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화 : https://m.chuing.net/zboard/zboard.php?id=whigh&page=1&sn1=1&db_sel=&r_type=&num=&divpage=13&best=&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64203
칼리라는 이름의 여자아이가 존재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지혜를 지녀서, 사방에서 그녀를 찾아오는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다.
칼리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방 안에 존재하며 그녀를 찾아오는 자들에게 조언하고, 경고하고, 또 질문에 답했다. 세상 모든 지혜가 그녀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으니 굳이 밖에 직접 나갈 이유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이질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빛]에 닿아 있는 존재들이 나타난 것이다. 스스로를 절대집합이라 칭하던 그들은 칼리를 흥미롭다는 듯이 관찰하며, 이런저런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칼리 역시 그들의 존재를 눈치챘으나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 전부 알고 있었기에, 굳이 실제로 접촉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또다시 오랜 시간이 지나 마침내 그녀도 [빛]에 닿게 되었다. 이것은 정말 우연히 일어난 일이었지만, 사실 모든 재앙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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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와 절대집합의 첫 교류는 평화로웠다. 절대집합은 [666의 눈]과 [절대성]을 모두 지니게 된 그녀에게 지혜를 구했고, 칼리는 늘 그랬듯이 지혜가 필요한 자들에게 지혜를 나누어 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진 못했다.
'저들은 왜 이리 간단한 것을 모른다는 말인가? 말 그대로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을!!'
절대신씩이나 되는 자들임에도 질문의 수준은 비절대신과 다를 바 없었다. 물론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적어도 666의 눈을 지닌 칼리가 보기엔 다 거기서 거기였다.
결국 '수준 낮은 질문'에 일일히 대답하는 것에 싫증이 난 칼리는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녀가 보는 광경을 남들에게도 그대로 보여주려는 것이다.
칼리는 스스로의 본질 자체를 확장시켜 상대를 포함하는 방식으로, 가장 가까이 지내던 절대신에게 진정한 '지혜'를 나누어 주려 했다.
"어떤가, 파르바티? 이제 나와 같은 광경이 보이나?"
"이게 바로 [666의 눈]... 놀랍습니다. 그동안은 눈이 멀었던 것이나 다름없군요."
하지만 칼리는 깨닫고 말았다. 이 대화는 혼잣말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본인은 아무 이상도 느끼지 못했겠지만, 파르바티는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칼리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
칼리는 두 번 다시 같은 짓을 반복하지 않기로 결심했으나, 이미 한 번 '존재의 경계'가 느슨해진 그녀는 점차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변의 존재와 개념들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절대집합은 뒤늦게 파르바티의 소멸을 깨닫고 분노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누구든 칼리를 공격하는 즉시 그녀에게 흡수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절대집합은 끔찍한 피해를 입고 산산히 흩어졌다.
칼리는 울부짖으며 이 '저주'를 풀 방법을 찾기 위해 온 세상을 떠돌았지만 희생자만 늘어날 뿐이었다. '저주'는 점점 심해지더니 나중에는 그녀가 뭔가를 잠깐 바라보기만 해도 그것을 흡수해 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쯤되니 칼리는 자연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눈에 비치는 모든 것들... 그것에 무슨 가치가 있는가? 하나같이 손대면 사라져버리는 허상일 뿐이다. 설마, 이 세상에 나만이 홀로 '존재'하며 나머지는 전부 가짜인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칼리는 이 끔찍한 깨달음을 부정하기 위해 '반례'를 찾기로 했다. 그녀의 존재에 짓눌려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지 않고, 대등히 설 수 있는 존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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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가 흡수한 대상을 다시 분리한다는 선택지를 고르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는 어떤 형태로든 스스로의 격을 높이는 것만 가능할 뿐, 그 반대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진모리도 마찬가지였다.
"...!!"
한순간에 칼리의 정보를 궤뚫어 본 진모리는 박일표에게 아무 말도 남기지 않은 채 황급히 현세를 벗어났다. 그 역시 '제아봉침 궁극'을 한 번 사용한 탓에 존재의 경계가 느슨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르테이샤를 다른 방법으로 처리했어야 됐나?! 하지만 정공법으로는 승산이 없는 녀석이었는데... 아니, 그보다는 차라리 여래가 그때 666의 눈을 얻도록 놔두는 편이 나았을지도 몰라.'
그랬다면 진모리는 확실히 소멸했겠지만, 적어도 이렇게 고통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의외로 현세도 무사했을지 모른다. 어차피 666의 눈을 얻은 여래에겐 현세가 먼지나 다름없을텐데, 먼지를 굳이 부수거나 지배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어찌됐건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앞으로 현세는 쳐다보지도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흡수해 버릴지도 모르니까.
진모리는 참담한 심정으로 현세를 뒤로 하고 멀리멀리 떠났다.
다음화에 계속...
과연 진모리와 칼리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