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꺼라위키
한양을 사수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선조는 즉시 몽진을 결정하고 세자인 광해군에게 권한을 위임하여 분조를 넘겨준다.
그리고 선조는 부랴부랴 개성과 평양을 거쳐 의주로 몽진길에 오른다. 파천 자체는 고려-거란 전쟁이나 고려-몽골 전쟁 때 고려 왕실처럼 전쟁 수행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선조의 파천이 욕을 먹는 이유는 전쟁 수행 목적으로 파천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조선을 버리고 명나라로 튀려고 했다는 것 때문이다. 한양을 떠난 선조는 조선을 버리고 요동으로 도주할 계획을 잡았는데(이른바 요동 귀부), 파천 직후인 개성에서부터 윤두수가 요동으로 튀니마니하는 소리(선조실록 1592년 5월 4일)가 나왔고, 평양에서 나온 후 영변에서는 선조 본인이 대놓고 요동으로 튀겠다고 징징대기 시작하고 명나라에 망명하겠고 공식 요청을 한다(선조실록 1592년 6월 13일). 명나라는 조선군을 통제해야 할 왕이 딴 나라로 튀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과 너무나 빠른 선조의 도망 속도때문에 혹시 조선이 일본과 내통해서 명을 치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겹쳐서 수행원을 100명으로 제한하고[11] 압록강의 배를 요동 쪽으로 철수시켜서 거부 의사를 표했고 결국 의주까지 피난한 선조의 명나라 망명은 무산되었다. 특히 왕실과 종묘 사직과 신주에 대한 모든 권한을 광해군에게 넘기고 본인은 명나라로 도주하려고 하였기에 종묘 사직과 왕실을 지키기위해 도주하였다는 명분도 사라지면서 사실상 한 나라 왕이자 아버지가 자신의 안전만을 지키기 위하여 백성과 나라, 자식들마저 버린 것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특히 평양성의 함락은 두고두고 왜군에게 전략적 거점을 내어준 실책이 되었고 명군을 동원하고도 수개월 이상을 소비해야 했다.
라 적혀있던데 진짜야 이거?
역사책이 없어서 꺼라위키껄 퍼왔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