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스
최근수정 2021-07-02 00:2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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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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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알수없음
생일 : 0925
키/몸무게 : 131

"삶의 의의는 숨쉬고 먹고 자는 데 있어. 책임 같은 건…… 누가 신경 쓰지?"
카라스는 게으르고 자유분방한 녀석이다. 분명 남다른 재능을 갖고 있었지만 늘 운명이 부여한 자신의 책임에서 도망치기만 했다. 대제사장이 부락에서 가장 숭고한 자리를 카라스의 앞에 놓아주었지만 그는 그 자리에 1초도 머무르려 하지 않았다. 떠날 때 제단에 바쳐진 과일을 집어가는 건 잊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인 건 카라스는 심성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특별히 귀찮은 일만 아니라면 그는 직접 곤경에 처한 녀석을 도와주기도 했다. 물론 밥 먹고 잠자는 것 이외의 상황은 카라스에게 아주 매우 특별히 귀찮은 일이긴 했다.
그래서 대제사장이 자신을 계승자로 선택했다는 걸 안 순간 카라스는 망설임없이 도망쳤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을 챙겨서.
"매일 제단에 앉아서 미친 짓이나 하고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하루도 쉬지 못하면서 볼일 보는 것조차 규율 맞춰서 해야 한다고. 이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감옥살이랑 다를 게 뭐지? 그리고 감옥살이도 하다못해 바람 쐴 시간은 준다고!" 새로 사귄 친구인 일레스 앞에서 카라스는 숨김없이 자신의 한탄을 쏟아냈다. "매일 과일 몇 개 주고 날 꼬드길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날 바보로 아는 거야? 매일 몇 접시를 갖다 줘도 모자라다고!"
"하지만 아무리 많은 과일이라도 언젠가 다 먹을 거고 또 물리는 날이 올 거야. 네가 정말 제사장의 직위를 이어받는다면 그땐 어찌해야 하지, 친구?" 일레스는 하하 웃으며 반질반질하고 속이 꽉 찬 과일을 건네며 가출한 친구를 위로했다.
"그건 간단하지 않아? 몰래 도망친 다음 여기 너한테 와서 새로운 놀 거리를 찾는 거지!"
그렇게 말하며 카라스는 그 과일을 높이 던진 뒤 눈을 감고 머리를 젖힌 채 잔뜩 기대감을 안고 과일이 입안으로 쏙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이렇게 카라스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일레스와 친구가 된 건 무척 신나는 일이었다. 그는 박식하고 다정했으며 마음이 넓었다. 카라스는 그 덕분에 꿈에 그리던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먹고 자고 일어나면 또 먹었다. 유일하게 기력을 쓰는 건 자다가 몸을 뒤집을 때뿐이었다.
"네 덕분에 이렇게 잘 지내는데 내가 널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친구?"
안락한 생활을 너무 오래 하다 보니 아무리 나태한 카라스라도 조금 미안한 감이 들었다.
"친구 사이에 우정 말고 무슨 거래 같은 걸 따지나." 일레스는 여전히 자상한 모습으로 조금도 개의치 않아 했다. "게다가 내가 짊어진 사명은 지금의 네가 개입할 수 없는 문제야."
"이봐! 일레스, 날 우습게 보지 말라고!" 카라스는 일레스가 자신을 얕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나도 고대용의 후예라고! 순수한 혈통이란 말이지!"
일레스는 하하 웃으며 과일을 내밀고 펄펄 뛰며 화를 내는 카라스를 달랬다. 일레스는 물론 자신의 친구가 허풍 떠는 것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곧 닥쳐올 적은 이렇게 무시무시한데 카라스는 아직 충분한 준비가 된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어쨌든 내가 꼭 도울 거야!" 카라스는 달달한 과즙을 음미하며 굳게 맹세했다. 남다른 재능을 지닌 그는 다들 자신의 품행을 지적하는 건 참아도 능력을 의심하는 건 그냥 넘기지 못했다. 더군다나 이건 자신의 친구가 의심하는 것이 아니던가.
"정말 이상한 일이지. 그때 난 무슨 생각을 한 걸까? 팔자 좋은 시절을 누리지도 않고 굳이 귀찮은 일을 만들다니!" 카라스가 투덜거렸다.
그날 일레스에게 자극받은 뒤 카라스는 앞으로 일레스에게 특훈을 받겠다고 그와 약속했다. 숲의 수호자 시험을 통과하고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 될 때까지 말이다. 이튿날 카라스는 바로 후회하고 말았지만.
다만 이번에는 몰래 사라지는 짓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약속대로 혈맥으로 이어받은 천부적인 마법 재능을 훈련하기 시작했다.
카라스는 자신이 나태하고 식탐 많고 규율을 지키지 않는 이미지로 보여지는 건 별로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한 약속은 절대 어기지 않았다. 이것은 카라스가 가출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이런 책임을 질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할 수 있다해도 계속 이어 나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결국 도피를 선택했다.
몇 년이 지난 후, 이때 더없이 고되었던 전쟁 전 훈련을 떠올릴 때마다 '은신의 대가'로 불리는 카라스는 '죽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 이 훈련이 없었다면 이후 일어난 어둠의 침입에서 그는 자유롭게 전선을 오가며 중상을 입은 수많은 전우를 구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일레스의 특훈을 받고 숲의 수호자 시험을 통과했어도 카라스는 여전히 앞에서 전선에 나서는 전사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변 환경에 따라 바로 몸의 색을 바꿀 수 있는 능력으로 그는 전장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전투 상황을 정탐하고 전우를 구하는 임무를 맡았다.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위치에서 카라스는 여유만만해 보였다. 줄곧 그를 질책하고 원망하던 그의 동족도 카라스가 이뤄낸 엄청난 업적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들은 승전 축하 자리에서 카라스에게 다시 부락으로 돌아와 제사장의 자리를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그후 카라스는 다시 사라져버렸다.
"그래도 구속받지 않는 삶이 나에게 더 어울린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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