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행(上行) |
|||
|
|
가을 연기 자욱한 저녁 들판으로 상행 열차를 타고 평택을 지나갈 때 흔들리는 차창에서 너는 문득 낯선 얼굴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너의 모습이라고 생각지 말아 다오. 오징어를 씹으며 화투판을 벌이는 낯익은 얼굴들이 네 곁에 있지 않으냐, 황혼 속에 고함치는 원색의 지붕들과 잠자리처럼 파들거리는 TV 안테나들 흥미 있는 주간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여 다오. 농약으로 질식한 풀벌레의 울음 같은 심야 방송이 잠든 뒤의 전파 소리 같은 듣기 힘든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아 다오. 확성기마다 울려나오는 힘찬 노래와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자동차 소리는 얼마나 경쾌하냐 예부터 인생은 여행에 비유되었으니 맥주나 콜라를 마시며 즐거운 여행을 해 다오. 되도록 생각을 하지 말아 다오. 놀라울 때는 다만 '아!'라고 말해 다오. 보다 긴 말을 하고 싶으면 침묵해 다오. 침묵이 어색할 때는 오랫동안 가문 날씨에 관하여 아르헨티나의 축구 경기에 관하여 성장하는 GNP와 증권 시세에 관하여 이야기해 다오. |
|
|
|
너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반달곰에게>(198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