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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친구도 없는 ㅆㅎㅌㅊ앰창인생 살고 있는 게이들을 위해 남긴다.
지금껏 앰창인생 살아왔다. 유치원 초 중 고 대학 시절 모두 통틀어서 인생내내 겉만 돌던 병1신일게이다.
학창시절 내내 제대로된 친구도 못사귀고 기껏해야 초딩때 같이 검도를 하면서 친해진 애들이랑 간간히 우정을 이어가고 있는 인생이었다.
대학 자퇴하고 군대 전역까지 한 25살 인생에서 중 고 대딩친구라곤 한명도 없다.
페이스북 카카오톡에 저장되어 있는 인간들이 아무리 많으면 뭐하냐?
정작 나 힘들때 내 고민 털어놓을 놈은 커녕 나 심심할때 놀자고 부를만한 놈들도 그 많은인간들중 한명도 없었다.
안그래도 ㅆㅎㅌㅊ 인맥 군전역후 다단계에 빠지면서 그나마 한줄의 썩은동앗줄 같던 인맥마저 모조리 날려버렸다.
그 이후 지금까지 집밖에도 안나가고, 불러주는 친구도 없고. 백수생활하면서 새벽 5시에 자서 오후 1~2시되서 기상하는
병1신같은 생활패턴을 지금까지 반복하고 있었고, 매일같이 점심시간마다 집에 들리는 엄마의 한맺힌 잔소리를 기상나팔 삼아 일어나곤 했었지
매일같이 일어나서 새벽 잠들때까지 일베 눈팅 하는게 내 인생의 낙이었다.
핸드폰은 있어봤자 날 찾아주는이는 아무도 없고 통화목록이라곤 엄마 아빠 동생 엄마 엄마 엄마 한달에 한번씩 사채빚 독촉하는 전화
이게 전부였던 인생이다.
다단계에 빠져들면서 그나마 연락 가끔되었던 친구들마저 나를 천하의 개새23끼 인간 말종으로 취급하며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져 가고 있었고
이후 대인기피증까지 걸려 집밖으로 한걸음도 나갈 수 없는 상황이 오고야 말았다.
그렇게 집에서 은둔생활을 한지 십수개월..
나같은 자식을 낳은 죄로 어머니 아버지의 웃음을 본 기억 조차 아련해 질때 쯔음
늘 그렇듯이 새벽까지 일베질을 하다 오후에 어머니가 점심 먹으러 집에 들어오셨을때 역시나 나에게 잔소리를 하며 깨우신다.
그날 따라 유난히 잔소리가 심하셔서 나도 욱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나같은놈을 누가 낳으라고 했어? 씨1발 호적파 내가 그렇게 꼴보기 싫으면 나가 뒤져주면 될거아니야"
나도모르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어버렸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주저 앉아 소리내어 흐느껴 우는 모습의 어머니를 보고말았다.
그래도 자식새2끼라고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내 생일마다 케이크 사들고 오셔서 유일하게 내 생일 축하 해주시는 분 아니었던가..
이런저런 감정이 교차하면서 나도 방문을 닫고 거의 한시간 내내 눈물을 쏟아냈다.
'도저히 이렇게 살아선 안되겠다 뭐라도 하자'
생각만 하는것으론 안된다. 또 망각하고 병1신같은 인생을 이어갈까봐, 그것이 두려워 당장 여기저기 뒤져가며 여기저기 일자리 면접을 넣었다.
다음날 아웃소싱 회사에서 전화가 왔고. 나는 바로 면접준비를 마치고 십수개월만의 외출을 도전했다.
무서웠다. 밖으로 나가자 그 많은 인간들이 나만 쳐다보며 비웃는것같은 시선이 느껴졌다. 다시 집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면 또 다시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할것만 같아 쏟아지는 경멸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고 회사로 향했다.
그리고 회사에 도착후 면접이 시작되었다.
그 회사의 부장이라는 사람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이도 적지 않으신데 경력사항에 아무것도 없으시네요?
... 뭐라 할말이 없었다. 대충 아버지 회사 일을 종종 도와준다.. 라는 뻔한 거짓말을 할수 밖에 없었고.
