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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의 일상 - 3. 개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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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 | 2012-11-25 09:53:18 | 5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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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학식

 

 충격적인 사실을 알았다. 자은영의 이면을 알게 됐다.

 

 하지만 그저 그 뿐이었다. 어김없이 다음 날 아침에는 해가 떴고, 사람들은 자신의 역할대로 움직였다. 나 역시 방학이 끝난 고등학생답게 학교에 간다.

  

 솔직히 말하면, 자은영이 어떤 사람인지는 몰라도 된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 다만, 놀랐을 뿐이다.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방학의 마지막 날이 지난 오늘은 개학하는 날이다. 그렇다면 개학식을 해야 한다. 하지만 개학식 따위는 없었다. 개학식은커녕 정상수업이라니……. 고등학생과 중학생의 차이인지, 우리 학교만 특이한 건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바로 오늘부터 정상수업이란 것이다.

  

 집을 나선 게 방금 전인 듯한데 벌써 교실까지 왔다. 매우 침울해졌지만 어쩔 수 없이 교실 문을 연다.

  

 그러자 나랑 같은 중학교를 다니던 친구가 달려왔다. 속도를 줄이더니 뛰어오른다. 나한테 매달린다. 그리고 절규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게 정신이 나간 건지 아침부터 생난리다. 포효에 가까운 절규였기에 반 아이들의 시선이 쏠렸다.

  

 “놔.”

  

 아침 조회가 시작되기도 전이라 교실은 아직 꽉 차지 않았다. 그래도 시선을 받으면 낯이 간지러워진다. 더욱이 이 친구가 여자라는 점도 문제다.

  

 내 목을 잡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녀석을 떼어 둔다. 한 달 간 연락도 안 하고 지냈는데 이렇게까지 달라붙으니 대응하기 어렵다. 물론 이런 점이 이 녀석답기는 하다만…….

  

 내 앞에서 글썽이고 있는 작은 짐승, 아니, 짐승이란 표현은 조금 이상하다. 부적절하다.

  

 작은 동물 같은 여자, 고아라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유랑이, 너……. 내가 방학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동그란 안경 속에서 방울거리는 눈망울이 나를 압박한다. 그 압박이 너무 강해서 잠시 말을 잇기 힘들었다.

  

 “뭐……. 무슨 일인데 그래?”

  

 “개학인데 정상수업이래잖아.”

  

 콧물을 훌쩍이는 모습이 너무 애처롭다. 마치 내 심리 상태를 그대로 표현하는 듯하다. 개학하는 날에 정상수업이라니!

  

 참담하다. 방학 동안 힘들었다면서 방학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지 않는 아라의 언어 능력만큼 참담하다.

 

 방학 동안 힘들었다니……. 어쩌면 방학 내내 오늘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최악이네. 방학동안 힘들었다는 게 왠지 모르게 납득될 정도야. 오늘은 방학도 아니건만.”

  

 말을 마치고 천천히 내 자리를 찾아간다. 내게 쏠렸던 시선도 사라지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마자 아라는 시선을 몽땅 끌고 내게 왔다.

  

 “그런데 베프란 놈은 전화도, 문자도, 카톡도, 페북도 무시하고…….”

  

 베프, 베스트 프렌드, best friend, 나랑 아라의 관계를 말하는 단어다. 언제 그렇게 됐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말에 거부감이 들진 않는다.

  

 물론 아라가 말하는 사람이 내가 맞는지는 확인해야 할 문제다.

  

 “네 베프가 누군데?”

  

 “…….”

  

 아라의 눈에 맺힌 눈물이 내 책상에 떨어졌다. 그걸 보자마자 난 몸을 뒤로 젖혔다.

  

 ‘짝!’ 하고 찰진 소리가 울렸다. 아라가 내 뺨을 힘껏 때리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라의 손은 내 손과 부딪쳐 소리를 내고 말았다.

  

 얼얼하다. 얘가 손이 이렇게 매웠나 싶다. 그리고 그만큼 진심이라는 게 느껴졌다.

  

 나 역시 진심이 전해지도록 아라의 손을 잡았다.

  

 “왜 그래?”

  

 “…….”

  

 “왜 그러는 건데? 무슨 일 있었어?”

  

 “헤어졌어.”

  

 남자친구랑 헤어졌다는 말일 것이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아라의 손을 놔버렸다. 그리고 내 바로 앞에서 쿨쿨 자고 있던 녀석을 냅다 찼다.

  

 “야.”

  

 내 목소리가 퉁명스러워졌지만 이 정도는 이해해야 한다. 단단히 속은 느낌이다.

  

 아라의 남자친구, 장유빈은 자다 깬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당사자는 아주 태평하다. 태풍의 눈 같은 자식.

  

 “왜 우리 유빈이한테 그래~. 연락 끊은 네 잘못이지~.”

  

 아라가 내 머리를 손바닥으로 두들기며 말했다. 칭얼댄다. 이런데도 헤어졌다는 말을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바보다.

  

 대수롭지 않은 듯 다시 잠에 빠지려는 장유빈을 나는 급하게 잡았다.

  

 “야, 네 애인은 네가 좀 챙겨, 인마!”

  

 “나중에…….”

  

 나중은 얼어 죽을……. 뒤처리는 결국 나한테 하라는 소리다. 어쩔 수 없다고 경험적으로 알고 있지만, 소리치게 되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야!”

  

 “우리 유빈이한테 그러지 마~.”

  

 계속 내 머리를 쳐대니 거슬린다. 그 때문에 나는 아라의 양 손목을 잡았다. 이런 요망한 것.

  

 “너 다시 유빈이랑 사귀지?”

  

 “응.”

  

 “언제 헤어졌던 건데?”

  

 “그저께.”

  

 “그 때 한 번?”

