츄잉~ chuing~
 | 다크모드
 | 로그인유지
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 - 김수영
조커 | L:45/A:549 | LV299 | Exp.72%
4,341/5,990
| 0-0 | 2021-09-05 12:41:02 | 211 |
[숨덕모드설정] 게시판최상단항상설정가능

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 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비켜 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

 

                   - <거대한 뿌리>(1965. 11)-

개추
|
추천
0
반대 0
신고
    
[숨덕모드설정] 게시판최상단항상설정가능
30일 이상 지난 게시물, 로그인을 하시면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츄잉은 가입시 개인정보를 전혀 받지 않습니다.
즐찾추가 규칙 숨덕설정 글15/댓글2
[시 문학] 얼은 강을 건너며 - 정희성
조커 | 2021-09-06 [ 235 / 0-0 ]
[시 문학] 어서 너는 오너라 - 박두진
조커 | 2021-09-06 [ 214 / 0-0 ]
[시 문학] 어머니의 총기 - 고진하
조커 | 2021-09-05 [ 216 / 0-0 ]
[시 문학] 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 - 김수영
조커 | 2021-09-05 [ 211 / 0-0 ]
[시 문학] 양심의 금속성 - 김현승
조커 | 2021-09-05 [ 188 / 0-0 ]
[시 문학] 여우난 곬족(族) - 백 석
크리스 | 2021-09-05 [ 217 / 0-0 ]
[시 문학] 여승(女僧) - 백 석 [1]
크리스 | 2021-09-05 [ 190 / 0-0 ]
[시 문학] 여름밤이 길어 - 한용운
크리스 | 2021-09-05 [ 257 / 0-0 ]
[시 문학] 압해도 8 - 노향림
조커 | 2021-09-04 [ 242 / 0-0 ]
[시 문학] 알 수 없어요 - 한용운
조커 | 2021-09-04 [ 320 / 0-0 ]
[시 문학] 안개 - 기형도
조커 | 2021-09-04 [ 253 / 0-0 ]
[시 문학] 에프킬라를 뿌리며 - 황지우
크리스 | 2021-09-04 [ 235 / 0-0 ]
[시 문학] 엄마야 누나야 - 김소월
크리스 | 2021-09-04 [ 201 / 0-0 ]
[시 문학] 어서 너는 오너라. - 박두진
크리스 | 2021-09-04 [ 274 / 0-0 ]
[시 문학] 아침 이미지- 박남수
조커 | 2021-09-03 [ 587 / 0-0 ]
[시 문학]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 신석정
조커 | 2021-09-03 [ 193 / 0-0 ]
[시 문학] 아우의 인상화 - 윤동주
조커 | 2021-09-03 [ 221 / 0-0 ]
[시 문학] 신부 - 서정주
조커 | 2021-09-02 [ 237 / 0-0 ]
[시 문학] 신록 - 이영도
조커 | 2021-09-02 [ 222 / 0-0 ]
[시 문학] 신기료 할아버지 - 김창완
조커 | 2021-09-02 [ 210 / 0-0 ]
      
<<
<
6
7
8
9
10
>
>>
enFree
공지/이벤 | 다크모드 | 건의사항 | 이미지신고
작품건의 | 캐릭건의 | 기타디비 | 게시판신청
PC버전 | 클론신고 | 정지/패널티문의 | HELIX
Copyright CHUING Communication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chuinghelp@gmail.com
개인정보취급방침 | 게시물삭제요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