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에서는
광개토=현종=세종
이렇게 평가받으니
당시당시
평가와 후대인들의 평가
당대 인물이었던 최충은 현종의 치세를 주나라의 성강지치와 한나라의 문경지치와 비교해도 꿀릴 게 없다고 평가했고, 현화사비의 내용을 보면 채충순을 비롯한 당시 고려의 중신들은 현종을 요순의 재림 또는 하늘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온 신이었다고 평가했다.[1] 고려 말 이제현 역시 "나는 현종에게서 아무런 흠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평했다.
고려 황실에서 예종과 공민왕 때 각각 편찬된 태묘악장을 보면 공민왕 때 편찬된 책에는 고려 전기의 임금으로 찬양받는 인물이 태조, 혜종, 현종 3명 뿐이다. 태조와 혜종이 고려의 창업군주인 것을 생각하면 고려 말에도 현종은 최고의 성군으로 평가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예종 때 편찬된 책에는 현종을 열조(烈祖), 성조(聖祖)라고 부르는데, 열조는 커다란 공로와 업적이 있는 조상에게 쓰이는 굉장히 좋은 묘호이며[2] 성조는 이를 넘어서 거의 신격화 수준이라고 할 만한 묘호이다. 태조, 고조, 태종, 세조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의 묘호이며, 실제로 제위한 군주 중에서 이 묘호를 받은 사람은 '천고일제(千古一帝)'라고 불리는 청나라의 강희제 뿐이다.[3] 고려 왕조 내내 건국자였던 태조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의 성군으로 평가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에서도 명신 김종서는 현종과 문종을 고려사 최고의 군주로 평가하였으며, 양성지는 세조에게 현종을 본받아야 한다고 권했으며 성종 때의 학자 서거정은 현종이 총명하고 덕이있으며 성실하고 학문이 뛰어났다고 기록하였다. 임진왜란 중 류성룡은 선조에게 현종을 예로 들며 선위파동을 억제하였고, 세종 역시 백성들에게 공과 덕이 있는 군주이니 제사를 그대로 지내라고 교지한 4명의 군주 중 한 명으로 현종을 지목한 만큼 시대와 국가를 가리지 않고 업적과 덕을 칭송받은 위대한 군주였던 것을 알 수 있다.
현대에도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 중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위기관리 대처능력이라는 부분에서는 현종을 한국사 최고의 군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다수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