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로 돌아와 상처를 회복한 이사미는 갑양진무대를 결성, 고후 성을 점령하기 위해 에도를 출발하지만, 시기를 타지 못한 탓에 관군에게 대참패하고 만다. 그는 나가레야마(流山)에서 재기를 도모하려고 했으나 실패, 1868년4월, 도바 · 후시미 전쟁 이후 나가레야마에서 유신정부군에 교섭을 요구해 관군에 항복하지만 곧바로 포박당하였으며, 후일 그 신원이 밝혀져 이타바시(板橋)에서 적장의 예우를 조금도 받지 못하고 참수, 목은 교토의 산조가와라 모래밭에 효시(梟示)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