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란도르
최근수정 2021-08-08 00: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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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태어난 날, 세상 모두가 노래를 불렀지."

고요한 밤, 은은하고 감미로운 노래소리가 흔들리는 모닥불을 관통하여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로 날아올랐다. 노래의 주인공은 백발 벽안의 정령이었다. 그는 지금 사람들과 모닥불을 둘러싸고 앉아 청목색의 비엘레를 안고 낮은 목소리로 우아하고 아름다운 곡인 '여왕 강림의 날'을 불렀다. 엘시노어에는 정령에 대한 전설이 많이 전해진다. 그들의 아름다운 용모, 신비로움, 마법은 지금도 여전히 음유시인들의 창작에 영감을 주는 원천이었다. 이는 수백 년 전 세계를 구한 정령 여왕 테라나스와 관계가 있다. 바로 테라나스가 어둠의 주인 볼케스를 명중시켜 죽이고 그 위세를 떨어뜨린 덕분에 연맹군은 기세를 몰아 엄청난 군용을 자랑하는 심연의 대군을 격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직접 정령을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들은 늘 아득히 멀고 고요한 에본 숲에 머무르며 세상과 단절된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귀가 뾰족한 엘란도르가 나타났을 때 상단 사람들은 최대한의 선의를 보이며 그를 받아들였다. 늘 인색한 상인조차도 잘 빚은 과실주와 향료를 뿌린 빵을 내놓고 이 낯선 손님을 대접했다. 모험가의 전설에 따르면 정령은 육식과 유제품을 먹지 않는 종족이라고 전해진다.

이전에 엘란도르는 이미 사흘 밤낮을 걸어서 산과 물을 건너왔고, 그 사이에 물만 조금 마신 걸 제외하면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정령은 분명 대자연의 사랑을 받는 존재였기에 그들은 여러 식물을 통해 생체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유 연방은 전 대륙에 생산량이 가장 많고 품질도 제일 좋은 광맥을 보유한 대신 풀이 울창한 토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 때문에 엘란도르는 종종 제대로 배를 채우지 못하는 곤란한 상황에 처하곤 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엘란도르는 오늘 선량한 인간을 만나게 되었다. 사람들의 환대에 보답하기 위해 그는 경쾌하고 부드러운 '여왕 강림의 날'을 불렀다.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맑은 악기 소리와 함께 여행객들의 피로를 깨끗이 씻어주며 '유쾌한' 분위기가 야영지로 넓게 퍼져 나갔다.

사람들이 몰려오는 잠에 점점 막사로 돌아가자 마지막에는 엘란도르만이 그 자리에 남게 되었다. 그의 곁에는 아직 다 타지 않은 장작불과 기이한 형태에 불빛이 깜빡이는 마법등이 있었다. 엘란도르는 그의 흰 손가락으로 마법등을 문지르며 상상속에 빠져들었다.

"감사합니다."

검붉은 불빛이 밤의 장막을 덮치며 강인해 보이는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이름은 리쳐로 여기 상단에서 고용한 용병단의 일원이었다. 물론 그건 그저 표면상의 신분에 불과했다.

"?"

미간을 찌푸린 엘란도르의 눈빛에 의문이 가득했다.

"방금 그 곡 말입니다. 정말 잘 부르시더군요. 제가 예전에 만났던 그 어느 음유시인보다도 훨씬 더요…… 제 영혼의 상처가 빠르게 치유되는 것 같았습니다."

리쳐가 몇 걸음 다가와 엘란도르의 곁에 섰다.

"칭찬 감사합니다. 안녕과 즐거움을 모든 영혼에게 선사하는 것이 바로 저의 사명이랍니다."

엘란도르가 작게 대답했다.

"그런데 당신의 눈빛은 그렇게 맑지 않군요. 내면은 고독과 슬픔이 뒤섞인 것 같은데......"

"그렇습니까?"

엘란도르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당신의 이야기를 좀 해도 되겠습니까? 무례하게 굴고 싶진 않지만 이게 나의 일이라서 말입니다. 이해 바랍니다."

이렇게 말한 리쳐는 몸에 찬 검을 벗고 살짝 뒤로 발끝을 구부려 기가 막히게 몸의 중심을 잡았다. 그는 이미 언제든 검을 뽑을 수 있는 상태였다.

"당신에게서든 아니면 당신 옆에 있는 그 등에서든 익숙한 힘이 느껴지는군요. 금지된 그 힘 말입니다!"

"진정하세요, 악마 사냥꾼. 나에게는 악의가 없습니다."

