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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에 관한 경험담이야. 1
나가토유키 | L:57/A:433 | LV201 | Ex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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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 | 2021-03-13 23:48:25 | 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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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그 당시의 우리 가족에 대해서 말해볼께.
아빠는 가족이라고는 같이 살고있던 증조할머니밖에 없었던 사람이었고,
엄마는 지방에 식구 많은 대가족의 차녀였어.
엄마가 스물이 넘어서 서울로 올라와 직장을 다닐때에 아빠를 만났고, 급속도로 결혼까지 하게되었어.
물론 엄마 집에서는 반대가 너무나 심해서 나를 낳고도 몇년간은 외가댁과 왕래도 하지 않았다고 해.


마포구 아현동에 아빠와 증조 할머니가 살던 집에 살림을 차리고,
처음 시집 살이를 하면서부터 엄마와 증조할머니의 사이는 굉장히 좋지 않았어.
가장 큰 이유는, 엄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고 증조 할머니가 무당이었기 때문이지.


내 어릴적 기억에도 우리가족이 살던 집, 할머니의 방은 신당이 차려져 있었어.
동네 사람들과 굿판을 벌일 때도 있었고, 그 동네에서 할머니는 유명한 무당이었지.

 

할머니방(신당)- 작은마루 -엄마,아빠방.


이런 구조로 되어있는 집에서, 엄마는 항상 작은 마루에 찬송가 테이프를 틀었어. 시위하듯이.
그것 때문에 할머니와 매일 싸웠던게 아직도 기억남 ㅎㅎ


그래도 그 때만해도 꽤 행복했어.
동네 사람들과 사이도 좋았고, 나도 동네 애들과 몰려다니면서 노느라고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 다가올 일 들에 비하면 진짜 행복한 거였지...
 

 


문제는 증조 할머니가 노환으로 숨을 거두면서부터 시작되었어.
생전에 부탁했던 대로 화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엄마는 곧바로 할머니 방을 정리했어.
그리고 그곳에 안방을 꾸려서 엄마, 아빠가 쓰고. 나는 내 방이 생겼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얼마동안은 싸움이 없어진 집안이 정말 조용하고 아늑한 기분이었어.
엄마도 편해했고, 교회도 열심히 다녔어.

 

그러다 어느날, 엄마가 꿈을 꾸기 시작한거야.


꿈 내용인 즉,


엄마의 사촌동생(남. 고등학생)과 어느 풀숲의 동굴 입구 같은 곳에서 만났는데,
사촌동생이 '누나, 나랑 어디좀 같이 가!' 라며 대번에 동굴 안으로 끌고 들어갔어.
엄마는 그냥 얘가 왜 이렇게 급하나 생각하고 끌려 들어갔고, 한참을 뛰는데 발 밑에 물이 고여있더래.
그리고 어두컴컴한 동굴 중간에 멈춰 서서 앞을 딱 보니 까만 관이 하나가 가로막고 있었대.


그걸 본 사촌동생이 어휴, 하고 한숨을 쉬더니 빨리 가야겠다며 다시 뛰기 시작했고 엄마는 또 끌려갔어.
한참을 달리고 나서 멈춰 서니 물이 무릎까지 차있었어.
그리고 그 물 아래엔 하얀 이불이 깔려있고, 그 위에 하얀 덮는 이불이 잘 개켜져있고, 또 그 위에 하얀 베개가 올려져 있었어.
사촌동생은 또 곤란한 표정을 하면서 엄마 손을 붙들고 뛰었지.


다시 한참을 달려가니 무릎까지 오던 물은 허리까지 차서 움직이기가 힘들었대.
그래서 무서워진 엄마가 사촌동생 손을 뿌리치면서 '나 안갈래, 너 혼자 가, 그냥.'이라고 소리를 질러버렸대.
그러니깐 사촌동생은 그냥 고개를 끄덕끄덕 하더니 돌아섰어.


그리고 물 아래로 쑥 가라앉아  잘 펴진 하얀 이불을 걷고 드러눕더래.
물 밑에 잠겨서 하얀 이불 덮고 자고 있는 것 같은 사촌동생 얼굴에 그제야 소름이 쫙 끼쳐서 엄마가 꿈에서 깼어.
그리고 불안한 기분에 아빠를 깨워서 꿈얘기를 했지.
아빠한테 얘기하고도 불안해서 그 새벽에 사촌동생 집까지 전화를 걸었어.
다짜고짜 재수없는 꿈얘기를 하면 기분 상할까봐 그냥 걔(사촌동생)잘 지내냐고 묻고, 자알 지내고 있다고 답을 듣고 끊었어.


