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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의 일상 - 1. 자기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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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 | 2012-11-11 11:39:19 | 5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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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기 소개

            

 나를 제일 잘 아는 건 바로 나 자신이다. 나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은 남들이 더 잘 할 수 있지만 나를 아는 것만큼은, 말 그대로 ‘아는’ 것만큼은 자기 자신이 제일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자기소개를 해보라고 하면 할 말이 별로 없다. 기껏해야 이름, 취미, 거주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말하면 끝이다.

            

  방금 자기소개를 마친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나라고 해도 다르지 않다.

            

  “다음.”

            

 교실 맨 뒤에서 무뚝뚝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내 차례를 알리는 소리다. 저 냉랭한 목소리만 들으면 여기가 무슨 교도소라도 되는 것 같지만 여기는 교실이다.

            

  “다음, 김유랑.”

            

  목소리가 재차 들렸다. 담임선생님의 목소리다. 이미 교실 앞에 나와 있는데도 재촉하는 걸 보니 선생님 성격이 대강 짐작된다. 덤으로, 앞으로 1년은 피곤해질 거라는 것도 예상된다.

            

  숨을 한 번 고르고, 고등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나는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김유랑이라고 합니다. 취미, 특기 모두 검도이며 좋아하는 것 역시 검도입니다. 싫어하는 건…….”

            

  잠시 말을 멈추고 교실을 둘러봤다. 학기 초라서 다들 긴장했는지 얼굴에서 어색함이 묻어난다. 물론 나도 거울을 보면 그럴 것이다.

            

  하지만 단 두 사람만 그렇지 않았다. 선생님은 이런 경험을 많이 했을 테니 여유로워 보이는 게 당연하다. 선생님을 제외하면 단 한 사람만이 여유가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미소를 지으며 교단을 주시하는 그 얼굴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마치 선거철 노련한 대선 후보 같은 얼굴이다.

            

첫인상이 나쁘지는 않다. 온화하고 은은한 미소가 여성스러운 매력을 한층 더해줘서 오히려 인상은 좋다. 단발머리도 잘 어울려서 반할 듯한 외모다.

            

 그래도 싫다. 내가 싫어하는 건 저런 가면이다. 멋대로 단정 짓는 걸지도 모르지만, 아니, 멋대로 단정 지은 거지만 가면을 뒤집어쓰고 거짓된 얼굴로 사는 저런 사람은 싫다. 아마도 쟤는 그다지 좋은 성격이 아닐 것이다.

            

  내 감은 꽤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감일 뿐이다. 사실이 아니다. 그러니 “너 같은 인간이 싫다.”고 섣불리 말할 수도 없다.

            

  “싫어하는 건 거짓된 언행입니다.”

            

  내 소개는 이 정도로 마쳤다. 그 뒤로 자리에 돌아와 다른 애들의 자기소개를 들었다.

            

  평범하다. 다들 평범하다. 몇 명은 애써 평범해 보이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두꺼운 가면을 쓴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러다가 내가 주시한, 가면을 쓴 듯한 여자가 앞으로 나왔다. 어떤 식으로 자신을 소개할 지가 기대되는 가운데, 여자의 맑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 이름은 자은영이야. 취미는 요리인데 아직 잘 못해. 매번 실패해서 가족들만 고생하고 있어. 특기는 딱히 없고 좋아하는 건 가족들이야. 싫어하는 것도 딱히 없지만 여자 중학교를 나와서 그런지 남자들하고는 조금 서먹할 수도 있어. 절대, 절대로 내가 누굴 싫어하는 건 아니니까 오해는 하지 말아줘.”

            

 자은영. 이 세 글자가 머릿속에 확실히 박혔다. 유난히 크게 울리는 듯한 박수소리만큼 큼지막하게 입력됐다.

            

 박수소리가 커질 만도 하다. 평균치를 약간 웃도는 키, 반반한 얼굴, 천사 뺨치는 미소, 요리가 취미고 남자에 내성이 부족하며 가족을 중시하는 여자다. 남자들의 지지를 받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그저 이상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싫다는 느낌을 넘어서 이상하다. 이해가 안된다. 저런 완벽한 인간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인정할 수 없다.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다. 무시하면 된다. 여태까지도 저런 사람을 보면 무시했다. 자기 자신을 속이고 가면 뒤에 숨어 사는 사람은 무시당해도 싸다. 어차피 별 볼일 없는 사람일 테니까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며 나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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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살벌 [L:50/A:383] 2012-11-12 02:52:32
헠; 뭐랄까 읽기 깔끔하네요 ㅇㅇ! 으으; 표현을 잘 못하겠는데, 그 왜 어떤 음식을 먹을 때 목넘김이 깔끔하단 표현이 있잖아요? 문장이 간결하고, 그러면서도 묘사도 깔끔해서 그런 건지, 읽는 데에 그런 비슷한 느낌이 든 것 같아 좋아요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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