키로 인해 중단되고 깨어진다. 카츠라에게 긴토키는 카츠라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바보스러움과 엉뚱함, 4차원을 중단시켜주며, 카츠라가 현실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존재다.






카츠라가 [은혼]에서 처음 등장하게 되는 5화를 보면, 카츠라는 긴토키를 통해 기존의 자신의 생각과 모습과는 달라지게 될 것으로 나타난다. 타카스기와 비슷하게 과격 양이파로서 활동하다가, 긴토키를 다시 만나게 된 순간부터 그는 조금씩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카츠라가 긴토키를 다시 만났을 때, 우리의 전쟁은 이미 끝났다고, 이제 그만 여기서 끝내자고, 그렇게 다시 또 동료를 잃을 것이냐,는 긴토키의 말에 카츠라는 흔들린다. 그리고 그 이후 카츠라는 타카스기와 길을 달리하고(타카스기를 떠나 긴토키의 옆에서 살아가기로?), 온건 양이파로서 새로운 변화를 선택한다.










카츠라는 다분히 이상적이다. 온건파 양이로 변화하고 나서도, 나라를 구하겠다는 이상을 절대 버리지 않고, 설사 그것과는 거리가 먼 행동들을 하기 일수지만, 그래도 카츠라는 자신의 이상을 절대 굽히지 않겠다는 의지를 늘 드러낸다.



하지만, 카츠라가 나라를 구하겠다는 그의 이상을 이루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으로 나타난다. 결정적으로, 온건파 양이로서, 실제로 나라를 구하게 되는 일은 그다지 많이 하지 못한다. 예전의 과격파였다면, 막부와 정면으로 부딪히면서 뭔가 성과가 있든지, 아니면 실패하든지, 뭔가 결과가 있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카츠라는 5화에서 긴토키의 말을 듣고 혹시라도 동료를 잃을지도 모르고,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할 수도 있는 과격파 양이의 한계를 인식한다. 그러나 강하게 부딪히지 않는 만큼, 성과도 없을 수 있다. 온건파 양이로서 나라를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 문자를 보내거나, 랩으로 양이 활동을 하거나, 진선조의 화장실 휴지를 공격하여 그들의 볼일 보는 것을 망치겠다는 일을 하지만, 이는 카츠라가 기대하는, 나라를 변혁하게 되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먼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카츠라는 온건파로 전향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 듯하다.

그 이유는 지금 카츠라의 곁에 '긴토키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긴토키의 곁에서, 동료들을 지키고, 주어진 것들을 지키겠다는 긴토키와 같은 삶을 걸어가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란의 귀공자였고, 이상주의자인 카츠라이기에, 나라를 변혁시키겠다는 자신의 이상이 좌절된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긴토키를 통해 삶에 있어서 더 중요한 것을 발견했지만, 한편으로 카츠라는 여전히 양이라는 이름을 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 그가 나라를 구하기 위해 하는 일이 별로 없고, 결과도 없다. 에도는 여전히 막부에 의해 그대로 흘러가고, 과거부터 자신이 지향해온 이상은 점점 자신과 거리가 멀어진다. 여기서 드는 막연한 생각은, 이렇게 멀어지는 이상과 카츠라의 현실 사이에 그의 바보스러움과 엉뚱한 상상력, 4차원적인 그의 언어와 사고가 들어오게 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어쩌면 그의 바보스러움과 엉뚱함은 이 나라를 구하겠다는 그의 이상이 그렇게 쉽지 않는 것, 이루기 힘든 것일 수도 있다는 좌절감이 승화되어 나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긴토키를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과 자신 곁의 소중한 사람들이 주는 안심과 편안함 안에서, 예전에 늘 과격하게 변혁을 수행하던, 위험과 어려움이 존재하는 삶에서 느끼던 긴장이 풀어지고 사라지면서, 그의 바보스러움과 상상력이 더욱 발동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냉철한 현명함과 예측할 수 없는 바보스러움을 자유롭게 오가는 카츠라는 [은혼]에서 [은혼]시작에서부터 지금까지, 삶에 있어서 가장 여러 변화를 오가고, 가장 많은 변화를 보인 인물이다.

그는 자신만의 고집스러움을 가졌으면서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카츠라의 삶의 변화의 중심에는 긴토키가 있다.













카츠라만의 사고, 카츠라만의 시각



렌호편에서, 무엇인가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그의 사고, 그러면서도 그 맥락을 놓치지 않는 천재성?을 지닌 카츠라만의 사고를 엿볼 수 있다.








"찾지 말아주세요



이런 메모를 엘리자베스의 방에서 발견하게 됐는데 찾지 말라는 건 대체 무엇을 찾지 말라는 거지?