  

 “아니.”

  

 “보나마나 방학 때만 한 열 번은 헤어졌다 사귀고, 헤어졌다 사귀고 했지?”

  

 볼 것도 없다. 툭하면 헤어지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게 얘다. 그래도 유빈이랑만 사귀니 그다지 나쁘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저 귀찮을 뿐이다.

  

 아라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일곱 번밖에 안 헤어졌는데…….”

  

 “…….”

  

 음.

  

 할 말을 잃었다.

  

 35일 동안 7번이면 닷새마다 한 번씩 헤어졌다는 말이다. 말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둘 사이에 깨가 쏟아졌을 게 눈에 훤하다.

  

 그 순간, 자은영이 보였다. 아라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모습이 아주 자연스럽다. 뱀이 움직이는 걸 떠올릴 만큼.

  

 “2학기 첫 날부터 왜들 그래? 응?”

  

 아라는 바로 자은영한테 안겼다. 머리 하나가 차이 나는 걸 보니 아라가 정말 작다는 게 느껴진다.

  

 “으아앙~. 반장! 유랑이가, 유랑이가 있지!”

  

 “왜? 유랑이가 뭐 했어?”

  

 반장이라는 위치가 이름처럼 굳어진 자은영은 능숙하게 아라를 달랬다. 반장보다는 엄마라는 호칭이 더 어울려 보인다.

  

 나한테 했던 말뿐만 아니라 방학 때 있던 온갖 잡다한 이야기들이 아라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훌쩍 거리는 소리가 너무 자주 들려서 거슬린다. 그런데도 자은영은 고분고분 그 이야기를 들었다.

  

 대체 뭐가 그렇게 서러웠고 힘들었던 건지 모르겠다. 전부 시답잖은 일들뿐이다. 애초에 이해가 되는 부분보다 안 되는 부분이 많아서 공감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자은영은 어떻게든 알아들었나보다. 아라의 말을 듣더니 나를 질책한다.

  

 “네가 잘못했네.”

  

 “내가 뭘 어쨌는데?”

  

 “아라랑 연락도 안 하고 지냈다며? 그래서 아라가 이러는 거잖아.”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나도 알고 있다. 그 정도는 물론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고 싶다. 아니, 어쩔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기기만 하면,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생기면 나한테 연락이 오는데 그걸 일일이 받아줄 수는 없다. 나는 그렇게 착한 사람이 아니다.

  

 게다가 무시한 게 하루 이틀이 아닌데 이제 와서 이러니까 더 난처하다. 왜 갑자기 이러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사과해서 사태가 진정된다면 못 할 것도 없다.

  

 “알겠어. 미안하다, 아라야.”

  

 아라가 고개만 돌려서 나를 본다. 몸은 더욱더 자은영에게 붙이니, 내 말을 의심한다고 온 몸으로 말하는 것이다.

  

 “거짓말 아니야. 진짜 미안하다.”

  

 아라는 꿈쩍도 안했다. 이렇게까지 말해도 믿지를 않으니 어쩔 수 없다. 어차피 내버려두면 원래대로 돌아오겠지. 에라, 모르겠다.

  

 나는 포기했지만 아직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아라야, 유랑이가 저렇게까지 말하잖아.”

  

 자은영이 아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러자 아라가 입을 열었다.

  

 “진짜 미안해?”

  

 “어.”

  

 “진짜?”

  

 “진짜로.”

  

 “그럼 이제 무시 안 할 거야?”

  

 “아니.”

  

 이런, 또 울렸다.

  

 하지만 내 대답에 거짓은 없다. 미안하지만 내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아라가 자은영에게 매달리자 자은영은 곤란한 듯 웃었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아라는 사람을 곤란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몹쓸 재주다. 슬슬 상황을 정리하지 않으면 나중에 귀찮아지니 난 말을 보탰다.

  

 “그래도 네가 진짜 곤란할 때는 도와줄게. 그만 울어.”

  

 “거짓말! 내가 무서운 사람들한테 끌려갔다고 그래도 무시했으면서!”

  

 방금 전에 아라가 한 말은 너무나 생소한, 여태까지는 한 번도 하지도 않았던 말이라서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이해를 한 뒤에도 아라에게 되물어야 했다.

  

 “잠깐, 무서운 사람들? 자세히 말해봐.”

  

 “몰라!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서 아라가 보냈던 문자를 살폈다. 없다. 그런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연락이 올만한 건 다 살펴보지만 없다. 그런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전화, 방학 동안 걸려온 이십여 통의 전화 중 하나에서 그런 내용을 말하려한 게 있었던 듯하다.

  

 어림짐작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본다.

  

 “혹시 불량배들한테 끌려갔어?”

  

 울음소리가 커지는 걸 보아하니 정답인 듯하다.

  

 어제 겪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나는 자은영을 바라봤다. 그리고 자은영이 아주 잠깐 내게 시선을 돌린 순간, 어제의 자은영이 겹쳐보였다.

  

 “미안.”

  

 아라한테 사과한다. 아라도 지쳤는지 울음을 그치고 다시 나를 바라봤다.

  

 “그럼 연락 무시 안 할 거지?”

  

 “전화 정도는 받을게.”

  

 “그냥 무시하지 마!”

  

 아예 무시를 안 하는 건 무리다. 그렇게 말하려고 하는 순간,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조회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다. 그와 동시에 담임선생님은 칼 같이 교실에 들어왔고, 담임선생님의 불호령이 무서운 나머지 소동은 자연스레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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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L:23/A:416] 2012-11-25 18:23:22
요즘 교실에서 싸워서 걸리나 …?
쌍살벌 [L:50/A:383] 2012-11-25 18:57:24
@종이
요즘은 같은 반 애들이 쉬쉬하고 덮으려고 하죠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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