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무나도 한심했다. 그에 비해 그녀는 너무나도 빛이났다. 나는 그저 광택제에 불과했다. 그녀의 슬럼프를 내가 도와줘서 그녀를 일으켜주면,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밝게 빛날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다시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의 일말조차 나는 받아들일 자격이 없었다. 내가 빛을 받기에는 너무나도 초라하고 작은 존재이기 때문에..
언제부터 그녀를 그 길에서 보지 못했다. 아마 바쁜 탓이겠지만, 우리학교 야자가 자율화 됨에 따라 한시간정도 앞서 나가서 그녀를 기다리는 내가, 지루함을 느껴 몇분 차이로 그녀와 엇갈릴수도 있겠지.
때로는 십여분 가량 더 기다려 보기도 했지만, 그녀는 보지 못했다.
빛나는 태양은, 그늘아래 안주하는 생물에게 까지 빛을 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래.. 그거면 된거야.
나는 그저 그런 존재이면 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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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59분. 50초 10시가 되면 야자는 끝나고, 모두들 공부는 뒷전으로 놔둔채 초침이 흘러가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 얇고 붉은 초침에 12 라는 글자의 아래 굵은 마디에 걸린다면, 종은 울리고, 우리는 우리에서 풀려난 맹수처럼 바깥을 활보할 것이다.
10. 9. 8. 7. 6. 5. 4. 3. 2. 1. 0
딩 ~ 동 - 댕 동 -
우리가 염원하던 종소리가 들려오자, 우리는 미리 준비해둔 가방을 매고 쏜살같이 뛰어나갔다. 나도 물론 그 무리의 하나였다. 가끔 차분하게 교실안에서 필기구를 정리하는 애들도 보이지만, 나는 그런 부류는 아니였다. 공부가 싫고, 그저 이상만을 바라며. 어디 재밋는일 없을까 궁리하며,
노력도없이 대가를 바라는 그런 아이다.
" 아아 ~ 끝났다. "
신우가 내 옆에서 걸으면서 말했다. 신우는 키가 훤칠한, 나보다는 목적의식이 투철해서 평균 2등급을 맞는 애다. 놀땐 놀고, 할땐 하는 것의 견본적인 친구이다.
신우는 나와 꽤나 오래 알고지냈다. 중학교 3년 같은반에 이어 , 현재 고등학교 2년 같은반에 어울리고 있으며, 그 5년째도 이제 마무리를 지으려고 하고 있었다.
11월 3일. 날씨도 점점 쌀쌀해져서 자켓위에 점퍼를 입은 애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는 대체로 답답한게 싫어서, 한겨울중에도 자켓만 입는것이 습관처럼 되어있지만.
" 응, 그렇네 하아 춥긴 춥다. "
" 너도 뭐라도 입고다니지 그래 ? 교복은 사실 종이 장과 다를게 없잖아 ? "
킥킥대고 웃으면서 과장스럽게 교복 자켓을 펄럭이는 신우, 나는 그 행동에 웃으면서
" 내 캐릭터를 고수하는거야. "
" 말도 안돼는 소리하지마 ~ "
신우와 이토록 친하다고 해서, 우리는 하굣길을 끝가지 함께 하는것은 아니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비교적 가까운곳에, 신우는 버스를 타고 20분을 가야하는 곳에 집이있다.
" 그럼 잘가 ~ "
꽤나 넓은 운동장 덕에 길어지는 교내에서의 하굣길이 교문에서 끝이나고, 신우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
나는 집에 걸어가기 위해서 헤어졌다. 학교의 교문은 골목안에 있어서, 좌우로 줄비한 건물의 길을 지나서 횡단보도를 건너서, 또 골목으로 들어간다.
사실, 횡단보도를 건너지않고 바로 우측으로 쭉간다면, 우리집에서 거리상은 훨씬 가까웠지만.
나는 돌아가는 " 그 길 " 을 좋아했다.
왜냐하면, 그 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독특한 그녀를 만날수 있는 길이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