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정리하다 하나의 봉투를 발견했다.
해지어 열려진 봉투의 입구를 바닥으로 하여 조심스럽게 내용물을 쏟아냈다.
그 곳엔 한장의 사진과 서신이 있었다.
낡고 주름진 손으로 사진의 먼지를 쓸어내리자 남자의 이목구비가 드러난다.
오래 된 만큼 형태를 확인하기가 어려웠으나
어째선지 그 남자의 얼굴은 알 수 있었다.
얽히고 섥힌 실타레가 풀리기 시작하며, 의식은 오래 전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것은 수기이다'
그 해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다.
그렇기에 어느때보다 긴 여름방학이 주어졌다.
백이면 백, 으레 초등학교 저학년들은 자신들딴에는 효율적으로 보냈다고 말할 것이다.
방학동안은 사내아이들에게 가장 큰 이슈는 큰 장수풍뎅이였다.
소문의 시작은 마을 뒷 산에서 7척이나 되는 이족보행 장수풍뎅이를 봤다는 임씨 할아버지의 말이였으며,
사내아이들은 동구 밖을 맨 발로 벗어나 홀린 듯 모두가 뒷산으로 향했다
그 동안 계집아이들은 집에서 겨울을 대비해 방직기로 실을 짜내고,
어머니들은 방적기로 천을 만들며 기존의 옷에 덧대거나 여믜었다.
방학이 끝났을 때 사내아이들은 얼굴이 까무잡잡해졌다.
계집아이들이 많던 집은 겨울을 날 옷들을 장만했다.
그렇게 모두가 별 탈 없이 교실에 모여 선생님을 기다리며 재잘거렸다.
"방학동안 영희가 쌍수를 했대"
"정말? 내 눈엔 아직 시라소니같은데?"
"니 눈이 짝 찢어져 고로케밖이 안 보이는거겠지"
"어머..영희야"
모두가 방학동안 쌓아온 경험의 보타리를 풀고 있을 때 교실의 앞문이 열렸다.
가장 먼저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이윽고 뒤이어 피부가 뽀얀 사내아이가 뒤따라왔다.
"모두 차렷! 선생님께 경례!"
" YES! I can do! "
"모두들 좋은 아침이예요~"
선생님은 재빠르게 모든 아이들을 아이컨텍하며, 모두가 무사히 방학을 보내고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셨다.
콩나물시루같은 학급의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을 모두 외울정도로 선생님은 상냥하고 착한 분이셨다.
"오늘은 새로운 전학생이 왔어요! 모두들 박수!"
"와아아아"
"기합소리가 이것밖이 안 됩니까? 중대장은 너희들에게 실망했다"
"와아악악악!!!"
"좋아.. 친구야..자기소개 해볼까?"
피부가 뽀얀 사내아이가 선생님보다 한 걸음 앞으로 나와 인사를 꾸벅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박병규입니다. 서울에서 이 곳으로 이사왔고, 만화를 좋아합니다. 모두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박수!"
"친하게 지내자~!"
계집아이들은 신이나 서울에서 내려온 아이라며 자기들끼리 재잘거렸고,
사내아이들은 그런 계집애들을 보며 피부가 뽀얗고 비실한 게 남자구실을 못 할꺼라며 질투 아닌 질투를 하였다.
나는 전학생의 얼굴을 힐끔 바라보곤 곧 지우개똥을 뭉치는 일에 전념하게 된다.
짧은 첫 인상이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한 평생 그 소년의 얼굴을 잊지 못 하게 된다.
연재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