그런데 다음날, 전화가 걸려왔어.
여름이라고 친구들과 계곡으로 놀러간 사촌동생이 물에 빠져서 익사했다고...
조금 높은 곳에서 친구들과 다이빙 놀이를 했는데 혼자만 빠져나오지 못한것 같다고.

엄마의 예지몽이 너무나 들어맞아서 소름이 끼쳤지만, 그저 우연의 일치려니 좋게 생각하며 넘겼어...

 


그리고 그 이후로 엄마의 꿈에는 증조 할머니가 나오기 시작했지.
옥색 한복을 입고, 흰머리를 뒤로 틀어서 비녀로 쪽 진 생전 모습 그대로 말이야.


매일같이 꾸는 꿈의 내용은 대체로 비슷했어.
안개가 뿌옇게 낀 길목에서, 누군지 모르는 사람을 할머니가 데려와서 엄마에게 소개를 시켜주는 내용이었지.
'이 분은 누구누구라고 한다. 네가 모시고 가라.'
엄마한테 모르는 사람들의 손을 꼭 쥐어주고는 가시고, 또 다음날 와서 모르는 사람을 데려오고.
마지막에는 호랑이 한마리를 데려와서 목줄을 쥐어주더래.


엄마도 그렇게 싫었던 증조할머니를 꿈에서 보니 반갑기도 하고 그래서 쥐어주는 족족 받았어.
그리고 그때부터 엄마가 이상해지기 시작했지.

 


꿈이 너무나 신경쓰여서 눈 뜨고 있을 때는 꿈 생각에 매사에 무기력해지고,
눈만 감으면 할머니가 꿈에 보이니 잠도 못자겠고,
나중엔 집안 장롱이 넘어지고, 벽이 무너지는 환각까지 보게 되었어.


점점 교회에 다니던 발길도 끊고, 아빠와는 사이가 매우 나빠져서 매일 싸움이 끊이질 않았지.
우리 엄마는 술을 전혀 못 먹는 체질이야. 소주 반잔만 마셔도 온몸에 반점이 일어날 정도.
그런데 하루는 소주를 사오더니 안방에서 3병을 그냥 마시더라.
그날 집에 돌아 온 아빠가 대야 들고 가서 엄마 토하게 하고, 밤새 잠도 못잔던걸 아직도 기억해.


시 초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책가방에 스프링 연습장과 색연필을 챙겨가지고 다녔어.
엄마는 별안간 내 가방을 뒤지더니 연습장과 색연필을 꺼내서 안방에 엎드려 누워가지고 한참 뭔가를 쓰더라고.
나는 그냥 TV를 보면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고,
엄마는 색연필을 들고 계속 그림을 그렸어.


나중에 보니, 빨간색 색연필로 부적을 잔뜩 그려놨더라.

 


그렇게 자기도 모르는 새에 부적을 그리고 노래를 흥얼거린것을 엄마는 기억하지 못해.
잠깐 필름이 끊긴 것 처럼 말이야.
어쩌다 정신을 차려보면 부적을 그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정신이 들었을 때에 굉장히 우울해했어.
정말 혐오했거든. 무당, 토속신앙 이런거 말이야.

 

정말 무서워진 엄마는 교회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어.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예배를 드려달라는 말을 집사님께 하고, 날짜를 받고 기다렸지.
그리고 예배를 하려고 했던 당일, 교회 사람들과 함께 우리 집 골목으로 들어오는 집사님 마중을 하려고 엄마와 울집 대문앞에 서있는데, 교회 사람들이 저만치 서서 다가오지 않는거야.


그래서 엄마가 달려갔지. 웃으면서. 여기라고, 왜 안오시냐고.
그랬더니 늙은 집사님이 엄마 손을 꼬옥 붙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미안한데 지금 골목부터 웬 장군들이 주르르 줄지고 서서 그 집앞을 지키고 있어서 두려운 기분이 들어 못 들어가겠다는거야.
자기 힘으로는 안 될 일같다고, 미안하다고..... 그리고 그 사람들은 발길을 틀어서 돌아갔지.
 
 


그 일을 계기로 아예 교회에 발길을 끊은 엄마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어린 내 손을 붙들고 무당집을 찾아갔어.
그냥 엄마 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누가 용하다 누가 잘본다 이런 정보 하나도 없이 발길 닿는데로 들어갔지.


