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 : 알수없음 생일 : 키/몸무게 :
"엄마가 지난번에 여행가기 전에 인편으로 말을 전했어. 나한테 동생이 있는데 모렌 할아버지 집에 맡겼다고. 원래 난 그 말을 안 믿었거든. 너도 알다시피 엄마는 신뢰가 잘 안 가잖아. 나에게 정말 동생이 있을 줄은 몰랐다!"
브룬힐더는 참지 못하고 위스프의 작은 머리로 손을 뻗었다. 무례한 행동 같았지만 그건 브룬힐더가 호의를 표하는 방식이었다.
"머리 건드리지 마!"
위스프는 손바닥으로 브룬힐더의 손을 밀어내며 뾰로통한 얼굴로 자신의 불만을 드러냈다. 얼어붙은 공기 속에서 난감한 분위기만이 실내를 가득 채웠다.
브룬힐더는 무심결에 위스프 너머로 시선을 돌려 그녀의 뒤에 서있는 모렌의 진지한 얼굴을 보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래도 금방은 너도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겠지...... 난 다음에 다시 와도 돼. 피는 물보다 진하단다. 네가 철없이 군다고 부정할 수 있는게 아니야!"
'이 노친네가 정말 귀찮게 하네!'
뒤돌아 자리를 떠나며 브룬힐더가 속으로 불만을 떠뜨렸다. 모렌이 아니었다면 브룬힐더는 '더 사랑스러운' 방식으로 위스프와 자매의 연을 다시 맺었을 것이다. 하지만 브룬힐더는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돌봐야할 형제들이 있었다.
브룬힐더는 '올빼미 파'에서 새로 선출된 두목이다. 국경 지역에서 조금 이름이 알려진 이 조직은 한때 신뢰를 얻으며 소문도 꽤 괜찮았고 건드리는 일도 선을 지키는 편이었다. 하지만 연방이 국경 무역을 개방하면서 나날이 경쟁에 대한 부담이 늘어났고 개인의 야심이 계속 커지면서 결국 힘없는 이 작은 조직은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전 두목인 네게브가 도망친 후 안팎으로 길드의 존속에 압박이 더해졌다. 보안관 로크가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지 않았다면 브룬힐더를 포함한 올빼미파 조직원도 아마 감옥에서 여생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살길을 모색하기 위해 조직원들은 계속해서 다른 세력으로 옮겨갔다.
'우리는 이렇게 와해되는 건가?!'
내우외환의 상황에서 줄곧 책임을 회피하던 브룬힐더는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서야 했다. 브룬힐더가 이렇게 결정한 이유는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보다 더한 인연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것 말고도 조직 전체를 말려들게한 네게브가 바로 그녀의 남자친구였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전 남친이 되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브룬힐더의 주도 하에 얼마 남지 않은 올빼미파 조직원은 그녀와 함께 미야타로 돌아와 잠시 몸을 피하기로 했다. 이 도시는 광맥이 고갈되어 나날이 쇠퇴하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축적해온 산업 유산은 여전히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이것은 올빼미파가 다시 재기할 수 있는 희망이었다. 다행히 모렌은 브룬힐더와 예전의 일을 두고 따지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으면 미야타에서 이 무기 마스터의 명망으로 처음 이곳에 온 올빼미파는 설 자리가 없었을 것이다.