엘란도르는 놀라움과 의아함으로 가득한 리쳐의 얼굴을 일부러 외면하며 ‘앉으세요’하고 손짓을 했다.

"다른 모험가들에게서 당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 동료는 걱정하지 마세요. 그들은 이 힘을 잘 제어하고 있습니다...... 사악한 힘이라도 올바른 일에 쓰인다면 당신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미안하지만 그 등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하기 전까진 당신을 완전히 믿을 수 없습니다!"

리쳐는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았다.

"그럼 제가 당신을 위해 노래를 한 곡 하지요. 세상에 공개한 적 없는 개인 창작곡입니다."

엘란도르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감미로운 노랫소리가 다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화살이 악마의 주인의 가슴을 꿰뚫었을 때

악마의 그림자도 여왕의 손바닥 위로 기어올랐네.

꽃과 나무가 시들고 하늘과 땅이 얼어붙으며

중생이 유일하게 의지할 것은

어둠을 정화하는 영혼의 등 불빛 밖에 남지 않았네.

......

'유배자의 구원'이라는 제목의 서사곡은 처음 어둠의 침략 후에 있었던 숲의 격변을 묘사했다. 반격을 당한 테라나스는 숲의 수호자들과 함께 영혼의 등으로 몸에 들어온 어둠의 힘을 정화해야 했다. 하지만 유일한 영혼의 등은 '유배자'의 호기심 때문에 깨졌고 넘쳐흐른 어둠의 힘은 수많은 영혼을 삼켜버렸다. 그 중에는 유배자의 가족과 친구도 있었다. 그 이후 여왕은 깊은 잠에 빠졌고 신수도 모습을 감추었으며 유배자는 이 때문에 수백 년 간 갇혀 있어야 했다.

"그러니까 당신이 바로 그 유배자란 말입니까?"

리쳐는 이미 검을 거두고 엘란도르의 곁에 앉아 있었다.

"그렇습니다. 수백 년 간 갇혀 있으면서 낮이고 밤이고 영혼의 등과 늘 함께 했습니다. 처음에는 여왕의 안배를 이해하지 못했지요. 제가 자신의 죄업을 더 깊이 뉘우치게 하기 위해 그런 거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영혼의 등에서 영혼의 떨림을 느끼기 전까지 말입니다...... 저는 확신했습니다. 그들은 진짜로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며 엘란도르가 손으로 영혼의 등을 누르자 깜빡이는 불빛이 그의 손을 감싸며 온화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보십시오. 그들이 저에게 답하고 있습니다."

"이게 당신이 지금 말한 일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겁니까? 이건 그저 호기심 때문에 드리는 질문이니 대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장로께서 저에게 말씀하시길 영혼의 등은 마음이 빛을 향하는 영혼들에게서 그 힘이 비롯된다고 하더군요. 에본은 생령이 많지 않아서 저는 인간의 영지를 찾아와 기쁨의 씨를 뿌리고 희열을 수확했지요. 그 덕분에 영혼의 등은 빠르게 힘을 회복했고 고통받는 영혼도 이 때문에 구원을 얻었답니다."

"알겠습니다. 정령이여, 당신의 여정이 아름답기를 바랍니다."

리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리쳐."

엘란도르의 입가에 매혹적인 미소가 떠올랐다.

"아가씨들이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걸 들었는데, 저도 그렇게 불러도 됩니까?"

리쳐는 잠시 얼떨떨해하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연히 되지요."

"그럼 당신도 절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엘란도르라고."

그 순간, 그의 미소가 활짝 피어났다.

"놀라지 마세요. 정령은 세상일에 잘 개입하지 않을 뿐이지 사귀기 어려운 존재는 아닙니다. 그 모험가들이 지어낸 이야기에 속지 마세요."

어깨를 으쓱하는 리쳐의 얼굴에서는 별로 기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늘 밤에 내가 새로 친구를 사귄 것 같은데 그래도 정령인가요?"

"당신이 원하신다면요."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당신 눈에 비친 고독과 슬픔은 나도 호수에 비친 그림자로 봤습니다. 종족의 차이를 무시한다면 나도 당신과 어쩌면 동류일지도 모릅니다."

"동류라고요? 그럼 어둠이 강림했을 때 당신은 나와 함께 싸울 수 있습니까?"

리쳐가 엘란도르에게 자신의 오른손을 내밀었다.

"물론이죠! 어둠은 우리에게 공통의 적입니다!"

엘란도르도 오른손을 내밀었다. 마주 쥔 두 손에 한껏 힘이 들어갔다.

"당신과 만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나의 친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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