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 아게로 아그니스가 거울 하나를 가지고 있었는데, 먼지가 끼어서 흐릿한 것이 마치 구름에 가리운 달빛 같았다. 그러나 그 아게로는 아침 저녁으로 이 거울을 라헬과 함께 들여다보며 마치 얼굴을 가다듬는 것처럼 하였다. 한 자왕난이 이를 보고 물었다.
“거울이란 얼굴을 비추어 보는 것이든지, 아니면 미남이 거울을 보고 그 잘생긴 얼굴을 보는 것인데, 지금 너의 거울은 흐리고 안개가 낀 것 같아서 이미 얼굴을 보기가 어려워. 그런데도 너는 오히려 그 거울에 얼굴 비추어 보기를 마지 않으니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아게로가 말했다.
“거울이 맑으면 얼굴이 잘생긴 사람은 좋아하겠지만, 얼굴이 못생긴 사람은 싫어할 것이야. 그러나 잘생긴 사람은 적고 못생긴 사람은 많어. 또한 못생긴 라헬이 거울 속에 비친 자기 얼굴을 한번 본다면 반드시 거울을 깨뜨려 부수어 버리고야 말 것이니, 이는 먼지에 흐린 채로 두어서 차라리 겉을 흐리게 하고 속의 맑은 바탕을 다치지 않도록 하는 것만 못해. 만일 라헬이 내 사랑을 받아서 예뻐지면 그 뒤에 닦고 갈아도 늦지 않아. 보통의 거울을 보는 사람은 그 맑은 것을 취하는 것이었지만 내가 거울을 보는 것은 라헬을 취하는 것인데, 너는 어찌 이를 이상스럽게 생각하니?”
하니, 자왕난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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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이규보 경설
똑같은 실패를 반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