신당에 들어 선 순간, 앉아있는 무당 등 뒤로 보이는 벽화를 보고 엄마는 말도 꺼내지 못할만큼 놀랬어.
그간 증조 할머니가 엄마 꿈에 나타나서 그렇게나 손을 붙들고, 소개를 시켜주던 인물들이 벽화안에 좌르르 서있었거든.


그리고 무당은 엄마 얼굴을 보자마자 이런 말을 했어.

'무당이 왜 무당을 찾아왔어?'

 

다른 무당집을 열번 찾아가고, 스무번 찾아가도 하는 말은 똑같았어.
신내림 받아라. 이미 신이 머리 꼭대기 까지 찼다. 몸 축나고 마음 축난다.


어떤 무당은 우리 모녀가 안에 들어서자마자 이런 말을 하더라.

'아이고, 방금 웬 할매가 와서 무릎이 삐걱거리도록 절하면서 잘 부탁한다고~ 부탁한다고 그리 공양을 하더니 자네가 오려고 했나보네.'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얼굴만 보고도 할머니 얘길 꺼내는 사람도 더러 있었지.


해결책은 신내림굿을 하는 수 밖에 없는 듯 했어.
그렇지만 엄마는 아무리 몸이 시달리고, 정신적으로 힘들어도 신내림 만큼은 받을 수 없다고 고집이 굉장했지.
꾹꾹 억누르면서, 악몽을 꾸면 꾸는대로 버티면서 시간이 흘렀어.

그러는 와중에도 증조할머니가 꿈에 나타나서 악담을 했지.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 할머니 소유라서 돌아가신 후에 우리쪽에 유산으로 남았거든.
그런데 엄마 꿈속에서 막 화를 내면서,

'내가 너한테 고분고분하게 이 집 넘겨 줄 것 같냐? 절대 못 넘겨줘! 내 부탁하나 안들어주는데 네가 뭐가 이쁘다고!!' 하고 역정을 내시거나...

 


그래도 엄마는 참기로 했어. 아빠와 나를 봐서라도 무당이 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고 마음을 먹었지.
엄마 몸도 점점 지쳤고, 우리 집 분위기는 냉랭해지기만 했어.

 


그러던 어느날, 어느 스님이 우리 집 문을 두드리며 찾아왔지.
그 당시 우리 동네엔 물 얻어먹는다는 말을 하며 시주를 받아가는 스님들이 종종 있었어.
그래서 엄마는 별 생각 않고 스님에게 물 한잔 떠주고 쌀을 푸고 있었어.
울 집 마루에 앉아서 물마시던 스님이 집 마당을 둘러보고선, 대뜸 엄마한테 얼른 이사를 나가라고 하더래.
있어봤자 악운밖에 오지 않는 터라고, 되도록 빨리 여기 정리하고 나가라고.


아무튼 그렇게 충고 한 스님도 있었고, 아빠가 엄마에게 분식집을 해보지 않겠느냐 권유한 것도 있고 해서
우리 가족은 아현동 집을 세를 놓고 그 동네를 떴어.
다른 지역에 가서 분식점을 차렸고, 가족이 생활을 할 단칸방을 얻었지.

 

 

그렇게 3개월 쯤 후,
우리 가족은 뉴스 속보로 사고 소식을 접하게 되었어.
아마도 우리나라 최초(맞나?)의 가스 폭발 사건이었던 '아현동 도로공원 가스폭발' 이 그거야.
우리 집에서 불과 50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었어.
가스 폭발로 날아간 도로공원은 내가 항상 놀던 곳이었고,
그 공원 앞의 불고기집은 자주 찾아서 주인 내외까지 친했던 사람이었는데 가스 폭발로 인해 사망.
우리 집도 당연히 다 망가졌고, 주변 이웃들도 마찬가지.
이웃들 말로는 불기둥이 하늘을 덮고, 굉음과 함께 집안 유리창이 전부 깨졌다고 하더라.

 

그날 저녁 엄마 손 붙들고 그 동네를 찾았는데, 난생 처음 주민 대피소라고 꾸려진 곳에 발을 들였어.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지... 내가 어리기도 했고, 그냥 얼떨떨 했던것 같아.


아무튼 집에 세들어 살 던 사람들도 있었으니 어쨌든 간에 집을 다시 고쳐주던가, 책임을 져야 했는데
보상을 받는 일이 쉽지가 않았어.
사고를 수습하고도 한참동안이나 보상금을 받지 못해서, 결국 우리 집 돈으로 전부 수리를 했지.
덕분에 집안 가계부에 커다란 구멍이 나고, 돈이 쪼들리니 엄마와 아빠 사이도 다시 나빠졌어.

그리고 조금 잠잠했던 엄마의 신병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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