츄잉~ chuing~
 | 다크모드
 | 로그인유지
가구의 힘 - 박형준
에리리 | L:60/A:454 | LV172 | Exp.5%
175/3,450
| 0-0 | 2019-11-12 21:37:49 | 138 |
[숨덕모드설정] 게시판최상단항상설정가능

얼마 전에 졸부가 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나의 외삼촌이다.

나는 그 집에 여러 번 초대받았지만

그때마다 이유를 만들어 한번도 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방마다 사각 브라운관 TV들이 한 대씩 놓여있는 것이

여간 부러운 게 아닌지 다녀오신 얘기를 하며

시장에서 사온 고구마 순을 뚝뚝 끊어 벗겨내실 때마다

무능한 나의 살갗도 아팠지만

나는 그 집이 뭐 여관인가

빈방에도 TV가 있게 하고 한 마디 해주었다.

책장에 세계문학전집이나 한국문학대계라든가

니체와 왕비열전이 함께 금박에 눌려 숨도 쉬지 못할 그 집을 생각하며

나는 비좁은 집의 방문을 닫으며 돌아섰다.

 

가구란 그런 것이 아니지

서랍을 열 때마다 몹쓸 기억이나 좋았던 시절들이

하얀 벌레가 기어 나오는 오래된 책처럼 펼칠 때마다

항상 떠올라야 하거든

나는 여러 번 이사를 갔었지만

그때마다 장롱에 생채기가 새로 하나씩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집의 기억을 그 생채기가 끌고 왔던 것이다.

새로 산 가구는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이 달라졌다는 것만 봐도

금방 초라해지는 여자처럼 사람의 손길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먼지 가득 뒤집어쓴 다리 부러진 가구가

고물이 된 금성라디오를 잘못 틀었다가

우연히 맑은 소리를 만났을 때만큼이나

상심한 가슴을 덥힐 때가 있는 법이다.

가구란 추억의 힘이기 때문이다.

세월에 닦여 그 집에 길들기 때문이다.

전통이란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것 …….

하고 졸부의 집에서 출발한 생각이 여기에서 막혔을 때

어머니가 밥 먹고 자야지 하는 음성이 좀 누그러져 들려왔다.

너무 조용해서 상심한 나머지 내가 잠든 걸로 오해 하셨나.

 

나는 갑자기 억지로라도 생각을 막바지로 몰고 싶어져서

어머니의 오해를 따뜻한 이해로 받아들이며

깨우러 올 때까지 서글픈 가구론을 펼쳤다.

개추
|
추천
0
반대 0
신고
    
[숨덕모드설정] 게시판최상단항상설정가능
30일 이상 지난 게시물, 로그인을 하시면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츄잉은 가입시 개인정보를 전혀 받지 않습니다.
즐찾추가 규칙 숨덕설정 글15/댓글2
[시 문학] 아니요 - 신동엽
크리스 | 2019-11-13 [ 81 / 0-0 ]
[시 문학] 그리움 - 유치환
크리스 | 2019-11-13 [ 313 / 0-0 ]
[시 문학] 팔원(八院) - 서행 시초(西行詩抄) 3 - 백 석
크리스 | 2019-11-13 [ 88 / 0-0 ]
[시 문학] 가을비 - 도종환
에리리 | 2019-11-12 [ 104 / 0-0 ]
[시 문학] 가난한 사랑 노래 - 신경림
에리리 | 2019-11-12 [ 92 / 0-0 ]
[시 문학] 가구의 힘 - 박형준
에리리 | 2019-11-12 [ 138 / 0-0 ]
[창작] I WED A TOY BRIDE - 이상
이리이리야 | 2019-11-12 [ 114 / 0-0 ]
[창작] 광녀의 고백 - 이상
이리이리야 | 2019-11-12 [ 170 / 0-0 ]
[창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황지우
이리이리야 | 2019-11-12 [ 141 / 0-0 ]
[시 문학] 뼈아픈 후회 - 황지우
크리스 | 2019-11-12 [ 91 / 0-0 ]
[시 문학] 풍장(風葬)․1 - 黃東奎
크리스 | 2019-11-12 [ 79 / 0-0 ]
[시 문학] 조그만 사랑 노래 - 黃東奎
크리스 | 2019-11-12 [ 137 / 0-0 ]
[시 문학] 산정 묘지 - 조정권
에리리 | 2019-11-11 [ 146 / 0-0 ]
[시 문학]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정희성
에리리 | 2019-11-11 [ 97 / 0-0 ]
[시 문학] 사물의 꿈 - 정현종
에리리 | 2019-11-11 [ 106 / 0-0 ]
[창작] BOITEUX BOITEUSE - 이상
이리이리야 | 2019-11-11 [ 155 / 0-0 ]
[창작] ▽의 유희 - 이상
이리이리야 | 2019-11-11 [ 167 / 0-0 ]
[창작] 공복 - 이상
이리이리야 | 2019-11-11 [ 137 / 0-0 ]
[시 문학] 마음의 정거장 - 김명인
크리스 | 2019-11-11 [ 110 / 0-0 ]
[시 문학] 칼새의 방 - 김명인
크리스 | 2019-11-11 [ 138 / 0-0 ]
      
<<
<
296
297
298
299
300
>
>>
enFree
공지/이벤 | 다크모드 | 건의사항 | 이미지신고
작품건의 | 캐릭건의 | 기타디비 | 게시판신청
PC버전 | 클론신고 | 정지/패널티문의 | HELIX
Copyright CHUING Communication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chuinghelp@gmail.com
개인정보취급방침 | 게시물삭제요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