그것보다 무엇을 찾으면 안되는 것인지 찾고 있는 시점에서 찾으면 안되는 것을 찾고 있는 것이 되어버리잖나.

그렇다면 무엇을 찾으면 안되는지 찾아줄 사람을 찾아서 거기다가 찾으면 안되는 것을 찾지 않도록 할 것인가, 찾을 것인가,

정하는 편이 좋을 것인지,

그 대답을 찾아줄 사람을 찾고 있지만,

그것조차 찾아서는 안되는 것이라면,

그 찾아서는 안될 것을 찾아줄 사람을 찾아줄 사람을 찾아줄 사람을 찾아줄 사람을 찾아줄 사람을 ......"



(난 카츠라의 이 말에서 카츠라에게 또 다시 반하고 말았다......)



카츠라는 이렇게 복잡하고도 쉽게 알 수 없는, 그 만의 사고를 가졌다. 그리고 상황을 판단하는 자신만의 시각이 있다. 이 시각이 때로는 현명하면서도, 때로는 예측할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사고와 상상력을 오가는 것이다. 카츠라는 저 말을 그 짧은 순간에, 각 단어와 문장의 의미를 놓치지 않으며, 이 긴 의미의 문장을 한번에 말한다. 누군가, 일부러 저렇게 써야 한다고 한다면, 그 짧은 시간에 쓸 수도 없을 뿐더러, 저렇게까지 생각을 할 수도 없을 듯 싶다. 천재성?을 의심해 볼만한, 카츠라만의 진지한 생각이자, 남들이 보기엔 더 없이 바보같고, 엉뚱하고, 4차원적인, 쓸데없는 생각이다. 이런 카츠라의 사고와 생각 형식이, 그의 따듯함과 현명함과 어우러져서, 앞으로의 [은혼] 전개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으면 정말 재밋을 듯하다.    



이렇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카츠라의 이러한 상상력과 바보스러움은 긴토키에 의해 중단되며, 정리된다. 그리고 긴토키에 의해 카츠라는 현실로 돌아온다.











긴: 뭐 이리 까다로워.

신: 뭘 그리 '찾지 말아주세요'란 미로에서 헤매고 계신 건가요.

카: ...... 찾지 말아주세요.

긴: 안 찾아. 한마디로 그거잖아? 가출이야, 가출



과거 전쟁 당시의 장면들 중, 많은 적들을 앞에 두고 힘든 숨을 몰아쉬면서, 카츠라는 떳떳하게 할복하여 죽음을 선택하자는 시각으로 자신과 긴토키의 삶을 마무리하자고 한다. 그런 카츠라를 붙들어서 현실로 끌어내린 것은 긴토키였다. 그리고 그 긴토키의 말을 듣고, 카츠라는 생각을 전환하여, 다시 한번 적들을 이기고 살아내겠다는 의지를 갖는다. 그리고 긴토키와 카츠라는 삶을 향한 발돋움을 함께 한다.















내 안의 쇼요 선생님



카츠라 역시, 긴토키와 타카스기와 마찬가지로 전쟁에 참여한 과거가 있다.

타카스기는 과거의 고통으로 인한 증오 안에서, 복수심을 바탕으로 세상의 파괴와 재구축이라는 목표로 살아가고,

긴토키는 과거의 고통을 삭이기 위해 동료들을 지킨다는 사명과 당분 중독으로 살아간다.



과거의 전쟁, 동료를 잃음과 동료의 죽음으로 인한 과거의 고통이 카츠라에게도 없을리 없다. 그런데, 둘에 비해 카츠라는 동료들의 죽음과 쇼요 선생님의 죽음이라는 과거의 고통을 잊기 위한, 그 만의 어떤 특징이 구체적으로는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전쟁 후, 과격파 양이로서 활동하며, 그 고통과 마주하고 그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카츠라는 자신의 과거의 고통을 달랠 삶의 방식이었을 과격파 양이를 버린다. 물론 그 후에도 카츠라는 양이라는 이름을 버리지 않고, 여전히 막부에게 복수를 하려고 하지만, 그렇다고 타카스기 만큼의 복수심과 계획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카츠라는 양이이면서도 에도와 에도의 사람들을 지키겠다는, 타카스기와 긴토키의 중간 노선에 있다. 이런 카츠라는 현실에 나름 잘 적응하고 살아간다. 카츠라는 긴토키와의 만남을 계기로, 더 이상, 과거 상처로 인한 분노와 증오를 예전 같이 과격한 방식으로 표출하지 않겠다고 선택한다.



