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네트
최근수정 2021-06-16 23:2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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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여성
생일 : 
키/몸무게 : 

땅거미가 지고 어둠이 내리자 아네트는 하루의 일과를 시작했다.
마법봉, 수정구, 그리고 머리를 맑게 해 주는 마법약, 이것들은 지난번에 졸음을 참지 못하고 잠들어 버린 후로 아네트에게 필수품이 되어 버렸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아네트는 허름해 보이지만 아늑하기 그지없는 다락방을 나가 별빛으로 가득한 밤하늘 아래 파로 소리와 함께 잠든 마을을 바라보았다.
바다 마을은 삼면이 바다로 이루어져 해류와 심연의 틈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어민들은 수십 년 동안 태풍과 해일에 시달려 왔다. 그들은 마법 의회에서 최고의 마법사를 이곳에 보내주기를 바랐지만, 남부 전선의 상황이 급박한 마당에 극소수의 마법사를 이렇게 인구와 지원이 적은 작은 마을에 보내줄 리가 만무했고, 결국 마법사의 실습장소로 전락해 버렸다.

"어민들을 도와줘야 해!"

열정적이고 순수한 아네트는 기원의 성 같은 번화한 도시에서의 실습을 포기하고, 홀로 바다 마을로 향했다. 그녀는 바람 계열의 마법을 전공하고 부전공으로 점성술을 배운 견습 마법사였기 때문에 별자리를 보고 어떤 징조를 발견하면 태풍이 오기 전에 어민들에게 알려 대비하도록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민들이 바라는 건 즉시 재난을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마법사였고, 실습생은 아카데미 밖에서는 마법을 쓸 수 없었던 터라 아네트는 존경받는 마법사가 아닌 거짓말쟁이 소녀가 되어 버렸다. 지난 50일간 단 2번만 날씨 예측이 틀렸음에도 말이다.
한 번은 바람이 부는 맑은 날씨였는데 폭풍이 온다며 선박들을 정리하고 문을 잘 고정해 두라고 일러 어민들이 하루를 그냥 날려버렸고, 다음날에도 해가 쨍쨍하자 어민들은 아네트의 예측이 틀렸음을 알았다. 또 한 번은 폭풍이 몰려온 날이었는데 바로 아네트가 졸아버린 그날이었다. 초반의 밤하늘을 봤을 땐 분명 맑은 날씨였는데, 피곤했던 아네트가 잠시 졸아 버렸을 때 별자리가 바뀌어 버렸고, 다음날 저녁 폭풍우가 몰려와 생선들을 실고 돌아오던 어민들은 파도와 씨름해야만 했다. 다행히 심각한 폭풍은 아니었기에 아네트의 조치로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모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2번의 실수로 마법학원에는 호소문이 날아들었다. 마법 의회 직속 교육기관인 아카데미의 교수들은 의회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아네트의 아카데미 재수강을 결정했다.
그날 밤은 아네트의 마지막 업무날이었다.
아네트는 떠나고 싶지 않았다. 어민들이 임시로 내준 방은 아카데미의 기숙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었지만, 마치 집이 생긴 기분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다 마을에 오기 전 마법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겠다는 다짐을 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오묘하곧 난해한 점성학에서 4%의 오차 정도는 처음치고는 아주 훌륭한 성적이었다. 하지만 시험의 4%와 현실의 4%는 다른 의미라는 것을 아네트도 알고는 있었다. 어민들에게 4%의 오차란 목숨이 달린 문제였다.
별들이 가득한 밤하늘을 쳐다보며 아네트는 다시 그때의 뜻밖의 만남을 떠올렸다.
한밤중의 고요한 도서관, 그곳엔 책읽기에 몰두 중인 한 소녀와 자상해 보이는 한 여인이 있었다. 마법 이론 수업에선 항상 뛰어난 성적을 보였던 아네트였지만, 실전 수업에서는 계속 실패감을 맛봐야 했다. 종강이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 아네트를 제외한 모든 학생들이 마법을 구현해 냈고, 그녀는 강제퇴학의 위기에 몰려있었다.
책에서도 답을 찾지 못한 아네트를 보고 여인은 응원의 눈빛으로 말을 건넸다.

"내가 아는 친구는 마법 이론엔 젬병이었는데도 내가 본 중에 최고의 마법사가 되었단다."

아네트는 감짝 놀란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도 너처럼 깜짝 놀라 몰래 마법을 어떻게 연습하는지 보았단다."

여기까지 말한 여인은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을 이어아갔다.

"거기서 난 화염 속의 정령을 보았단다. 화염 속의 그는 불과 함께 자유롭게 춤을 췄는데 불을 위해 태어난 것만 같았지.

마법은 단순한 글자가 아니란다. 하루종일 책만 보면 실제와의 거리를 좁힐 수 없어. 마법과 친구가 되어야만 네가 필요할 때 널 도와줄 거야."

그로부터 한참 후 수여식 날이 되어서야 아네트는 그 여인이 바로 마법 의회 설립자이자 전설의 인물인 세피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피라에게서 상패를 수여받은 아네트는 그녀의 충고를 가슴 깊이 새겼다.

"네 그 친구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많이 도와줬으면 좋겠구나."

그것은 바로 아네트가 바다 마을에 왔을 때의 소망이었다.
갑자기 아네트 눈앞의 별자리가 바뀌었다. 죽음의 별이 연보라색의 빛을 잠깐 비추더니 이내 색을 감췄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아네트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저 멀리서 심연의 틈에서 일어난 폭풍이 해역을 횝쓸고 있었다.
거대한 폭풍이 오고 있다.

"친구야, 지금이 나를 도와줘야 할 때야!"

눈앞에 닥친 재앙 앞에서 아네트는 아카데미의 규칙을 고려 할 시간이 없었다. 그 즉시 마법봉에 올라 기사처럼 폭풍을 향해 돌진했다.
이튿날 새벽 따뜻한 잠에서 깬 어민들은 처참하게 부서진 선박들을 보았지만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아네트의 용감한 행동을 직접 보진 못했지만, 바닥에 쓰러져 있는 소녀의 모습만 봐도 어떤 일을 겪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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