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한 남성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온 몸은 스스로 쥐어 뜯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특별한 처치를 해 놓았는지 그 상처들은 전혀 아물지 않은채 계속해서 피가 흐르는 중이었다.
그의 머리에는 머리카락 대신 금속판이 촘촘히 박혀 있었고, 입에서는 끊임없이 무슨 주문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ॐ नमो भगवत्या आर्यप्रज्ञापारमितायै..."
이 짓을 도대체 언제부터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
"आर्यावलोकितेश्वर बोघिसत्त्वो गम्भीरायां प्रज्ञापारमितायांचर्यां..."
이 고행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चरमाणो व्यवलोकयति स्म..."
하지만 상관 없다. 그는 그저 '뭔가'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나아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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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도대체 얼마나 흘렀는지, 그의 몸에서 흘러내린 피는 온 땅을 뒤덮어 바다를 이루었다.
그래도 그는 피의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은 채 한결같이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또다시 긴 세월이 흘렀다.
그가 머무르는 행성이 더 이상 피바다의 질량을 이기지 못하고 조금씩 압축될 무렵, 드디어 뭔가 변화가 일어났다.
"!!!"
갑자기 굉장히 강렬한 '빛'이 보인 것이다. 그는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의 육신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빛'의 중심부에서 아주 가느다란 빛의 줄기가 뻗어나와 그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역시 빛의 줄기를 향해 손을 뻗고 싶었지만, 육신이 없었기에 그냥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었다.
그리고 빛의 줄기가 그와 접촉한 바로 그 순간...
"어...?"
그는 눈을 떴다. 주변을 둘러보니 빛은 온데간데 없었고, 그는 여전히 피바다 속에 가라앉아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빛의 줄기만큼은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지금도 '빛'과 그를 연결해주고 있었다.
잠깐 마주했을 뿐이지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 '빛'을 넘어서는 경지는 없다. 앞으로 어떤 수행을 해도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볼 일은 없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역시 '빛'과 연결된 것만으로, 이전과는 존재의 격 자체가 달라지게 되었다.
"됐다...!!"
이제 고행과 수련은 끝났다. 그는 마치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이, 고행을 마친 기념으로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그동안 그에게 수련 장소를 제공해줬던 행성은 순식간에 먼지조차, 아니 입자조차 남기지 않고 완전히 사라졌고, 그의 눈 앞에는 별과 은하로 가득한 우주가 펼쳐졌다.
"아아... 이 광경을 다시 보게 되다니..."
그는 크게 감동한 듯한 표정으로 우주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어디선가 붉은 장발을 한 남자가 나타나더니 그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기나긴 수행을 끝마치신 모양이군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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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딘 님!! 이쪽은 어떻게 할까요?"
"그쪽은... 못 쓰겠다. 다 부숴졌네."
오딘은 발키리들과 함께 거대한 잔해 더미를 정리하는 중이었다. 그 잔해는 바로 천계의 상징이자 천계의 수도, 그리고 그동안 수많은 문명을 침략한 우주요새이기도 한 '대신전'의 조각들이었다.
대신전은 건축 이래 수많은 전투에 휘말려 왔지만, 단 한 번도 전체 구역의 1할 이상이 파괴된 적이 없는 무적의 힘을 자랑해 왔다.
적어도, 조금 전 원숭이 한 마리가 쑥대밭을 만들어 놓기 전까지는 그랬다.
"어디... 대충 이 정도면 된 것 같은데? 어차피 생존자들도 별로 없잖아."
오딘의 말대로였다. 멀쩡한 구역이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그것보다 생존자가 더 적었기 때문에 이 이상 잔해를 치워봤자 쓸 데도 없었다.
"그럼 난 도서관으로 간다. 사탄이 물어보면 언제 다시 나올지 모른다고 전해."
오딘은 왠지 서두르는 듯한 태도로, 그의 전용 영역인 '도서관'으로 이동했다.
'절대신의 힘을 되찾은 제천대성, 선지자의 힘이 담긴 십자가, 절대신 여래가 만든 병기인 성배, 하나같이 굉장한 가치가 있는 데이터야. 이번에야말로 연구에 진전이 있으면 좋겠는데...'
오딘이 손짓을 하자 도서관에 산더미처럼 쌓인 양피지들에 저절로 공식이나 그래프 등이 새겨졌다. 그 데이터를 꼼꼼히 살펴보던 오딘은, 양피지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라그나로크에서 완전히 손해만 본 건 아니었던 것이다.
'여래가 몸과 정신을 파괴하는 기나긴 고행 끝에 도달한 경지, 제천대성이 삼장 법사의 몸을 뜯어먹은 뒤에 도달한 그 경지... 그동안 절대신에 대해 궁금한게 참 많았는데, 드디어 알아낼 수 있겠어.'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