그렇다면, 자신을 괴롭히는 과거의 고통에 반응하는 카츠라의 삶의 방식은 아마도 과격파 양이를 버리고, 긴토키와 가까이 살게 되면서 조금씩 더 심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카츠라의 바보스러움과 엉뚱함, 4차원적 행동들일 수도 있겠다. 남들은 상상할 수 없는 그 만의 상상력과 사고의 발산을 통해 카츠라 자신의 고통에 반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긴토키와 타카스기에게 있어서 쇼요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는 [은혼]에서 여기저기에 드러나 있다.  

그러나, 쇼요를 묘하게 닮아 있는 카츠라에게 있어서 과연 쇼요는 어떤 의미일까.



어릴 때, 서당에서 카츠라는 쇼요 선생님의 가르침을 가장 성실하게 수행하고, 가장 열심히 공부하고, 선생님의 말씀을 가장 잘 듣던,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 같은 아이였을 것이다. 쇼요도 그런 카츠라를 당연히 아꼈을 것이다. 선생님은 때로 말 안듣는 학생이 더 눈에 띄더라도, 말 안듣는 학생에게 더 신경을 쓰더라도, 쇼요 선생님 같은 사람이라면 카츠라 같은 학생이 이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카츠라도 쇼요 선생님이 자신을 이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카츠라가 어른이 되어서도 성실함을 갖고 있는 것은 카츠라 원래의 성격이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인간은 길들여지는 존재이기도 하다. 보통 공부를 잘하거나 열심히 하는 성실한 학생들 중에는 열심히 공부를 하고,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고, 그 칭찬을 받는 것이 좋아서 다시 열심히 공부를 하고, 그래서 다시 칭찬을 듣는, 이 순환고리를 자신의 삶의 방식으로 갖고 있는 학생이 있다. 이런 학생들은 커서도, 사회인이 되어서도 이 패턴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꾸준함과 성실함을 갖고 살아간다. 카츠라도 이런 사람일 수 있다.











그리고, 어린 카츠라가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성실하게 열심히 공부한 것은 자신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선생님이 좋고, 그런 선생님을 동경하고, 나중에 커서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선생님이 주신 책을 열심히 보고,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것들을 열심히 공부했을 것이다.











결국 카츠라는 자라면서, 점점 쇼요 선생님을 닮아가게 된다. 카츠라는 쇼요의 가르침과 쇼요의 관념 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쇼요의 모습을 그대로 계승하여 살아간다. 카츠라는 전쟁을 하던 시절부터, 한쪽으로 머리를 묶고 있긴 했지만, 쇼요처럼 머리를 길게 기르고 있다. 그리고 예전에 자신을 가르쳐주시던 쇼요 선생님 정도의 나이가 된, 어른이 되어서는 거의 쇼요 선생님과 똑같은 머리 모양을 하고, 선생님과 거의 비슷하게 옷을 입고 다닌다.



카츠라는 잠깐씩 비춰지는 쇼요의 부드러움 역시 갖고 있다. 쇼요가 어려움에 처한 어린 긴토키를 지나치지 않고, 어린 긴토키를 찾아가서까지 그를 거둔 것처럼, 카츠라도 쇼요처럼 사람에게 정이 많고, 사람을 끝까지 돕는다. 그리고 자신의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홍앵편에서 어떻게든 위험을 무릅쓰고 타카스기를 찾아가듯이, 그리고 렌호편에서 엘리자베스를 찾아가듯이 그렇게 사람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



그리고 과격파 양이였던 카츠라의 가장 중요한 이상이었을 나라의 변혁보다, "모두를, 동료를 지켜주라"는 쇼요의 약속을 지키는 것을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긴토키의 말 한마디에, 카츠라는 자신 주위의 소중한 동료들과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온건파 양이가 된다. 쇼요의 마지막 말이 다른 말이 아닌, "모두를, 동료를 지켜주라"는 말에서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그리고 인간에 대한 쇼요의 관념이 드러난다. 이 관념은 긴토키 뿐만 아니라, 카츠라에게까지 영향을 주게 된다.



한 때 카츠라도 쇼요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며 증오와 분노를 표출했겠지만, 어느 새 자신도 모르게 쇼요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카츠라는 아직 선생님을 보내지 않은 마음일 수도 있겠다. 쇼요 선생님의 책을 품에 안고, 쇼요와 함께 했을 때의 그 성실함 안에서 지금도 그 쇼요 선생님의 책을 들여다볼지도 모른다. 그렇게 계속해서 소요 선생님의 존재를 스스로에게 인식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선생님은 돌아가셨지만, 자신은 여전히 선생님을 보내지 않았다고. 선생님의 존재는 여전히 자신의 안에 살아있고, 자신은 여전히 선생님의 생각들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고.