25년 인생을 살면서 도대체 내가 한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회의감이 또 밀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저히 이대로 살수는 없어서 가식이 아닌 진실된 마음으로 아무거나 시켜주신다면 정말 열심히 할 자신있다고
이렇게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주장하는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떤것 같다.
그래서 결국 면접에 붙었고, 며칠전부터 그 회사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항상 따끔거리면서 나만 쳐다보는것 같은 타인의 시선들이
이제는 점점 느껴지지 않게 되었고,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는것도 상당히 익숙해졌다. 다행히 그 회사 사람들이 많이 착한탓에
병1신같은 나를 챙겨주기도 많이 했고. 사람과 사람사이에서의 끈끈한 그 무언가가 정말 오랜만에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런느낌으론 무엇이라도 할수 있을것같았다.
그래서 아까전 퇴근하고나서 연락이 끊겼던 옛 친구들에게 용기내어 연락을 해보았다.
무서웠지만 더이상 잃은것도 없어 내질러보았다.
그중 한명에게 오랜만이라는 답장이 왔고. 원래 같은동네에 살다가 공부때문에 다른지역에서 자취하고 있는 친구였는데
때마침 내가 연락한 타이밍에 부모님에게 안부인사차 집에 와있다는 연락이었다.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용기내서 얼굴이라도 보자고 보냈더니 의외로 흔쾌히 보자는 답장이왔고.
조금전까지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왔다.
간단히 소주 한병 기울이면서 지금껏 살아온 이야기를 다 털어놓았다. 그친구가 나에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가족에게도 하지 못했던 내 마음속에 쌓여있던 이야기들을 무슨용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친구에게 다 쏟아냈다. 소리내어 울진 않았지만
눈물이 하염없이 떨어져 내리더라. 예상외로 그친구가 오히려 나를 다독여주었다. 어렸을적 같이 운동하던 친구가 그 친구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구가 우리집까지 나를 바래다 주었고. 집앞에서 또 한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친구는 내일이면 다시 지방으로 내려간다고 한다. 언제 또 볼수 있을지도 모르고 또다시 친구하나 없는 외톨이 인생으로 살아갈것같아 두려웠다.
그래서 쉽게 그 친구를 못보내줬던것만 같았다.. 때마침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내가 걱정되었는지 어머니가 집밖에 나오시더라..
우리 어머니는 그 친구를 보자마자 바로 알아보셨다. 나름 초딩때까지만해도 우리집에서 먹고 놀고 자고갈정도로 나름 친했던 친구니까,
몇안되는 친구였기에 어머니는 초등학교때 이후로 못봤던 그 친구의 얼굴을 잊을수 없었던가보다.
내앞에서도 안웃던 어머니가 그렇게 환하게 웃는건 처음보았다. 내친구 두손을 잡고 어쩐일이니, 우리아들이랑 아직 연락하면서 지냈던거니?
많이 컸네 등등, 마치 제 자식을 오랜만에 마주한 어머니처럼 무지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셨다.
그렇게 행복해보이는 어머니를 두고 난 다시 친구집까지 바래다 준다며 또다시 같이 걸었다.
친구가 입을열더라. xx, xx, xx도 톡방에서 너 가끔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 하더라 이런이야기였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은 여전히 서로 자주 연락을 하며 지내는것 같았다..
어쩌다 나만 이렇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는지 어쩌다 이런 인생이 되어버렸는지 한탄스럽기만 했지만.
무언가 그 친구에게서 한줄기 희망이 보였던것만 같다.
-친구가 너도 애들이랑 얘기해볼래? 애들도 반가워 할것 같다
내심 두려웠지만 한편으론 설레기도 했다. 그리고 또 병1신같았다. 원래 친구였던놈들인데 왜 떠는건지.
어차피 술빨도 좀 받았겠다 초대해달라고 했다.
앞으로 이친구들 봐서라도 열심히 살거다.
요약
1.앰창인생 게이들도
2.스스로 노력하면
3.뜻하지 않게 앰창인생 변화시킬수 있다.
그와중에 일베갈생각으로 이걸올리는 나도 아직 앰창인생 탈출하려면 멀었다.
앞으로 일베 줄여야겠다. 설마 얘네중에 일베하는애 있는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