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이름은 에흐예 아세르 에흐예 ehyeh asher ehyeh (출애굽기 3:14)임.
70인역에서는 이거를 '나는 있는 자다'로 번역했는데, 이거는 존재와 존재물이 혼동될 수 있는 그리스 철학의 요소가 반영되서 히브리어 표현의 근본적 의미를 변질시킴.
에흐예는 '있음'을 나타내는데, 있는 자로 번역해서 마치 하나의 존재물 같은 의미로 나타내어짐.
사실 신은 존재여서 이름이 없음.
우리가 어떤 것을 사과라고 하는 이유는 사과가 아닌게 있기 때문임.
종이에 동그라미를 하나 그려봐라. 그 동그라미 안을 A로 규정하면 그 밖은 A-임.
어떤 것을 우리가 이름 붙일 수 있는 이유는 어떤 것이 아닌 것이 있기 때문임.
신에게 이름이 없는 이유는 신이 모든 것을 내포하기 때문임.
신에게 이름을 붙이면 신이 아닌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신은 이름이 없음.
전술한 에흐예 아세르 에흐예는 모세가 신에게 이름을 묻자 신이 답변한 말임.
나는 '존재다'라고 답변한 거임.
신은 존재라서 모든 것을 내포하며 그것을 초월함.
존재는 존재물에 존재를 부여함. 마치 태양이 햇빛으로 지구에 생명을 부여하지만 그 자체는 불변하고 영원한 것과 같음. 그래서 부동의 원동자임. 물론 태양은 수십억년뒤에 죽지만 비유가 그렇다고.
뭐 그래서 최강인듯.
아까도 썼지만 기독교에서는 이 개념을 그리스 철학과 결합시킴.
페르메니데스라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가 처음 '온전한 일자'를 얘기하고, 그걸 플라톤이 일자(一者, to hen) 또는 선 자체로 정립하고, 이후 그 체계를 신플라톤주의로 종교화한 사람이 플로티노스임.
아직 내가 공부가 부족한데 일자와 신의 결정적인 차이는 인격성인듯.
일자는 인격을 가지지 않고, 데미우르고스라는 창조주들이 뭘 빚어서 이데아를 불어넣는다고 함.
반면 신은 인격이 있어서 그 자체로 최강임.
플로티노스가 "일자는 모든 사고와 존재를 넘어서며, 말로 표현할 수 없고 파악할 수도 없다"고 하는데 이게 기독교의 신에도 적용되는지는 아직 모르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