고통과 대면하는 방식이 극과 극을 달리는 타카스기와 긴토키와 달리, 쇼요의 죽음이 일으키는 과거의 고통에 대한 카츠라의 반응이 상대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카츠라는 여전히 선생님의 존재와 함께 한다는 마음이기에, 이제는 굳이 선생님을 잃었다는 것에 대한 분노를 극단적으로 들어내지 않아도 되는 마음일지 모르겠다.



신파치와 카구라의 수행편에서, 카츠라는 긴토키보다도 먼저 쇼요 선생님의 수행법을 둘에게 전수한다. 박학다식한 카츠라는 다른 수행법보다도, 학생들을 수행시키는 것에 있어서 카츠라의 관념을 가장 많이, 가장 먼저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쇼요 선생님의 가르침이다.



그렇게 선생님의 가르침이 카츠라의 내면에서 늘 가까이, 크게 존재하면서, 카츠라는 선생님의 모습은 여전히 자신의 모습에 깃들어 있다고, 원한다면 늘 쇼요 선생님을 느낄 수 있고, 만날 수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믿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이 의식하지 않아도, 카츠라는 어느 새 쇼요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간다.

  

카츠라는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 거울을 볼 때마다 쇼요 선생님을 보는 것이다.



자신이 믿는 것을 눈 앞에 진심을 담아 상상하곤 하는 카츠라에게 있어서

쇼요는 여전히 카츠라 자신 안에 살아있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타카스기는 쇼요 선생님을 잃었다는 생각에, 세상에 쇼요가 "없다는 생각"에, 그 상처와 고통에 집착하며 세상을 파괴하려고 한다. 하지만 카츠라는 어느 순간, 긴토키를 만난 순간, 세상을 변혁시키겠다며 외부로 표출되던 그 상처와 고통에 집중하기보다, 홍앵편에서 카츠라가 쇼요 선생님의 책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듯이, 쇼요 선생님의 가르침과 생각은 여전히 자신을 지켜주고, 자신을 움직이고, 쇼요의 존재는 늘 자신의 안에 살아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카츠라는 늘 자신을 예뻐했고, 늘 자신이 동경하던 쇼요 선생님의 목소리를 여전히 듣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예전처럼 자신 앞에서 자신을 사랑해주던 그 모습 그대로 쇼요 선생님이 카츠라 자신 안에 살아있다고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카츠라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쇼요처럼 살아가게 하고, 쇼요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에는 쇼요가 여전히 자신을 떠나지 않았다는 카츠라의 무의식적인 기대와 믿음이 존재하는 듯하다.

물론, 이는 모두 카츠라의 착각일 수도 있다. 카츠라의 현실에서 쇼요는 죽은 것이고, 쇼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늘 현실을 떠나 자신만의 상상 안에 들어가곤 하는 카츠라에게 있어서 쇼요는 단순히 죽은 존재가 아닐 수 있다. 카츠라가 운전면서 편에서처럼 자신도 모르게 아버님, 며느리와 같은 사람을 상상해내고, 그들이 정말 살아있는 듯이 행동하는 것을 보아도, 쇼요를 너무나 닮아있는 카츠라는 마음만 먹으면 쇼요를 언제든 마주할 수 있고,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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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츠와SSS [L:49/A:269] 2014-09-27 12:21:29
장문, 잘 읽었소이다. 즈라~~
하얀날개 [L:15/A:88] 2014-09-29 15:38:02
@이츠와SSS
즈라쟈 나이! 카츠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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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잉히잉 | 2014-09-26 [ 455 / 0 ]
[일반] 페어리테일에선 이렇게 멋진 두사람이.. [6]
야타로 | 2014-09-26 [ 1150 / 0 ]
[일반] 외국에서도 거론되는 즈라의 스탠바이력 [4]
미코토네코 | 2014-09-26 [ 1404 / 0 ]
[일반] 은혼 511화 영문판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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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이번화 전투씬 몇번이고 돌려보니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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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아니 야토는전부 중국인처럼 생긴줄 알았는데 [1]
피분수 | 2014-09-26 [ 451 / 0 ]
[일반] 근데 저기 야토족 죽은애 있을까요? [7]
울타리 | 2014-09-26 [ 695 / 0 ]
[일반] 흐으 다음편쯤에서 [3]
플레티넘 | 2014-09-26 [ 378 / 0 ]
[일반] 은혼 56권표지 [10]
히루히루 | 2014-09-26 [ 4486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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