위스프처럼 브룬힐더도 어릴 적에 어머니에 의해 모렌의 손에 양육되었고 시간이 흐른 뒤에는 모렌의 제자가 되었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는 브룬일더는 기계 개조 기술을 배운 뒤 자신에게 먹고 살 만한 재주가 있다는 걸 깨닫고 편지 한통만 남긴 채 당시 새로 사귄 남자친구와 몰래 도망쳤다. 이런 점에서 보면 브룬힐더의 믿음직하지 못한 면은 그녀의 모친과 다를 바 없는 것 같았다. 어쨋든 브룬힐더는 형제들과 노력하여 위태위태하던 작은 조직이 자리 잡을 수 있게 만들었다. 도시 어느곳에서든 볼 수 있는 공업 폐기물은 브룬힐더와 사람들의 가공을 거친 뒤 중고 공산품으로 만들어져 팔려 나갔다. 정교하게 만들어졌지만 가격이 비싼 카셀의 제품과 비교했을 때 저렴하고 내구성이 좋은 미야타 제품은 평민 계층에게 더 사랑받았다. 그 사이에 모렌이 가장 아끼는 제자이자 천재 발명가인 맥스도 종종 찾아와 기술적으로 지원해 주었고 브룬힐더를 집안 연회에 초대하기도 했다. 위스프는 여전히 이 언니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함께 식사하는 건 묵인했다. 브룬힐더는 이런 변화에 무척 기뻐했고, 동생과 화해하는 그 날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불청객의 방문으로 나날이 환해지던 브룬힐더의 웃음에 그림자가 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전 남친이자 조직의 전 두목인 네게브가 몰래 미야타에 들어온 것이다. 네게브는 지금도 여전히 연방의 지명 수배자였다. 브룬힐더는 바로 신고하지 않았다. 심지어 형제들을 속이고 몰래 네게브와 만나기도 했다. 브룬힐더는 그가 스스로 떠나도록 설득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네게브가 예상을 깨고 멋대로 설칠 줄은 몰랐다. 그는 위스프를 납치해 자신이 조직의 주도권을 다시 장악할 수 있게 협조하라고 브룬힐더를 협박하고자 했다.
"꿈도 야무지네! 형제들은 이제 겨우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어. 그들은 네 야심믈 실현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고!"
브룬힐더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 네게브의 손에 붙들린 위스프를 보고 어쩔 수 없이 마음 속 분노를 내리눌렀다.
"난 어떻게 해도 좋아. 내 동생만 풀어준다면......"
"하하하! 사랑하는 브룬힐더, 나는 알고 있었어. 다정한 네가 어떻게 동생의 생사를 모른 척 하겠어?"
자신의 뜻대로 됐다고 생각한 네게브는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저기, 두 사람은 난 안중에도 없는 거야?"
앳된 목소리가 난데없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건 뭐야?"
네게브는 위스프가 주머니에서 검은 구슬을 꺼내는 걸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폭탄이다, 이 멍청아!"
브룬힐더는 소리지르며 자신이 개조한 마법 소총을 꺼내 발을 빼고 도망치려는 네게브를 향해 쏘았다, 아니 폭격을 날렸다. 그리고 그 순간 줄곧 옆에서 기회를 노리던 맥스도 완전 무장한 채 나타났다......
"저기...... 정말 미안해!"
헤어질 무렵, 브룬힐더는 결국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괜찮아. 어느 눈 먼 도둑놈이라고 생각해서 오빠랑 같이 데리고 놀 생각이었는데 그 쪽이랑 관련이 있을 줄은 몰랐어...... 그래서 말인데 남친 고르는 눈이 정말 별로야."
위스프가 투덜거렸다.
"이봐! 난 이미 걔랑 헤어졌다고! 그리고 만난 상대가 나쁜 놈인데 나한테 무슨 죄가 있어? 분명 우리 엄마로부터 내려온 가족의 저주일거야......"
변명한답시고 브룬힐더는 신뢰 없는 모친까지 물귀신처럼 끌고 들어왔다.
"어쨋든 누군가에게 소중히 다뤄지는 기분은 아주 괜찮았어."
"뭐?"
"내겐 할아버지가 있고 오빠도 있어. 언니 하나가 더 있는 것도 그리 많은건 아닌 것 같아. 그러니까 내일 또 만나, 언니!"
우렁찬 대답이 브룬힐더의 마음을 덮고 있던 마지막 안개까지 걷어내 주었다.
"또 만나자, 동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