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 : 남성 생일 : 0620 키/몸무게 : 172CM
“이 아이의 영혼은 신체보다 훨씬 강력하다!”
실제로 의식을 책임지는 마법사가 이렇게 평할 정도였다. 그러나 켄트는 에롤의 눈앞에서 죽었다. 심연의 마물의 앞잡이가 에롤을 해하려 하자 형으로서 동생을 지키고자 그 앞을 가로막았던 것이다. 마법으로 단련된 마물의 신체는 일반인의 육체를 초월했기에 흔한 무기로는 털끝조차 건드릴 수 없었다. 에롤은 켄트의 심장이 추악한 마물의 손에 처참히 부서지는 것을 똑똑히 보고 말았다.
그날 이후, 본래 내향적이던 에롤은 성격이 괴팍해졌다. 다행스럽게도 함께 싸워 온 동료들이 켄트를 대신해 그를 돌봤다. 그중에서도 남쪽 군대를 통솔하던 에드먼드는 오갈 데 없는 에롤을 친자식처럼 여겼다. 그러나 에롤의 낯빛은 나아지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형의 죽음은 자신 때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괴로운 책임감이 아니라 일종의 본능적인, 마음의 문제에 가까웠다. 인기척 없는 밤마다 그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어서 가! 여길 떠나야 해! 그렇지 않으면 넌 너를 포함한 주위 사람들을 모두 해치고 말거야....”
두려웠던 에롤은 담요를 머리 끝까지 뒤집어썼지만 목소리는 점점 더 뚜렸해질 뿐이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어느 순간 에롤은 그 목소리가 자신의 목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가 유일하게 믿던 사람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언젠가 자신도 세상을 떠나 형과 재회할 것을 알았다.
에롤은 그 날이 빨리 오길 간절히 소망했다.
숨어서 우는 횟수가 줄어들면서 그의 내성적이었던 태도도 달라졌다. 특히 전투 시 거칠고 과격한 면모를 보였는데 때로 그 모습이 실성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몇번의 전투를 치르고 나자 그는 '광기의 에롤'이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충동적이라는 것은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에롤의 경솔한 행실은 그를 돌보는 동료들을 위험에 빠뜨리기도 했다. 그가 자멸할 뻔 했을 때, 그의 스승인 에드먼드가 손을 써 막았다. 에드먼드는 광기에 사로잡힌 그를 감금실에 넣어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이성을 찾기를 기다렸다.
그 호의가 에롤에겐 더욱 깊은 고통을 겪게 했다. 떨칠 수 없는 목소리가 매일 밤마다 그를 괴롭혔다. 사실 에롤이 낮에 혼신의 힘을 다해 전투를 치르는 것은 밤에 전신의 피로를 먹이삼아 숙면을 취하려는 의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얼마 안가 에롤은 에드먼드를 원망하게 되었지만, 마음속에는 감사한 마음도 자리잡고 있었다. 그의 스승은 그와 그의 동료를 이런 형벌을 내렸을 것이다. 형이 떠난 후, 에드먼드는 그에게 더욱 관심을 기울여 주었으며 자식처럼 대해 주었다. 그것은 에롤의 부서진 마음에 한줄기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에롤은 감금실을 나가자마자 에드먼드가 과로로 인해 병을 얻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그는 또다시 고통에 사로잡혔다.
감정이 무너진 에롤은 영지를 나가 대성통곡을 했다. 그가 돌아오는 길에 신분을 알 수 없는 병사 몇 명이 유약해 보이는 그를 보며 조롱했지만, 그들은 에롤이 악마사냥꾼 진영으로 들어가자 즉시 입을 다물었다. 남쪽에 주둔한 군대라면 악마사냥꾼 진영의 녀석들은 상대하기 만만치 않다는 것쯤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에롤은 아무런 소동도 일으키지 않고 머리를 숙인 채 조용히 슬픔에 잠겼다. 감금실에 있었던 며칠 간, 그는 에드먼드에게 마음속 비밀을 털어놓고자 생각했다. 스승에게 도움을 받아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다시 밤이 찾아오고 그는 홀로 또다른 자신이 퍼붓는 질책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네가 그렇게 만든 거야. 그리고 넌 더 많은 이들을 다치게 할 거야.”
“어째서지? 어째서 그렇게 된다는 거야? 나는 모두에게 재앙인거야?”
에롤은 떨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우린 어둠보다 더 어두운 끔찍한 것을 가지고 있어. 그게 있는 한, 주위의 생명들을 다 삼켜버리고 말거야.”
목소리가 대답했다.
“방금... 우리라고? 넌 도대체 뭐지?” 에롤이 물었다.
“나? 난 바로 너야! 하하하하!”
그 목소리는 실성한 듯 웃기 시작했다.
“그럼 네가 가르쳐 줘, 어떻게 해야 이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지?”
에롤은 다시 물었다.
“그건 쉽지, 네가 죽으면 그들은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어.”
목소리는 조용히 답했다.
에롤은 갑작스레 의식이 흐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의 오른손이 스스로 목을 움켜쥐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뭐.. 뭘 하는 거야.....”
가슴이 터질 듯한 의문을 품은 채, 그는 결국 의식을 잃고 말았다.
열린 그의 눈꺼풀 사이로 붉게 물든 눈동자가 흉층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 후 한 명의 에롤이 잠에 들면, 또 다른 에롤이 깨어났다.
그리고 어느 깊은 밤, 에롤을 조롱하던 병사는 막사 안에서 급사했다. 시신에는 흑마법사나 악마사냥꾼이 남길 수 있는 치명적인 상처가 남아 있었다. 이때 에롤은 이미 종적을 감추고 없었다. 악마사냥꾼이라는 특수한 신분이었기에 악마사냥꾼 군대는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사관 리쳐를 파견해 추적대가 에롤의 사건을 조사하게 했다.
추적대가 마지막으로 가져온 소식은 에롤이 완강히 저항하다 발을 헛디뎌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절벽의 높이로 봤을 때 에롤이 살아 돌아올 확률은 매우 낮았다. 그들은 에롤이 겪은 육체적, 정신적 이변을 은폐하였고 긴 분쟁을 겪는 동안 수없이 목숨을 걸고 하신들의 입장을 표명하는 그들이었기에 참담한 감옥 생활을 겪으며 사신이 찾아오길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남쪽 전선의 교전이 길어지면서 이 사건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빠르게 잊혔다. 수백 년이 지난 후, 암흑 속을 홀연히 걸어 들어가는 닌자가 있었다. 그는 산골짜기에서 깊게 잠이 든 부상자를 구했는데, 이로 인해 에롤의 이름이 다시금 엘시노어에 나타나게 되었다. 하야테라는 이름의 닌자는 에롤이 갓 잠에서 깬 뒤 그에게서 괴이하고도 이해하기 힘든 말을 듣게 되었다.
“내가 바로 나다!”
“나는 여전히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